2011.03.21 08:46

 

 

 


과학카페 1회부터~85회:이보다 짜릿할 수 없다! 롤러코스터의 비밀 ◆ KBS 1TV 토요일 저녁 7시10분◆



87 20080823  백두산은 살아있다

86 20080809  [올림픽 사이언스-2부] 슈퍼맨의 비밀    

85 20080802  [올림픽 사이언스-1부] 영웅과의 맞대결     

84 20080726  코리아, 세계를 향하다      

83 20080719  한국 남자들, 미국 가다!     

82 20080712  오일 쇼크! 한국 과학자들의 다 섯 가지 선택     

81 20080705  고양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2편)      

80 20080628  무선통신 20년, 미래를 디자인 하다(1편)모바일 삶의 일부가 되다     

79 20080621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과학기술로 여는 미래<2부작>-2편:10년 後, 한국의 미래를 디자인 하다     

78 20080614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과학기술로 여는 미래<2부작>-1편:세계 최고 대학을 위한 선택     

77 20080607  태권브이 부활을 꿈꾸다

76 20080531  로봇 태권브이 공격 기술의 비밀     

75 20080524  천상열차분야지도     

74 20080517  내 몸의 파수꾼, 박테리아(2편)     

73 20080510  삶의 동반자, 박테리아(1편)     

72 20080503  문화, 과학을 만나다    

71 20080426  애니멀사이언스_뱀의 재발견<3부>     

70 20080419  과학의 미래, 극지<2부작>2부-북극     

69 20080412  과학의 미래, 극지<2부작>1부-남극     

68 20080405  소리 없는 전쟁, “냄새의 비밀”      

67 20080329  쥐와 인간의 공존공생(3편)

66 20080322  좋은 목소리의 비밀     

65 20080315  과학, 흰 가운을 입다<2부작>-2부:의학을 입은 과학, 첨단의료장비     

64 20080308  과학, 흰 가운을 입다<2부작>-1부:新 해부학-첨단영상의료기기     

63 20080301  동해 심해탐사, 그 1년간의 기록     

62 20080223  <동?서양 의학> 통합의학, 인류의 희망인가?     

61 20080216  미래를 향한 질주, 무인자동차(제2편)     

60 20080209  [2008 신년기획] 사이언스 코리아의 조건     

59 20080202  미래를 향한 질주, 무인자동차(제1편)    

58 20080126  큰 소리, 뇌를 깨우다!(제2편)     

57 20080119  기합, 내 몸을 깨우다!(제1편)

56 20080112  [동물과 인간의 교감] 2편:새로운 희망, 재활승마 5개월간의 보고서     

55 20080105  [동물과 인간의 교감] 1편:말이 인간을 치료한다     

54 20071229  세계 공영방송 공동제작“동서양 과학의 만남"3편:治癒(치유), 통합의학의 재발견     

53 20071222  세계 공영방송 공동제작“동서양 과학의 만남"2편:디지털 後-진대제가 만난 10년 후의 부자들    

52 20071215  정치본능에 대한 과학보고서 (2부작) - 2편:뇌 속 투표버튼을 찾아라     

51 20071208  정치본능에 대한 과학보고서 (2부작) - 1편:대선을 향해 던지는 4가지 질문     

50 20071201  이소룡, 최강 격투의 비밀     

49 20071124  이소룡, 절대 근육의 비밀!     

48 20071117  몸살 앓는 지구,2부작 - 기후 재앙 한반도를 덮치다(2편)     

47 20071111  최초생방송! 심해대탐사

46 20071110  지구 온난화<2부작>“ 뜨거운 지구, 섬이 사라진다!”(1편)     

45 20071103  세계 청소년 지구온난화 대탐사 - 미래세대, 북극 가다     

44 20071027  백두산 천지 괴물 2부작 - 천지괴물 그 베일을 벗다.(2편)     

43 20071020  백두산 천지 괴물 2부작 - 괴물을 만난 사람들(1편)    

42 20071006  미라 2부작 - 현대판 미라의 탄생 제2편     

41 20070929  미라 2부작 - 부패하지 않는 시신의 비밀’ 제1편    

40 20070915  과학 대탐사, 두바이(제3편) - 세계 8대 불가사의, 팜 아일랜드     

39 20070908  과학 대탐사, 두바이(제2편) - 두바이 사막의 신비, 낙타     

38 20070901  과학 대탐사, 두바이     

37 20070825  영하 196도 냉동인간의 비밀(제2편)

36 20070818  영하 196도 냉동인간의 비밀(제1편)     

35 20070811  “동해 1500m, 생명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제2편)      

34 20070804  “몬트레이 협곡의 괴물들”(제1편)     

33 20070721  “기적의 마구(魔球), 자이로 볼을 찾아서..(2부)”     

32 20070714  과학 미스테리 다큐 2부작 - “기적의 마구(魔球), 자이로 볼을 찾아서..(1부)”     

31 20070630  생명의 열쇠, 바다    

30 20070623  표정의 힘     

29 20070616  미인의 조건     

28 20070609  600만 불 사나이의 부활     

27 20070602  내 애인은 로봇

26 20070526  2036, 한반도 위기 - 혜성 대충돌(4편)     

25 20070519  2036, 한반도 위기 - 혜성 대충돌(3편)     

24 20070512  2036, 한반도 위기 - 혜성 대충돌(2편)     

23 20070505  2036, 한반도 위기 - 혜성 대충돌     

22 20070427  남극, 극지의 과학자를 만나다(제2편)      

21 20070420  마이크로네시아, 해양생명공학의 미래를 열다 (제1편)      

20 20070413  코는 알고 있다, 체취의 비밀(제3편)     

19 20070406  당신의 지갑을 노린다, 향기 마케팅(제2편)      

18 20070330  마음을 조종한다-후각의 비밀 (제1편)      

17 20070323  천지창조 2.0 - 나노로봇의 탄생 (제2편)

16 20070316  천지창조 2.0 - 나노로봇의 탄생 (제1편)     

15 20070309  광란 소나타, 유영철 사건 (제2편) / 스트레스 효과 - 벼락치기는 나의 힘?!     

14 20070223  광란 소나타, 유영철 사건 (제1편) / 수면의 과학 - 기억하려면 자라!     

13 20070209  뇌의 욕망 - 바람기의 비밀     

12 20070202  2부작 과학의 위대한 동반자 실험동물 - 2편 “인간에게 생명을 말하다”     

11 20070126  4.8, 한반도 대지진의 경고인가?     

10 20070119  2부작 복제 동물이 몰려온다 - 2편 > "복제동물, 끝나지 않은 꿈"     

9 20070112  2부작 복제 동물이 몰려온다 - 1편 > 슈퍼 동물가족의 탄생     

8 20061222  4부작 한 잔의 과학 - 4편. 자연의 선물에서 현대의 약물로, 카페인 권하는 사회     

7 20061215  4부작 한 잔의 과학 - 3편. 각성인가, 중독인가 카페인의 두 얼굴

6 20061208  4부작 한 잔의 과학 - 2편. 술버릇의 비밀 - 알코올, 뇌를 지배하다     

5 20061201  4부작 한 잔의 과학 - 1편. 비어고글 이펙트, 술이 사랑을 만든다??     

4 20061124  최악의 화재 (2부)    

3 20061117  최악의 화재 (1부)    

2 20061110  슈퍼 태풍 2030 (2부)    

1 20061103  슈퍼 태풍 2030



자세히보기:
 http://www.kbsmedias.co.kr/kbs/?ca_id=1101301z0&doc=shop/list.php





과학카페 (85회)

이보다 짜릿할 수 없다! 롤러코스터의 비밀
 

방송 : 2008년 8월 30일 저녁 7시 10분, KBS 1TV
담당 : 양홍선 PD
  

즐거운 공포, 짜릿한 스릴이 있는 곳, 테마파그-놀이공원!
이 시대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놀이공원 한 번쯤 못가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놀이공원은 인기 절정의 나들이 코스다.
기발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든 놀이공원! 그 과학의 비밀을 공개한다.




■ 어트랙션의 꽃, 롤러코스터의 숨은 과학을 밝힌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약 70여개의 테마파크가 성행중이다. 놀이공원들에서 운영되고 있는 어트랙션 개수만도 수천 가지에 이르는데. 어떤 놀이공원에서든지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은 단연 빠르게 달리는 열차, ‘롤러코스터’다.

기본 7~80km가 넘는 스피드에 360도 회전은 기본, 최근에는 우주공간에서 느끼는 수준인 4.5G의 중력가속도까지 느끼게 하는 나무 롤러코스터까지 선보였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의 짜릿한 기분! 놀이기구를 탈 때 느껴지는 흥분과 쾌감, 그 정체는 무엇일까?
롤러코스터가 떨어질 때, 하강할 때 생기는 중력에 운동에너지의 힘이 더해져
우리 몸이 땅으로 꺼지는 듯 한 느낌! 바로, G포스입니다.
- 김청균 교수 int


■ 스피드의 비밀, 카레이싱!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롤러코스터뿐만이 아니다. 숨막히는 속도로 스릴를 만끽할 수 있는 스피드의 대표명사 ‘카레이싱’. 같은 속도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체감 속도가 달라진다고 하는데...스피드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본다.

밖에서 보시는 거랑 차안에서 달리는 것이랑
굉장히 달라요. 굉장한 스피드가 느껴져요.
- 류시원 Int 중
빠르게 달리고 떨어져 당신을 흥분시키는 수많은 어트랙션들-.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과학!
그 속에 숨겨진 과학을 밝힌다!


 

◎ 서브코너1. <푸드사이언스>
“한우, 과학으로 승부한다”
소의 출생부터 도축, 판매, 식탁까지의 DNA 동일성 검사를 통해 추적 가능하도록 한 쇠고기 이력추적제.
우리보다 먼저 광우병 파동을 겪었던 일본 역시 쇠고기 이력 추적제를 통해 화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게 됐다는데. 한우 농가에서부터 유통 전 과정의 과학적 추적을 통해 쇠고기 이력추적제의 가능성과 의의를 찾아본다.


◎ 서브코너2. <리딩사이언스>
“책 읽어주기의 힘”(2편)
행복한 독서습관의 첫걸음, 책 읽어주기.
책을 읽어주면 아이의 두뇌가 발달된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읽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하루 15분,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 아이의 인생이 바뀐다는데...
책 읽어주기의 놀라운 힘, 그 과학적 원리를 알아본다.


◎ 서브코너3.<애니멀 사이언스>
“개에 대한 오해와 진실”(4편)
우리나라 애견인구만 천만 명! 우리들은 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개와 뽀뽀하는 것이 과연 안전할까? 개에게는 뜨거운 음식을 먹이면 안 된다는데... 개가 TV를 즐겨 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밖에 개에게 냄새가 나는 원인은 무엇인지 등 개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 서브코너4.<올림픽 사이언스>
“미래의 올림픽 Future Olympics-첨단운동장비”
스포츠 영웅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스포츠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최첨단 소재로 물의 저항과 부력을 높여주는 수영복으로 좋은 성적으로 거둘 수 있었던 마린보이 박태환, 발의 피로를 최소화 시켜주는 운동화의 도움을 받은 마라톤 이봉주 선수!
첨단 장비를 통해 기록 향상에 도움을 받은 선수들의 사례와 어떤 원리가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를 분석한다.


 

1회부터~방송목록


 

88 20080830  이보다 짜릿할 수 없다! 롤러코스터의 비밀   


KBS과학카페(10종세트)-DVD


KBS영상으로 보는 과학 DVD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44

 

 

 


[통영]한려수도 여행

출처: 파란여행







 한려수도 여행의 중심점이라면 단연 소매물도 등대섬과 비진도,그리고 한산섬이다. 통영에서 출발하는 한려수도 유람선의 기본일정도 바로 이 세곳을 기점으로 한다. 먼저 소매물도 등대섬을 한바퀴 돌아 비진도와 한산섬을 돌아보게 되는 일정이다.
통영에서 뱃길로 한시간정도면 소매물도 등대섬이 닿는다. 바다위로 내민 섬 자신의 몸 만큼이나 되는 하얀 등대를 이고 있는 섬. 한 켠에는 깍아지른 절벽이 다른 쪽은 자그마한 평원이 펼쳐져 있는 그림 같은 섬이 나타난다. 일명 "쿠크다스의 섬" 소매물도 등대섬. 사람들을 내려준 배가 그대로 섬에 얼굴을 대고 있을 수가 없어서 멀찌감치 바다로 나갔다가 되돌아와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절해 고도다. 이 등대섬은 아주 작다. 그러나 그 어떤 큰 섬보다도 아름답고 섬답다. 경치가 뛰어나 해금도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우리 나라의 수많은 등대섬 가운데서도 하얀 등대와 갯 벼랑이 가장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이다. 또한 바다에서 바라보는 기암절벽의 풍취는 거제 해금강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등대섬을 떠나 다시 30분이면 비진도에 닿게된다. 보배에 비길 만한 풍광을 품고 있다하여 비진도라 불리우는 이곳은 두 개의 섬이 얕은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있어 흡사 8자 모양을 하고 있다. 남해바다의 다른 이름난 섬에 비해 호젓하기 때문에 한적한 바다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휴식지가 된다. 인진도의 내항이 있는 위쪽을 안섬, 외항이 있는 아래쪽은 바깥섬이라 불리우는데 비진도 사람들은 모두 안 섬에서 산다. 때문에 비진도 여행에서의 이동은 외항에서 내린 다음에 내항까지 도보로 걷는 것이 전부다. 3월이면 내항주변으로 동백이 만개해 한려수도에서의 볼거리를 하나더 보태준다.
비진도에서 한산섬은 지척의 거리다. 뱃길로 10분이면 닿는 거리. 중간중간에 기묘한 생김새의 갯바위들과 파란 바다위에 하얗게 떠 있는 어장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방이다. 한산섬은 이순신 장군의 관한 가장 많은 유적이 남아있는 곳. 초봄에는 동백이 만개하고, 팔손이군락이 섬전체를 수놓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한산섬 수루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남해바다 너머로 통영의 모습이 아스라히 보인다. 
이렇게 한려수도의 소매물도 등대섬과 비진도,한산섬을 돌아보고나면 딱 반나절이 소요된다.




1. 서울주변->경부고속도로->대전터널->대전통영간고속도로->진주->사천공항방향->고성-> 통영->통영운하->미륵도->도남관광단지 유람선 선착장

2. 광주방면->남해안고속도로->서마산 나들목->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시내방향->다음삼거리에서 좌회전->통영.거제방향->당항포->고성->통영

3.부산->남해안고속도로->동마산나들목->마산시내->구산->당항포->고성->통영

4.대구방면->구마고속도로->내서->남해안고속도로->부산방면->서마산나들목->당항포->고성->통영


1.서울 고속버스터미널->통영행 고속버스
2.대전,부산->통영행고속버스
3.현지교통: 통영터미널->도남관광단지행 시내버스 매 30분마다 운행



사진찍기좋은곳
한려수도 여행에서 사진찍기에 가장 좋은 곳은 비진도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에서 내항으로 넘어가는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는 비진도 해수욕장이 정말 아름답다. 이곳을 배경으로 하면 아주 좋은 사진이된다. 또한 등대섬에서는 등대를 올려다보며 찍기보다는 하얀등대에서 뒤쪽으로 바다와 절벽을 아래쪽으로 배치해 찍어보면 아주 좋은 사진이 된다.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바퀴 돌게 되는데, 이때 섬의 동쪽방향에서 등대섬 전체를 조망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아주 좋은 사진이 된다.

enjoy point..연계코스
통영에서는 미륵도 용화사와 달아공원, 남망산공원등을 돌아볼만하고, 이왕이면 짬을 내어 거제도로 가보길 권한다. 통영에서 외도 해금강 유람선이 뜨는 구조라나 학동,해금강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42

 

 

 


‘남도답사 1번지’ 땅끝 가는 길

[민삿갓의 팔도기행] 봄처녀 살포시 미소 짓는 ‘남도답사 1번지’ 땅끝 가는 길

봄! 코끝에 걸려드는 한 줄기 훈풍에서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이즈음. 성미 급한 이들은 기다림에 지쳐 남도 땅끝마을로 떠난다. 남해를 건너와 한반도 땅끝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봄처녀를 만나기 위해.



▲ 땅끝마을 앞바다 풍광. 왼쪽의 갯바위는 일출 명소로 알려진 맴섬, 오른쪽은 형제바위다.

해남 땅끝은 우리나라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어 어느 지방에서 접근하든 제법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땅끝 여정을 제대로 즐기려면 1박2일로는 조금 무리가 되고 2박3일 정도는 돼야 무난하다.

서해안고속도로 남단의 목포 나들목을 빠져나와 2번 국도를 타고 강진을 향해 달린다. 가는 도중 왼쪽을 힐끗 보면 저 멀리서 남도 명산 월출산이 유혹한다. 그곳엔 유명한 무위사·월남사지 등이 있지만 이번 땅끝 나들이에선 이런 명소들을 잠시 지나치자. 그렇지 않으면 사나흘이 걸려도 땅끝까지 가는 일이 까마득할지도 모르니.

올 봄, 땅끝 여정 첫 대상지는 강진읍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된 고을이다. 사의재, 보은산방 등 다산 선생이 유배 초기에 머물던 곳이 복원돼 있다. 무엇보다 이런 봄날엔 모란꽃 활짝 핀 영랑생가를 꼭 들러보자. 첫날 점심은 이곳 강진읍내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 유명한 맛집이 많다.

이어 다산 선생의 중·후기 유배지였던 다산초당으로 간다. 물론 백련사 동백숲에서의 사색도 빼놓을 수 없다. 다산기념관~다산초당~백련사 산책은 남도 여행의 필수 코스다.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이번엔 18번 국도로 해남읍내를 거쳐 녹우단(녹우당)으로 간다. 녹우단은 조선시대 명문장가인 고산 윤선도 종손이 살고 있는 해남 윤씨 종가다. 고택 답사, 국보와 보물들이 여러 점 보관돼 있는 고산유물관, 뒷산의 비자림 등을 둘러보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어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으로 간다. 일정이 1박2일이든 2박3일이든 이곳에서 숙박하는 게 무난하다. 숙소와 식당이 넉넉하다. 대흥사·일지암 구경과 두륜산 산행까지 여유롭게 섭렵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산행을 1~2시간 절약할 수 있다.



▲ ‘땅끝지맥’이 바다로 빠져드는 갯바위에 서 있는 땅끝탑. 이곳이 땅끝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이튿날, 두륜산을 벗어난다. 13번 국도를 타고 다시 땅끝으로 길을 잡지만,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절집인 달마산 미황사의 유혹도 뿌리칠 수 없다. 봄볕에 정갈하게 씻긴 부도밭 가는 동백길 산책도 좋다. 도솔암은 도솔봉 암벽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아담한 암자다. 여기서 보는 다도해 풍광이 빼어나다.

도솔암을 빠져나오면 드디어 땅끝. 2박3일 일정이라면 여기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숙박업소와 식당이 많다. 이튿날 아침에 땅끝탑까지 산책을 꼭 즐긴다. 이어 전망대에 오르면 백두산부터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바다로 잦아드는 장엄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땅끝마을 산책은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1~2시간 정도 걸린다.

이제 귀가할 시각. 만약 오후 늦게 떠나도 괜찮다면 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 보길도에 갔다 오는 것도 좋다. 2~3시간 정도 더 잡아야 한다.

땅끝 여정을 1박2일로 잡았다면, 영랑생가~사의재~다산초당~녹우단~대흥사~(숙박)~미황사~도솔암~땅끝마을 순서로 둘러보고 귀갓길에 오르면 된다.

꽃샘추위 탓에  봄처녀 발걸음이 굼뜨기만 하더니, 봄비가 몇 차례 대지를 적시자 하루가 다르게 봄처녀의 숨결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4월이 되면 황톳빛 남도 산하는 연둣빛 신록으로 점차 물들어가고, 그 사이로는 처절하게 스러지는 동백꽃의 마지막 절규가 오히려 ‘화사’하다.

‘끝’이라는 말은 마지막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끝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땅끝’이라는 말은 ‘섣달에 그리는 춘삼월’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남도, 그 중에서도 강진·해남을 거쳐 땅끝마을로 여정을 잡았을 땐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땅끝 가는 길은 멀다.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최소 5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고속도로만 벗어나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 눈을 놀라게 하는 경치에다가 혀를 호사시켜주는 별미가 가득하고, 무엇보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에도 깊은 내력이 있는 남도 답사 1번지 아닌가.

땅끝 가는 길, 가만히 귀 기울여보자. 남녘 바다를 건너온 봄처녀가 가슴 깊이 숨겨 놓았던 그 기나긴 사연을 소곤소곤 들려줄 테니.


영랑생가&사의재


해마다 찾아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

강진읍내에서 땅끝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강진읍내 풍광은 남도 해안가에 자리한 여느 읍내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평범한 읍내 풍경이지만 이곳은 남도 여행의 중요한 베이스캠프다.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1903~1950) 시인을 먼저 만난다. ‘북도에 소월이라면 남도에 영랑’이라던 서정시의 대가. 소월이 북도의 투박한 사투리로 독특한 가락을 표현했다면, 영랑은 남도의 곰살스러운 사투리로 시심을 노래했다. 영랑생가 행랑채 앞 큼직한 돌엔 저 유명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새겨져 있다. 차분히 읊어보고 봄을 느껴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 1 영랑문학제가 열리는 4월 하순 영랑생가를 찾아 활짝 핀 모란을 감상하는 사람들. 2 김영랑 시인의 생가. 시인은 이 집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주옥같은 시를 쓰기 위해 시심을 가다듬었다. 3 강진 동쪽 관문의 영랑공원엔 김영랑 시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시를 읊었다면 이젠 생가를 둘러볼 차례. 문화유산해설사가 항상 생가에 상주하니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다. 물론 무료다.

잠시 영랑의 이력을 거칠게나마 살펴보자. 우리나라 서정시의 거목인 영랑은 이 집에서 태어났다. 영랑은 강진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가 서울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배우고 휘문의숙에 입학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만세운동을 모의했으나 발각되는 바람에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이듬해엔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편입한다. 그러다 1923년 동경대지진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8·15광복 후 영랑은 우익청년운동에 힘을 쏟는다. 1948년 영랑 일가는 이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한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 영랑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해 지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자 거리에 나왔다가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이튿날 세상을 떠나고 만다. 48세라는 길지 않은 일생이다.

영랑 일가가 집을 팔고 떠난 뒤 주인이 몇 차례 바뀌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된 것을 1985년 강진군에서 사들인 뒤 영랑 가족의 고증을 얻어 옛 집에 가깝게 복원했다. 생전에 영랑은 나라 잃은 한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대숲으로 둘러싸인 이 생가에서 북을 치면서 시를 지었다고 한다.

집 주변엔 영랑 시의 소재였던 굽은 돌담, 돌로 쌓은 우물, 장독대와 감나무, 모란과 대숲과 동백나무들이 있다. 무엇보다 영랑의 대표 시의 소재가 된 모란꽃을 보려면 4월 하순에 찾으면 된다. 영랑생가의 문화유산해설사는 “이곳 영랑생가 모란꽃은 보통 4월 20일 무렵 피어나기 시작해 4월 30일 이전에 활짝 피어난다”고 귀띔한다.

매년 4월 하순 무렵, 모란이 피는 때를 맞춰 영랑의 시심을 기리는 영랑문학제가 열린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는 영랑문학제는 4월 23일(금)부터 25일(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그러니 4월에 땅끝 여행을 계획한다면 ‘모란이 피는 찬란한 봄’ 풍경이 펼쳐지는 4월 넷째 주말 무렵에 일정을 잡는 게 좋겠다. 영랑생가 061-430-3185

다산 정약용 선생이 머물던 주막 사의재

강진읍내엔 다산의 체취가 가득하다. 하여 영랑생가를 나온 뒤 바로 다산초당으로 달려가기보단 이곳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의 체취를 느껴보자.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됐을 때 바로 다산초당으로 가지 않았다. 다산은 이곳 읍내에서만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1801년 다산은 신유박해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됐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이 터지자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다시 유배길에 올랐다. 형은 흑산도, 아우는 강진이었다. 형제는 나주 율정점 주막에 도착한 뒤 이튿날 이별한다. 동생은 ‘율정별(栗亭別)’이란 시를 남긴다.



▲ 1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처음 유배왔을 때 머물던 주막집. 다산은 ‘사의재’란 이름을 붙였다. 2 다산 선생은 백련사 혜장선사의 주선으로 고성사의 보은산방으로 옮기게 된다.

띠로 이은 주막집 새벽 등잔불 푸르르 꺼지려는데 / 일어나 샛별을 보니 헤어질 일 참담하네 / 그리운 정 가슴에 품은 채 두 사람 서로 할 말을 잃어 / 억지로 말을 꺼내니 목이 메어 오열하네’

1801년 11월 22일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주모 할머니의 배려로 강진의 동문 밖 주막집에 머무른다. 제 아무리 다산이라 해도 유배 초기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술로 시름을 달랬던 모양이다. 어느 날 주모가 다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찌 그냥 이렇게 헛되이 사시렵니까.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갈 데 없는 자신을 거둬준 주모의 닦달에 다산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자신의 거처를 사의재(四宜齋)라 하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기로 다짐한다. 결국 다산이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극복하고 조선 최고의 사상가로 거듭나게 된 데엔 주모의 자극이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당호인 사의(四宜)란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란 뜻이다. 네 가지는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가리킨다. 고난에 닥쳐서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학자의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이 무렵 유명한 실학자가 강진으로 귀양왔다는 소문을 들은 백련사의 혜장선사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강진군은 다산이 머물던 사의재를 2007년 복원했다. 그런데 그냥 빈 집이 아니고 음식과 차 등을 들 수 있는 진짜 주막이다. 음식도 1인분에 모두 5,000원 수준. 만약 강진읍내에서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괜찮겠다. 숙박은 할 수 없다.

1805년 10월 8일, 다산은 약 4년 동안 머물던 사의재를 떠나 5리쯤 떨어진 고성사 보은산방(寶恩山房)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물론 혜장선사의 주선이 있었다. 다산은 이곳에서 <주역> 연구서를 저작하고, 52편의 시를 집필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6년 9월 1일 이학래의 집으로 옮기게 된다. 이학래는 강진 6제자(황상, 손병조, 황취, 황지초, 김재정, 이학래) 중 막내다. 이학래 집터는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강진군에서는 현재 도암만 가까운 곳의 폐가 터를 이학래 집터로 지정해 복원 준비를 하는 중이다.

숙식>> 강진읍내엔 프린스장(061-433-7800), 가필드(061-433-1212), 모두모텔(061- 433-8776) 등 모텔급 숙박시설이 많다.

강진 한정식은 강진만 개펄과 탐진강, 그리고 주변의 들녘에서 구한 온갖 재료로 맛을 낸 요리를 푸짐하게 내는 것이 특징. 해태식당(061-434-2486), 명동식당(061-434-2147) 등이 유명하다. 보통 기본 2인상에 5만 원 내외.

동해회관(061-433-1180)에서 차리는 자연산 짱뚱어 요리도 아주 유명하다. 짱뚱어탕 1인분 6,000원, 짱뚱어 전골(4인 기준)은 3만4,000원.

다산이 머물던 주막인 사의재(061-433-3223)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다. 새싹비빔밥 5,000원, 추어탕 5,000원. 주막집답게 동동주(5,000원)도 마실 수 있다. 안주로는 매생이전(5,000원), 간재미찜(1만 원) 등이 준비돼 있다.


다산초당&백련사

“다산 선생도 저 붉은 동백꽃에 반했으리”

강진 제자의 집에서 두 번의 겨울을 지낸 1808년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에 다산은 드디어 해남 윤씨 소유인 만덕산(409m) 기슭의 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산은 해남 윤씨와 혈연관계가 있었다. 다산의 모친이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손녀고,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니 해남 윤씨 집안은 다산의 먼 외가 친척 관계다.

다산은 초당에서 해남 윤씨 집안의 각별한 배려로 1818년 9월 해배될 때까지 본격적으로 학문을 탐구하게 된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이른바 ‘다산학’이라 일컬어지는 방대한 저술을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었다.



▲ 1 강진 만덕산 백련사. 고려 후기에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을 개설한 절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2 조선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이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3 다산 선생이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던 자리에 세워진 천일각.

강진읍내 쪽에서 다산초당으로 접근하다 보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큰길에서 백련사, 다산초당, 다산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이 각각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예전엔 백련사에서 내려 다산초당으로 걸어갔다 오든지, 아니면 다산초당에서 접근해 백련사까지 다녀오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 답사 순서는 다산기념관에서 다산의 학문과 일생을 먼저 살핀 다음, 다산초당을 거쳐 백련사로 가는 코스가 주를 이룬다. 만약 차량 지원이 가능한 단체관람이라면 차량을 백련사 주차장에 기다리게 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다시 다산기념관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다산기념관~(20분)~다산초당~(30분)~백련사 왕복 코스가 걷는 데만 1시간30분쯤 걸린다. 따라서 2시간 정도면 봄날의 여유로운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인 것이다.

한편 최근 강진군에서는 다산의 체취가 묻어 있는 유적지를 연결한 ‘다산유배길’을 조성했다. 다산기념관~다산초당~백련사~도암만 둑방길~이학래 집터~사의재~영랑생가~보은산방은 총 거리가 약 17km. 꽉 찬 하루가 필요한 거리다. 걷기에 자신이 있거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 시도해보자. 그렇지만 보통 여행객들은 다산수련원~다산초당~백련사 왕복 코스로 아쉬움을 달랜다.

다산기념관을 출발하면 초입의 운치 있는 두충나무 군락지, 정호승 시인이 이름 붙여준 ‘뿌리의 길’을 차례로 지난다. 호젓한 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다산초당에 다다른다.

현재 기와로 지붕을 올린 다산초당은 본디 초가였다. 이는 다산과 교분이 있던 해남 일지암의 초의선사가 다산과 함께 1812년 가을 월출산 구경을 하고 오다가 그렸다는 ‘다산초당도’가 발견되면서 확인됐다.

이렇듯 원래 초가였던 것을 복원할 때 매년 짚을 갈아주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붕을 기와로 올리는 바람에 ‘와당’이 되어버려 ‘초당’의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주변엔 다산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동암(東庵)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하던 건물로서 여기에서 저술작업이 이루어졌다. 서암(西庵)은 다산의 제자들이 머물던 곳이다. 동암과 서암 모두 1970년대에 복원했다.

뜰 앞의 평평한 바윗돌은 다산이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찻물을 끓이던 부엌인 다조요, 초당 왼편 뒤쪽의 샘물은 다산이 찻물로 쓰던 약천(藥泉)이다. 동백 그늘 드리워진 뜰 오른쪽의 아담한 연못은 다산이 직접 축대를 쌓고 못을 파 물고기도 기르고, 꽃나무도 줄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다. 또 초당 뒤쪽의 바위벽엔 다산 선생이 해배될 때 썼다는 정석(丁石)이란 글씨가 있는데, 이 네 가지를 일컬어 ‘다산4경’이라 한다.

다산은 다산초당으로 들어오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본격적으로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혜장선사와 함께 다도를 즐겼다. 만덕산엔 야생 차나무도 많았다. 다산은 백련사 혜장선사에게 “목마르게 바라노니 부디 선물을 아끼지 말기를” 하며 걸명소(乞茗疎)를 보내기도 했다.

백련사 부도밭 주변에 떨어진 동백꽃 장관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 초입의 산등성이는 다산초당에서 가장 전망이 트인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멀리 도암만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천일각(天一閣)은 이를 기리기 위해 1970년대에 세워진 것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오솔길은 다산 선생과 혜장선사가 서로 만나기 위해 오가던 길이다. 동백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암만 풍경은 고즈넉하고, 대나무와 차나무와 동백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니 사색하며 걷기에 더없이 좋다.

고려 말 천태종 부흥의 본산이었던 유서 깊은 백련사(白蓮寺) 주변의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은 남도의 봄을 봄답게 해주는 곳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 1500여 그루에서 피어나는 동백꽃들은 도암만 바다, 그리고 단아한 절집과 조화를 이룬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절을 가리켜 ‘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며 동백 또한 곁들여서 창취가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표현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동백숲에서 부도밭 주변의 정취가 일품이다. 이 동백숲에서 붉은 기운을 느끼려면 한겨울보다 동백꽃이 바닥을 뒤덮는 3월 이후에 찾으면 된다. 물론 4월에도 이런 운치를 즐길 수 있다.



▲ 1 다산 선생이 차를 달일 때 쓰던 샘물인 약천. 2 다산초당 근처에 세워져 있는 다산기념관. 다산의 일생과 학문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3 백련사 부도밭의 동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은 3~4월에 온통 붉게 변한다.

한편 백련사에서는 4월 10일(토) 다례제가 예정돼 있다. 오후 2시 백련사 명부전에서 다례제를 지내고, 3시엔 동백림에서 들차회가 있다. 이어 도암만이 눈에 들어오는 붉은 동백숲에 소박한 무대를 꾸미고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동안 음악회를 연다. 풀피리, 해금, 판소리 등의 공연이 준비돼 있으니 참고하자. 다산기념관 061-430-3780, 백련사 061-432-0837

숙식>> 다산초당 산책 출발 지점인 다산수련원(061-430-3786)에서 숙박할 수 있다. 2인 1실 기준 1만8,000원, 추가 1명당 5,000원. 방 1칸에서 5명까지 숙박 가능. 단체손님은 식사 예약이 가능하다. 1인분 5,000원. 밥상에 7~8가지 정도의 반찬이 올라온다. 주변에 들꽃민박(061-432-9080), 알뜰수퍼민박(061-434-8487), 다향소축(061-432-0360), 다산촌명가(061-433-5555) 등이 있다.



해남 녹우단

‘푸른 비’ 쏟아지는 고산 윤선도 고택

다산초당을 벗어난다. 이어 18번 국도를 타면 해남읍의 녹우단(綠雨壇·사적 제167호)이 소매를 붙든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기거하던 사랑채가 녹우당(綠雨堂)이고, 녹우당을 포함한 해남 윤씨 종택 전체를 녹우단이라 한다. 해남 현지에서도 이정표에 녹우단과 녹우당을 섞어 쓰고 있지만, 모두 같은 곳을 뜻하니 헷갈리지 말자.

그런데 당호가 녹우(綠雨)? 무슨 뜻일까. 여러 가지다. 흔히 가을에 녹우단 은행나무에서 노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마치 빗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리 지은 것이라 한다. 집 뒤편의 대숲에 부는 바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녹우단 뒷산엔 비자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바람 부는 날이면 마치 빗줄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 해남 윤씨 종택인 녹우단 전경. 오른쪽은 고산유물전시관이다.

그렇지만 녹우는 사전적 의미로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자연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되는 생명수인 셈이다. 녹우당이란 당호를 지은 이는 공재(恭齋)와 절친한 사이였던 옥동(玉洞) 이서(李敍·1662∼1723). 그러니 공재의 재능을 잘 알고 있던 이서가 공재를 녹우에 견주어 당호를 붙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은행나무, 대숲, 비자림 모두 녹우단의 소중한 보물이다.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고산이 시심을 가다듬는 것을 지켜보았을 테고, 대숲은 국난이 닥쳤을 때마다 대대로 전해오는 소중한 보물을 항아리에 넣어 묻어두던 곳이다. 비자림은 해남 윤씨가 대대로 가꿔온 숲이다. 녹우단에 처음 터를 잡아 해남 윤씨가 번창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한 어초은 윤효정이 “뒷산의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유훈을 남기자 후손들이 비자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다. 현재 비자림엔 500여 년 된 비자나무 400여 그루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 1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이 있는 호젓한 돌담길. 제법 운치가 넘치는 고풍스런 길이다. 2 고산 윤선도 집안에 전해오는 유물이 전시된 고산유물전시관. 현재 새로운 유물관을 짓고 있다. 3 고산 윤선도 증손인 공재 윤두서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 국보로 지정돼 있다.

누가 뭐라 해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문적(文籍), 문서 및 고화(古畵) 등이 고루 갖추어진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이곳엔 보물로 지정된 산중신곡(보물 제482호), 노비문권(보물 제483호)를 비롯해 고산의 육필과 집안 문서, 고산의 증손인 윤두서가 그린 걸작 공재자화상(국보 제240호), 그리고 동국여지도·일본여도와 ‘나물 캐는 두 여인’ 등이 수록된 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등이 전시돼 있다.

현재 새로 짓고 있는 유물관은 오는 5월 18일 완공 예정이다. 따라서 그 이후엔 유물을 새로운 전시관으로 옮겨 전시하게 된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새 전시관엔 그동안 비좁아 전시하지 못했던 귀한 유물들도 나올 것”이라고 귀띔한다.

이런 소중한 유물을 관람하고 비자림에서 삼림욕을 하고 나면 입장료(일반 1,000원, 어린이 700원)가 전혀 아깝지 않다. 1시간 정도면 비자림 산책까지 포함해 녹우단 일대를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녹우단 061-530-5548


두륜산 대흥사&일지암

봄 깊은 산중 암자엔 차향 그윽하고

백두에서 길게 뻗어 내려와 땅끝에 사자봉을 세우기 전에 아쉬움처럼 빚은 명품이 두륜산(703m)과 달마산(489m)이다. 두 산 모두 이 땅에서 빠지지 않는 경관을 지니고 있다. 그 산자락 곳곳엔 초록빛을 띤 늘푸른나무 동백나무가 겨울에도 봄꿈을 키우고 있다.

서산대사가 일찍이 “천년병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라 말한 대흥사(大興寺) 가는 길. 봄이 긴 계곡 장춘동(長春洞)은 녹색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한 싱싱한 숲길이다. 아홉 굽이 숲길이라고 해서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고도 하는 이 길 양쪽엔 측백나무와 편백나무가 가득하다. 그 너머 숲엔 수백 년 수령의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4월이면 이 길엔 봄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녹색의 생명 덩어리가 숲을 떠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푸른 기운이 몸 안에 가득 들어찰 것만 같은 생명의 길이다.



▲ 1 신록으로 물든 두륜산 아래 천년 고찰 대흥사가 포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봄이 깊어지는 4월 하순의 풍경이다. 2 일지암과 동백나무. 떨어진 동백꽃들이 땅을 붉게 물들였다.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을 촬영했던 고택인 유선여관을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면, 푸른 숲 그늘에 수십 기의 부도가 모여 있는 부도밭이다. 대흥사가 배출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의 부도와 비를 모시고 있다. 당연히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의 부도도 있다.

두륜산의 두륜(頭崙)은 백두산의 ‘두’자와 곤륜산의 ‘륜’자에서 따온 이름으로 중간에 ‘산이름 륜’자가 ‘바퀴 륜’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원래 ‘두른산’을 한자어로 붙인 이름이다. 가련봉, 고계봉, 능허대, 두륜봉, 도솔봉 등 서산대사가 천년병화가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 이 산줄기가 ‘봄이 긴 골’을 용틀임하듯 감싸고 있는 것을 보면 ‘두른산’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가련봉과 능허대, 두륜봉이 수호신처럼 굽어보고 있는 대흥사 경내로 들어가 해탈문 우측으로 걷다 보면 맑은 무염지가 반기고 은은한 차향이 느껴지는 동다실이다. 어느 때 문을 열고 들어가도 좋은 찻집인데 기왕이면 일지암에 다녀온 뒤 여유 있게 차를 들고 싶다. 바로 옆엔 성보박물관도 보인다. 이곳은 서산대사의 금란가사, 옥발, 수저, 신발, 염주, 교지, 승군다표지물 등 많은 유물이 갖춰져 있는 서산관, 초의선사의 차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초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 1 다성으로 일컬어지던 초의선사가 물맛을 자랑하던 일지암 유천. 2 기묘하게 이루어진 두륜산 구름다리. 두륜봉 정상 근처에 있어 본격 산행을 해야 구경할 수 있다. 3 대흥사 입구의 부도밭. 대흥사가 배출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의 부도를 모시고 있다.

신라 말기에 세워진 대흥사는 당시엔 한반도 남서쪽 해안의 자그마한 절집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서산대사로 인해 당대 최고 가람으로 거듭났다.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위태로운 나라를 구한 승병장 서산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전 제자인 사명당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두라고 유언했다. 서산대사가 입적한 후 제자들은 유언을 따랐고, 구국의 영웅을 모신 이 가람은 그후 크게 일어나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했다.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를 모신 사당이다. 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여 제자들이 1669년에 건립했다. 정조가 표충사라 사액하였으며, 나라에서는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참고로 대흥사 경내엔 유심히 살필 편액이 여럿이다.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고, ‘대웅보전’은 이광사의 글씨, ‘가허루’는 이삼만의 작품이다.

표충사 앞엔 편안한 표정으로 단지를 들고 앉아 있는 노스님의 동상이 있으니 바로 초의선사다. 무안에서 태어나 16세에 출가한 후 40여 년간 두륜산 일지암에서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었던 선사는 시와 글과 그림에 능통한 명인이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다도(茶道)를 정립한 다성(茶聖)이었다.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발길을 일지암으로 향한다. 길섶엔 동백꽃 피고 지는데,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길을 얼마쯤 걸으면 어느새 차향 그윽하게 풍겨오는 일지암(一枝菴)이다. 한 개의 나뭇가지로 지은 암자라! 이름은 ‘뱁새는 항상 한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무 한 가지에만 살아도 마음이 편하다(安身在一枝)’는 한산시(寒山詩)의 일지(一枝)를 따온 것이다. 결국 ‘일지’는 허름한 초가에서 차와 더불어 평생을 지내면서 마음을 맑게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스님의 ‘초의(草衣)’라는 법호와 의미가 맞닿는다.



초의선사가 40여 년 머물던 일지암

39세인 1824년 이곳에 띳집을 지어 머물던 조선 후기의 선승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당대 거유들과 사귀며 다도와 선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차향과 맛이 우수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동다송>과 <다신전>은 ‘차의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저술로 평가된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찻잎을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일 때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일지암 뒤꼍 동백나무 우거진 산등성이에서 흘러나오는 유천(乳泉)은 ‘물은 차의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던 초의선사가 좋은 물이라 칭찬하던 샘물이다. 선사가 자랑해 마지않았던 맑은 유천 한 모금을 들이켜고 돌아보면 아름드리 동백나무 몇 그루와 푸른 차밭 풍경이 싱그럽다. 초의선사도 이 풍경을 사랑했을 것이니 비록 차 한 잔 권하는 스님 없어도 마음은 더 없이 한가롭다.

대흥사를 찾고서도 두륜산 산행을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두륜산 산정에서 감상하는 서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은 정말 일품이다. 여기에 서면 ‘섬들의 천국’이라는 다도해의 섬들을 가장 많이 멀리 볼 수 있다. 한반도 땅끝까지 이어진 산줄기와 남해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 보길도 너머로 추자도, 그리고 날씨가 맑으면 제주의 한라산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부챗살처럼 뻗은 산길을 여러 코스로 조합할 수 있지만, 대흥사부터 산행을 시작한다면 대흥사~오심재~능허대~가련봉~두륜봉~구름다리~일지암~대흥사 회귀 코스가 가장 뿌듯하다. 3시간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대흥사 입장료 성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대흥사 종무소 061-534-5502

두륜산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주릉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대흥사 집단시설지구에서 출발해 고계봉(636m) 정상 아래 해발 570m 지점까지 이어진다. 케이블카~고계봉~오심재~노승봉~가련봉~두륜봉~구름다리~일지암~대흥사 코스는 대략 2시간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케이블카 운행 시각은 08:00~18:00. 요금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 두륜산케이블카 061-534-8992, http://www.haenamcablecar.com/

숙식>> 두륜산 집단시설지구에 여관과 민박집 같은 숙박시설이 많고, 산채비빔밥·산채정식 등을 차려 내는 식당도 여럿이다. 대흥사 입구의 유선여관(061-534-2959)은 영화 ‘서편제’를 촬영하기도 한 전통 한옥. 남도의 온갖 반찬이 올라오는 특별한정식이 4인 기준 한 상(8만 원)으로 나온다. 숙박 손님에게 아침식사 7,000원, 저녁식사가 1만 원. 숙박비는 2인 1실 기준 3만 원.

이외에도 두륜산 집단시설지구엔 두륜각(061-535-0080), 영빈장(016-534-0076), 대성각(061-535-4700), 대흥각(016-535-1551), 남국장(016-535-3955), 그린장(061-533-3344), 낙원각(061-535-4302), 동일각(061-534-2223) 등 숙박업소가 많다. 전주식당(061-532-7696) 등 산채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이다.


달마산 미황사&도솔암

눈을 놀라게 하는 바위 병풍에 안긴 천년 고찰

대흥사에서 승용차로 30~40분 거리엔 한반도 육지 최남단에 자리한 절집인 미황사(美黃寺)가 있다. 달마산의 거친 암봉들이 창과 검을 세운 것처럼 불쑥불쑥 솟은 바위 병풍과 대웅보전 용마루의 부드러운 곡선이 이뤄낸,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는 제법 아름답다는 평이다.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온 검은 소가 점지한 절집인 천년 고찰 미황사는 한때 도솔암, 문수암 등 열두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 대웅보전 기둥을 받치는 연꽃 모양의 주춧돌엔 게·거북·물고기 같은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어 바닷길을 통해 달마산에 불법이 도착했다는 창건 설화의 암시로 풀이된다.

그러나 150년쯤 전에 중창불사를 위해 ‘궁고’라는 전문 공연놀이패를 꾸려 해안지방 순회공연을 하다가 청산도로 공연을 하러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설장고 스님만 남고 떼죽음을 당했다. 그 뒤 미황사는 쇠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응진당(보물 제1183호) 등 몇몇 당우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불사 덕분에 제법 규모가 커졌다.

부도밭 가는 동백 오솔길도 놓치기 아깝다. 동백꽃 내음에 파묻혀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호흡 맞춰 걷는 맛이 좋다. 비와 바람에 마모되어 옛 향기 그윽한 부도들은 미황사의 위상을 짚어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곳 부도 기단 하부에도 용·학·연꽃 등과 더불어 역시 거북·물고기·게 같은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 달마산 도솔봉 바위틈에 제비집처럼 터를 잡은 도솔암. 주변 조망이 아주 빼어나 최근 명소로 떠올랐다.<사진 해남군청>

바위 벼랑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

달마산의 암봉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봉우리는 달마산 남쪽의 도솔봉이다. 도솔봉 정상 근처에 터를 잡은 도솔암(兜率庵)은 최근 인기를 크게 끌고 있는 명소. 미황사에서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으나 가는 데만 1시간30분 넘게 걸리는 먼 거리다.

달마산 통신탑까지 이어진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르면 도솔봉 턱밑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미황사를 빠져나와 송지면 마봉리에서 도솔암 이정표를 따른다. 마련마을을 지나 통신탑 아래 차를 세워두고 짙은 숲길로 20~30분 걸어가면 도솔천이 열리듯 문득 도솔암이 바위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암자는 암봉 사이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 평평하게 만든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아슬아슬한 벼랑에 세워진 암자라 마당은 손바닥만 하지만 조망은 더 없이 좋다. 남쪽 정면으로 땅끝, 서쪽으로는 진도, 동쪽 완도다. 고개를 돌리면 해남 아래 바다 경관이 연이어 펼쳐진다.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이곳에서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주변 풍광이 너무 빼어나 내공이 강하지 않은 수행자라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될 듯하다. 최근 인기 드라마인 ‘추노’를 여기서 촬영하기도 했다. 극 초반에 추노꾼 대길(장혁 분) 일행이 암자로 송태하(오지호 분)를 추격해가는 장면이다.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패퇴하던 왜군들이 해상 퇴로가 막히자 달마산으로 달아나다 불태워버렸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버려진 채 있었는데, 얼마 전 이곳에 암자를 앉힌 이는 월정사에 있던 법조 스님이다. 2002년 법조 스님은 불자들과 기와·자재 등을 져 날라 한 달 만에 법당을 완성했던 것이다.



▲ 1 바위 병풍을 이룬 달마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미황사. 2 미황사 대웅보전의 주춧돌엔 게·거북·물고기 등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숙식>> 미황사 주변엔 숙식할 곳이 없다. 미황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찰예절, 참선, 차 마시기, 울력, 산행 등으로 짜여 있다. 1박2일 5만 원. 미황사 061-533-3521, http://www.mihwangsa.com/


땅끝마을

한반도 남단에 서서 만끽하는 봄 풍경


해남 땅끝은 백두산의 맑은 정기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거쳐 ‘땅끝기맥’으로 내려와 바다로 잦아드는 극적인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 끝에 서서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많이들 찾는다.

갈두산(156m) 정상에 서 있는 39.5m 높이의 땅끝전망대(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에 오르면 푸른 바다와 섬들이 두 눈에 가득 들어온다. 겨울 해풍 한 올에 봄 냄새가 묻어 있는 땅끝.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으로 뻗어내려 길게 길게 이어져 오던 산줄기가 함몰하고 바다가 시작되는 거기에서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면 흑일·백일·어룡·장구·노화·소안도, 그리고 고산 윤선도의 풍류가 숨쉬는 보길도…. 날씨가 맑고 해무가 없는 날엔 저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도 볼 수 있다.

갈두봉 아랫도리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갯바위엔 땅끝기념비가 있다. 땅끝전망대에서 조금 가파른 산길로 내려갔다 올라올 수도 있지만, 만약 일행 중에 노약자가 있다면 땅끝마을 갈두리 선착장에서 땅끝기념탑까지 이어진 해안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땅끝마을에서 모노레일(왕복입장료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 1 땅끝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땅끝마을 전경. 2 일출 명소로 유명한 땅끝마을 갈두선착장 앞의 맴섬. 매년 2월과 10월에 각각 5~6일 정도만 바위 사이로 솟는 일출을 볼 수 있다. 3 육지의 남쪽 끝에서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땅끝전망대.

땅끝 해안산책로는 제법 운치 있는 길이다. 예전에 해안경비병들이 순찰을 다니면서 생긴 오솔길을 넓혔는데,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라 노인은 물론 아이들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특히 땅끝마을에서 하룻밤 묵었을 경우, 아침에 산책 삼아 땅끝기념탑까지 다녀오면 좋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이 최고다. 땅끝마을에서 땅끝기념탑까지는 왕복 30~40분쯤 걸린다. 전망대까지 한 바퀴 도는 땅끝마을~땅끝탑~땅끝전망대~사거리갈림길~자갈밭삼거리~땅끝탑~땅끝마을 코스는 1시간 소요.

한 쌍의 매미를 닮았다는 맴섬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땅끝마을 선착장 앞바다에 떠 있는 맴섬은 유명한 일출 명소. 그렇지만 폭 5m 남짓한 두 개의 갯바위 사이로 해가 뜨는 광경은 1년에 딱 두 번만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이다. 2월(13~18일)과 10월(23~28일)에 각각 5~6일 정도만 볼 수 있다. 지구의 공전 때문에 해 뜨는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땅끝마을 홈페이지 http://www.openland.or.kr/

시간이 허락한다면 바다 건너 보길도에 다녀오지 않을 수 없다. 땅끝마을 갈두선착장에서 파도를 헤치고 1시간쯤 가면 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 보길도다. 고산은 이 섬에서 자연과 한몸이 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풀어낸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고산이 풍류를 즐겼던 세연정 앞 연못에서 ‘어부사시사’ 시상을 다듬었던 부용동까지 이어지는 3km쯤의 동백길도 좋다. 보길도로 직접 가는 배편은 하루 3회(08:20, 12:30, 14:30). 요금은 어른 8,200원. 여객선터미널 061-535-4268

땅끝마을에서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4km쯤 달리면 땅끝해양사박물관(061-535-2110)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폐교된 송호초등학교 통호분교 자리에 건립된 이 박물관엔 각종 어패류와 박제된 바닷고기와 화석 그리고 곤충류, 파충류, 척추동물 등 모두 2만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61-535-2110



숙식>> 땅끝마을에 갯마을민박(061-533-9153), 솔밭민박(061-535-4937), 땅끝민박(061-533-6389), 하얀집 모텔(061-534-3223), 땅끝푸른모텔(061-534-6677), 전망대민박(061-534-0049), 비치모텔(061-534-1002) 등 숙박업소가 많다. 숙박비는 2인 1실 기준 3만 원 내외. 땅끝마을에서 승용차로 5분 정도 거리의 송호해수욕장에도 땅끝관광호텔(061-535-1000) 등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땅끝동산회관(061-532-3004), 갈매기둥지(061-534-9192), 땅끝바다횟집(061-534-6422) 등 싱싱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을 비롯해 일반 가정식 백반을 차리는 식당 30여 개가 성업 중이다.


/ 글·사진 민병준 sanm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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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40

 

 

 


송창식, 윤형주

http://blog.daum.net/paulsong/15859746



2010.9 놀러와
http://www.songcs.net/entry/놀러와-16-세시봉친구들-라라라-100920



2011.2.27 세시봉 다시보기, 전곡 다시듣기
http://cafe.daum.net/jugjang/YBa/416?docid=YsiU|YBa|416|20110227095433&q=%BC%BC%BD%C3%BA%C0



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200502/wk2005021714012037570.htm

[추억의 LP 여행] 윤형주 上
포크 대중화의 기수 뭇 소녀의 꿈에 들다

1970년대에 포크를 향유했던 중장년층은 윤형주를 비롯해 한대수, 송창식, 양희은, 김세환, 이장희, 김민기, 사월과 오월, 이연실, 서유석, 김정호 등 포크 뮤지션들이 일으킨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문화에 대한 원초적인 향수를 지니고 있다. 윤형주는 그 중심에 있었던 주역이었다.

귀공자풍의 앳된 외모와 발랄한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던 그는 1967년 2월 송창식, 이익근 등과 세시봉 트리오를 결성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68년 송창식과 함께 결성했던 듀오 트윈 폴리오는 포크의 대중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대표 곡 ‘조개 껍질 묶어’, ‘두 개의 작은 별’,‘비의 나그네’,‘어제 내린 비’등은 지금도 애창되는 히트 넘버. 그의 음악은 시대와 대상을 초월해 언제나 부담없이 노래하고 들을 수 있는 편안함으로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윤형주는 서울고 국어 교사와 경희대 산업대학장을 역임한 부친 윤영춘 씨와 원산의 신학교 시절 빼어난 소프라노이면서 피아노 반주자였던 모친 김귀순 씨의 장남으로 1947년 11월 19일 서울 신문로의 전 서울고 관사에서 태어났다. ‘별 헤는 밤’으로 유명한 고 윤동주 시인은 6촌 형제 간이다. 네 살때 한국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성악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은 컸다. 늘 집에서 음악을 들고 자란 그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어릴 적 별명은 앵무새. 전쟁이 끝난 54년 서울 덕수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노래를 잘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라디오 음악 프로‘누가 누가 잘하나’에 참가했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떨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입상을 하지는 못 했다. 60년 대광중학에 입학하면서 AFKN을 통해 팝송을 처음 접했다. 그는 방과 후에는 아예 라디오를 끼고 다녔던 팝 송 마니아였다. 당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수는 지미 로저스와 마티 로빈스.

학업 성적이 출중했던 그는 63년 명문 경기고에 진학하면서 동대문 동신교회의 성가대원이 되었다. 당시 고 3이었던 성가대 선배 조영남과 이 때 두터운 음악 인연을 맺었다. 66년 연세대 의대에 합격하자 어머니가 기타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학업보다는 음악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전해 준 6촌형 시인 윤동주의 시에 감동 받아 시를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연세대 최초의 록 그룹 ‘피닉스’를 결성해 TBC 대학생 재즈페스티벌에 나갔지요. 저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습니다.”

당시는 밥 딜런, 존 바에즈, 주디 콜린스 등 미국 포크 음악이 엘리트 음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 그 해 가을 슈퍼 스타급 포크 트리오 킹스톤 트리오를 모델로 같은 연대생 이장희, 유종국과 함께 포크 트리오 라이너스를 결성했다. 대학가와 다운타운가에 노래꾼으로 알려지면서 2학년 때 젊은이의 전당이었던 세시봉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서울예고 출신 송창식을 만났다.

송창식이 트리오 결성을 제안해 왔지만 오페라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기타로 노래할 뿐 포크의 기본 곡도 모른 상태인지라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음악적 감성을 발견하곤 67년 11월 송창식과 연대 토목과 동급생 이익근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다. 이름은 업소의 이름을 빌여 ‘세시봉 트리오’로 정했다. 하지만 68년 2월, 이익근의 군입대로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로 개편되었다. 이후 몇몇 방송에서 통기타 반주로 정훈희의 ‘안개’등을 불렀다.

신선한 포크 스타일의 노래를 구사했던 이들은 ‘한국의 사이먼과 가펑클’로 불리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데뷔 앨범은 펄시스터즈, 박연숙과 함께한 김인배 작편곡집으로 68년 발매. 상큼한 화음의 ‘하얀 손수건’ 등 6곡의 번안곡은 재판이 발매될 정도로 젊은 층에 큰 인기를 모았다. 또한 신중현이 음악 감독을 맡은 김응천감독의 하이틴영화 ‘푸른 교실’에 조영남, 최영희 등과 함께 출연했다. 그 해 12월 드라마센터에서 첫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대중속으로 파고들었다. 포크의 대중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들은 경기여고 특활반의 초청을 받고 당시 여고 2학년이었던 양희은의 노래 반주를 해 주는 등 청소년들 속으로 파고 들었다. 69년 12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트윈폴리오는 느닷없이 해체를 발표했다. 완고한 교육자 집안의 반대 속에 어렵게 음악 활동을 했던 윤형주가 학업 때문에 경희대 의대 본과로 학교를 옮기는 사태가 발생되었기 때문. 이에 69년 12월21~22일 이틀 동안 드라마센터에서 공식 고별 공연을 개최했다.

공연은 찬조 출연 없이 둘 만이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진행퓸駭? 수 많은 10대 소녀 팬들에 의해 울음 바다가 되었던 이날 공연 이후 계속된 팬들의 요청으로 무려 6번씩이나 비공식 고별 공연을 열어야 했다. MBC, TBC 등 방송들도 이례적으로 5차례나 고별 공연을 재편집 방송하여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고별 공연 직후 12곡이 수록된 독집 <튄폴리오 리사이틀-지구.70년1월>이 발표되었다. 이 음반 역시 76년과 80년 두 번에 걸쳐 재발매되었을 만큼 포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해체 6개월후인 70년 6월 29일, 젊은이의 전당으로 탄생한 명동 YWCA 청개구리 개관 행사에 윤형주, 송창식은 김민기, 양희은 등과 나란히 참석했다. 주위의 요청에 못 이겨 1~2곡을 부르기로 하고 즉석에서 ‘하얀 손수건’ 등 히트곡을 불렀다. 그러나 거듭되는 앵콜 요청으로 동요메들리, 찬송가, 트로트 ‘눈물을 감추고’ 등 장르를 파괴하는 레퍼토리를 1시간도 넘게 불러야 했을 만큼 이들의 인기는 여전했다.


[추억의 LP 여행] 윤형주 下
청진기 대신 통키다
영원히 기억될 '포크 빅3'


윤형주, 송창식은 조영남과 캐롤이나 리싸이틀 쇼 음반은 물론 공연도 함께 하는 등 최영희 등과 함께 어울리며 두터운 음악적 친분을 유지했다. 학업 때문에 경희대 의대로 옮긴 윤형주는 의대 공부보다는 신방과 후배 김세환과 함께 히트 곡 ‘‘라라라’가 수록된 스플릿 음반 ‘별밤 씨리즈 3집-71년’을 발표하고 DBS라디오의 팝송 프로 ‘0시의 다이얼’ DJ로도 변신하는 등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수천명 씩 모이는 대학가의 행사나 MBC ‘‘ 별 밤 회원’ 야유회 등에 함께 참가한 윤형주, 김세환은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그들이 명동의 DBS 팝 패밀리 사무실에 나타나는 날에는 1~2백명의 여고생들이 몰려들어 백화점 영업이 어려웠을 정도. 솔로 가수 윤형주는 71년부터 ‘랄랄라’, 72년 ‘두 개의 작은 별’ ‘우리들의 이야기’, 73년 ‘어제 내린비’, 74년 ‘미운 사람’ 등 히트 퍼레이드를 벌였다. 또한 오란C, 롯데껌, 새우깡 등 전체 광고 음악의 30%에 달하는 1,400곡을 도맡으며 더욱 대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처럼 은퇴 선언을 반복한 가수도 없을 것이다. 의대를 9년이나 다녔지만 본과 3학년을 끝으로 중퇴를 했다. “의사는 환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입장이라는 엉뚱한 비관론을 가졌던 것이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한 계기가 되었죠.” 성공적인 가수 활동에도 불구하고 72년 12월 또 다시 은퇴 선언과 고별 공연을 했다.

TV에도 방영된 이 공연의 사회자 최희준은 “법대를 졸업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은퇴를 생각 못했는데, 윤형주는 젊은 나이에 2번씩이나 은퇴를 선언하는 용기가 부럽다”고 농담을 건냈고 군복무중인 조영남은 휴가를 얻어 군복 차림으로 게스트가 되어 끈끈한 정을 과시했다. 은퇴 공연의 레퍼토리는 73년 ‘윤형주 리사이틀’ 음반으로 발표되었고 대도레코드는 69년부터 73년까지의 히트 곡 모음집까지 발매했다.

하지만 73년 영화OST인 ‘어제 내린 비’를 발표해 5만장의 판매되는 빅 히트를 터트리자 “은퇴 선언을 수 없이 번복한 가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74년 YMCA에서 개최한 구두닦이 소년들을 위한 자선 공연에 무료 출연한 그는 3월엔 4살 아래의 홍대 미대 출신 김보경 씨와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습관성 약물 중독설과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76년 2월, 징역1월 6개월에 집행 유해 3년을 선고 받으며 잊혀졌다.

활동 금지중이던 79년 1월 일간스포츠에 ‘속죄의 봄을…’, 11월 경향신문에 ‘어둠 속 우리의 모습 ? 회한의 4년’이란 대마초 가수의 고백 수기를 발표했다. 이 후 80년 해금이 되자 5년 만에 ‘바보’‘고백’등이 수록된 독집 음반을 발표했다. 1백 여 곡의 노래를 작곡한 그는 창작 곡 ‘바보’를 자신의 특성에 잘 맞는 노래로 꼽는다.

특히‘사랑스런 그대’는 KBS 인기가요TOP 10과 MBC 인기가요 퍼레이드에 5위에 랭크되며 재기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81년엔 MBC FM의‘한밤의 데이트’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또 송창식과 10년 전에 발표한 트윈폴리오 음반과 같은 레퍼토리에다 송창식이 작곡한 ‘우리’를 추가시킨 프로젝트성 음반을 발표했다.

82년 송창식과 ‘긴 머리 소녀’‘편지’‘축제의 노래’ 등을 수록한 금성사 판촉 카세트 테이프까지 발매하자 트윈폴리오의 재결합설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83년 12월 쌍룡 김석원 회장의 도움으로 김세환은 송창식과 함께 도너츠판, 책자가 들어 있는 ‘하나의 결이 되어’라는 박스 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은 84년 KBS 가요대상에서 트리오 음반 기획상과 가톨릭 매스컴 위원회 공로상을 안겨 주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85년 광고 기획사 한빛기획’을 창립해 용평 팝 페스티벌, 태교음악회등 각종 콘서트를 기획하는 사업가로 거듭났다.

86년 미국 LA 슈라린 오디토리엄의 포크 페스티벌. 송창식 양희은 이장희 김세환 이종용등 70년대 포크 가수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6,800여명의 교포들에게 고국에 대한 향수를 듬뿍 안겨 주었던 이 공연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88년 창작 곡 10곡을 모아 6년 만에 신보‘사랑하는 사람이라면’을 발표하고 KBS 2FM에서 ‘윤형주의 음악앨범’의 DJ로‘뮤직 엉클’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후 자유방송인협회 공동 부의장을 맡고 93년 교통방송의 ‘밤과 음악 사이’, 10월에는 SBS TV의 심야프로 ‘SBS 콘서트’를 진행한 데 이어 94년 2월 MBC TV ‘음악이 있는 곳에’윤형주 스페셜 프로에 서울음대 작곡과에 입학한 딸 선명과 함께 출연해 건재를 과시했다. 12월에는 KBS 빅 쇼 크리스마스 특집에 송창식과 함께 모처럼 트윈폴리오시萱?히트 곡들을 불렀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윤형주는 송창식, 김세환과 함께 ‘포크 빅3’로 명명해 전국을 순회하며 올드 팬들을 위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2000년 벤처 기업인 이트보의 부사장으로 취임하며 벤처 사업가로 거듭났다. 또한 2002년 4월에는 한일 포크 가수 1세대들의 조인트 공연 ‘포크 빅3와 일본 포크의 개척자 모리야마 료코의 캠퍼스 콘서트’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사랑의 집짓기 운동엽합회의 헤비타트 운동 홍보 이사로도 활약하고 있는 그는 2003년 7월에는 미국 카네기 홀에서 6명 온 가족이 가족 콘서트를 개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편안함을 주는 많은 창작 곡들을 생산해 낸 포크 아티스트 윤형주. 그는 우여곡절이 많은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전문직 사업가로 본업을 유지하면서도 통기타를 잡고 노래를 계속, 살아있는 한국 포크의 전설로 모범적인 삶을 꾸려 가고 있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mailto:%22kschoi@hk.co.kr%22  


 

[인터뷰]영원한 청년, 윤형주(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0&aid=0000000032


| 기사입력 2003-10-31 11:22 | 최종수정 2003-10-31 11:22


인터뷰 섭외를 위해 윤형주씨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자신의 스케줄이 30분 간격으로 짜여져 있다며 농담조로 바쁜 척(?)을 했었다. 농담이려니 했었는데 이게 웬 일, 윤형주씨가 5년째 사용하고 있다는 스케줄 노트를 눈앞에 펼쳐 보이자 깨알같은 글씨로 30분 단위의 스케줄 계획이 메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윤형주씨는 66년 의대에 입학해 당시에도 소위 잘나가는 직업이었던 의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과감히 자퇴서를 내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인의 삶을 택했다. 의대를 비롯한 특정 직업만을 선호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귀기울여 볼 이야기가 아닐까.


스트레스를 즐기는 남자

- 66년 의대에 입학하셨었죠? 어디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의사는 환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직업이지만 음악이라는 건 능동적인 직업이다'라고요.

의대는 3학년까지 다니다가 나왔어요. 두 번 은퇴를 하고 학교로 돌아가 가만히 공부를 하다가 생각을 해보니, 앞으로 내가 의사가 돼서 한 군데 앉아 비슷하게 아픈 사람을 백명씩 보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숨이 막히더라구요. 아버지는 저를 의대에 보내려고 그렇게 성화였는데 저는 우리 아들 의사 되는 걸 말렸어요.

- 지금 선택에 후회는 없으시죠?

그런 얘기 할 필요도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제일 행복한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문학을 하셨잖아요.(당시 윤영춘 경희대 학장) 그런데 아버지가 가만히 보시니 문학은 배가 고프잖아. 그래서 저를 의대에 보내려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상과를 나오면 은행에 들어갔어요. 지금 보면 은행에 우리 또래가 없어요. 다 명퇴했잖아요. 나는 피동적인 삶이 싫었어요. 자꾸 벌리고 진취적으로 나가는 일을 하고 싶었죠. 케니로저스, 셀렌느 디옹 다 제가 불러들였습니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나는 아직도 꿈이 많아요.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손주들하고 음반을 만들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정말 아이들이 필요한 노래, 아이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이상하게 제가 꿈꾸어온 건 다 이루어졌어요. 꿈은 어디서 오느냐하면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주신 거예요.(윤형주씨는 온누리교회 장로이다) 여기까지 온 건 내 힘으로,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닙니다. 카네기 홀 공연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유태인하고 이탈리아계가 꽉 잡고 있는데 웬만해선 어림도 없는 일 아니겠어요. 빅3 카네기홀 공연도 계획중입니다. 자녀들하고 유럽공연도 생각중이고. 참 할 일이 많아요.

이제는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게 문화와 스포츠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나는 돈을 목적으로 문화를 끌고 간 적은 없어요. 좋은 문화, 건강한 문화는 병든 문화 속에서 설 땅이 없다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좋은 문화는 꼭 인정받게 되어있어요. 좋은 문화끼리 만나게 돼있어요.

'얘야 시 다칠라'

- 윤동주 시인(윤형주씨의 사촌형)의 시를 가사로 노래를 만들지는 않으셨죠?

내가 노래가 자꾸 히트를 치다보니까 작사, 작곡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CM송 가사도 다 제가 만들었지만 제 몸 속에는 시인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작곡자로 알아주니까 자신감이 붙어서 아버지(윤영춘 박사)에게 말했죠. '아버님, 동주 형님 시를 제가 작곡을 잘해서 노래로 발표해 보겠습니다.' 아버님이 대답을 안 하고 한참 동안 계시더군요. 그 때 참 무안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생각을 한참 하시더니 '얘야 시 다칠라' 하시면서 '시도 노래다. 시도 음이 있고, 화음이 있고, 리듬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무슨 말씀이셨냐면 네가 잘난 작곡실력으로 노래를 만들어봤자 고유한 시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말씀이셨죠.

아버님께서 동주 형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어요. 아버님이 먼저 동경으로 유학 가셨다가 조카인 윤동주 형님을 불러 들였어요. 그래서 함께 독립운동 하다가 함께 체포가 되었는데, 사안이 달라 아버님은 먼저 나오셨고 윤동주 형님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있게 됐죠. 그런데 끝까지 뒷바라지를 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셨어요. 당숙이 조카를 뒷바라지하는데 면회를 가면 '삼촌, 자꾸 이상한 주사를 놔요'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후에 밝혀졌는데 일제의 생체실험에 희생되신 거지요. 해방되기 6개월 전에 결국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시로만 썼던 조카의 시체를 안고 나오는 아버님의 심정이 어떠셨겠습니까. 아버지도 시인이셨지만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끔찍하게 유별났어요. 조카지만 늘 그 시 세계를 존경하셨죠. 그래서 제가 동주 형님의 시를 노래로 못 만들게 된 겁니다.

그런데 보니까 나만 빼고 윤동주 시인 노래를 다 만든 거예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웃음) 그래서 '윤동주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만들어서 시낭송회 할 때 발표했어요.

팝송이라곤 하나도 모르던 송창식과 함께

-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던 외국 가수가 있었나요?

지미 로저스와 마티 로빈스죠. 지미 로저스는 스탠더드 팝을 했고 재즈 쪽에 가까웠죠. 마티 로빈스는 컨트리 송을 부리면서 팝 쪽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좋아했어요.

나는 좀 특별한 케이스인데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덤벼들어서 가수가 된 게 아니었어요. 노래를 좋아하고 취미삼아 했던 것이 사람들이 인정하면서 방송 출연도 하게 되고 해서 가수가 된 거죠. 창식이도 마찬가지였죠.

창식이는 같이 노래하자고 저를 먼저 찾았는데 팝송이라고는 전혀 몰랐어요. 기초적인 카펜터스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노래를 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남몰래 흐르는 눈물'같은 오페라 아리아를 기타로 치는 거예요. 처음에는 무슨 이런 친구가 있나 했죠. 창식이는 나한테 충격적이었고 나는 창식이한테 충격적이었어요.

- 지금 중년 세대는 포크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 그 때 생각이 나면서 정서적으로 참 와 닿거든요. 요즘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도 30년 뒤에 들으면 그런 감정이 생겨나게 할까요?

부모들이 많이 물어봐요. 힙합이다~ 랩이다~, 그런데 음악은 유행이 있어요. 비틀즈가 처음 나왔을 때 온 세상이 미친놈이라고 그랬어요. 엘비스 프레슬리도 그랬고요. 지금은 이 사람들 노래가 클래식이에요. 지금 서태지 좋아했던 친구들보고 서태지 노래 들려주면 안 들을 겁니다. 요즘 노래 사이클은 2주예요. 노래방까지 간다면 한 두어 달?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고 유행이 있는거에요.

저는 형태를 보지 말라고 항상 말해요. 장르변화라는 건 왔다가 가는 패턴일 뿐이지, 중요한 건 사랑에 대한 감성, 경외를 요즘 노래들은 껌 씹다가 단물 다 빠지면 뱉어버리는 것처럼 본다는 거예요. 사랑의 메시지가 없는 겁니다. 우리 세대 노래들은 '우리는, 그대와 나, 당신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등 사랑을 공유개념으로 가졌었는데 지금은 개인주의가 나오면서 '필요 없어!, 바꿔!' 식으로 굉장히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인스탄트적인 사랑관으로 바뀌었어요. 굉장히 위험해요. 사랑에 대해서 참지를 않아요.

노래를 듣다 보면 결국에는 감성적인, 감정이 있는 노래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평생 이별이나 할 친구들은 인스턴트 사랑 노래를 부르겠지만요. 그런데 우리는 이별하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어요.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이 있는 한 감동이 있는 노래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 그 당시 금지곡들도 참 많았죠?

당시 정치상황은 암울했어도 대중가요 쪽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1975년 6월 발령된 '긴급조치 9호'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당시 7월과 9월 2차 3차에 걸쳐 금지곡 조치가 벌어져서 200여곡의 노래가 금지곡이 되어버렸죠. 송창식이 부른 '왜불러' '고래사냥', 김민기의 '아침이슬' '상록수' 등 수도 없어요. '거짓말이야'는 사회에 불신 풍조를 퍼뜨렸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다.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어요.

명퇴 없는 인생 - 세월 갈수록 바쁜 남자

- 지금 사랑의 집 짓기 운동 홍보이사이신데 처음에 어떻게 해서 참여하시게 된 거예요?

어떤 뜻이 있어서 했다기보다는, 고왕인 선배라는 분이 처음 한국에서 헤비타트 운동을 시작했는데 선배가 오라고 해서 간 거였지요. 그렇게 들어갔는데 이 운동이 참 좋은 운동이더라구요. 지금까지 450세대 이상의 집을 지었습니다.

(편집자 주: 윤형주씨는 지난 7월 카네기 홀 공연때의 수익금 5만여 달러를 해비타트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 연합회에 기증했다.)

- 광고음악으로 돈 많이 버셨죠?(웃음)

'하늘에서 별을 따다~' 오란씨, '껌이라면 롯데 롯데껌~' 롯데껌,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 등 많이 만들었죠. 대략 합치면 1400곡 정도 했는데 전체 한국 광고음악의 30%를 차지한다고 하더군요. 최고의 CM 송 10곡을 꼽으라면 그 중 7곡은 제 노래에요. 공익광고협의회 위원으로 3년 동안 추대받기도 했는데 광고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들어간 거였습니다.

돈 많이 벌었냐구요? 말도 마세요. 광고 제작한 회사에 가면 그 쪽 담당직원이 저에게 와서 그래요. '준비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돈이 준비됐다는 게 아니에요. 차에 가보면 새우깡이 몇 박스로 들어와 온~통~ 과자 천지에요. 내가 평생 살면서 새우깡을 몇 박스나 먹겠어요.(웃음)

- 광고 기획 쪽은 어떠세요?

나는 CF는 안 찍었어요. 지금 실용 광고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각 학교마다 광고학과가 생겼는데 광고 음악에 대해서 강의를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한 학기를 맡아서 강의를 하라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고사했습니다. 이렇게 와서 보면 제 광고음악이 새로운 장을 연 셈이죠. 통기타의 좋은 감성을 광고음악에 접목시켰다고 할까요.

-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지인은 어떤 분이 계세요?

성격이 유별난 송창식하고 35년 간 지냈죠. 누가 나보고 그래요. 그 송창식하고 어떻게 35년 간 친구로 지내왔느냐고.(웃음) 홍신이는(김홍신 의원) 바른 소리를 잘 하는데, 정치를 하면 좀더 정치가답게 했으면 하는데 이 친구는 분석적으로 따지는 속성이 있어요. 그런데 정치는 소설이 아니잖아요. 그게 좀 안타깝긴 하죠. 세환(가수 김세환)이는 교회에서 같이 활동도 하고 있고, 양희은도 있고. 신앙적인 친구들도 있고요. 그리고 역시 온누리 교회의 하영조 목사님. 그 분이 전도사 때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는데 참 대단한 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은 아버지

- 가수, 사업자, 종교인, 여러 호칭 중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으세요?

기자들이 많이 물어봐요. 작곡도 해, 가수도 해, 방송진행, 광고, 사업도 해, 몇 가지 일을 하느냐는 거지요. 그 중에 어떤 직업이 제일 힘든지 물어보거든요? 저는 자신있게 대답하는 직업이 있어요. 아버지에요. 아버지는 사표도 안 받아주고요, 휴가도 없어요. 죽을 때까지 아버지이고 죽어서도 아버지에요. 제일 귀하면서, 힘들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라는 직업이에요. 아버지를 직업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가정의 중요한 리더쉽이고, 경영자고, 종의 자세를 가져야하는 것이에요.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해결이 되나요. 끝내는 내가 아버지로서 터득한 결론은 가장 최고의 교육 방법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훈계나 교육이나 책망이나 뭐든 것의 근본은 사랑에서 나와요. 한창 사랑받아야 될 10대 아이들이 부모가 깨지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나가겠어요. 참 심각합니다.

(편집자 주: 윤형주씨는 막내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매일 팩스로 사랑이 담긴 메모 편지와 함께 큐티 내용을 실어 보냈다. 평소 그가 늘 주장하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식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대목. 두 부자의 팩스 대화는 'QT로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졌다.)

- 자식들 결혼 시켰을 때 혼수를 안 하셔서 화제가 됐었죠?

둘째 딸이 올 11월에 결혼하는데 예단이 없어요. 첫째 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아이들이 남녀가 동격인데 같이 들어오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동등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는데 풍속 때문에 시댁이 혜택을 받아야 하고, 딸을 가졌기 때문에 무엇을 요구하고 이런 건 잘못된 결혼관이죠. 부모는 자식들이 좋은 시작을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지, 부모가 결혼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어요. 모든 것이 지난 날의 관념과 틀에서 벗어나자는 겁니다. 결혼은 달라져야 해요. 결혼 때문에 고통받는 남녀가 얼마나 많아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결정한 배우자인 것을... 혼인을 통해서 대접받고자 하는 게 있다면 차라리 아이들을 도와줘야 해요.

- 딸이라 그러신 건 아닌가요? 아들 때도 그렇게 하실 거예요?(웃음)

아들 때는 아마 더할 겁니다.(웃음) 이번에 딸이 결혼할 때도 우리 딸이 시집가는 게 아니라 사위가 들어오는 겁니다. 이번 사위는 바리톤인데 내가 많이 도와줘야죠.

소리내 울고 싶은 아버지들을 위해 기도하자

-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가 있잖아요. 나이테란 것은 우리의 세대가 엮어놓은 하나의 흔적, 결이거든요. 우리는 그 나이테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하나의 결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거든. 우리가 많이 힘들고 지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서로 공감해 줄 수 있는 노래가 있고, 우리 젊음을 위로해주었던 문화가 있는 우리의 그 날들을 함께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지금은 20대에게 밀려난 것 같은 서글픔 때문에 나라가 왜 이러냐, 정치가 왜 이러냐 그렇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죽지 않았다. 그 결은 늘 남아있다. 우리는 밀려나는 세대가 아니다.'

아버지들이 모두들 명퇴하고 자기 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실망감 속에 있는데 우리가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꿈을 가져야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같은 세대가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해요. 우리 세대를 위해 노래할 곳이 있으면 가능한 한 가서 노래를 하려고 합니다. 공연 중에 항상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을 해요. 그리고 공연 끝날 때 즈음에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남편 손을 잡아줘라, 남편들이 울고 싶을 때가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라고 말해요.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래요. 아버지들은 요즘처럼 자녀들의 기도가 필요한 때가 없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수리를 맡겼었다는 커다란 기타케이스가 배달되어왔다. 기타케이스를 열어보고 매만지는 그에게서 오랜 세월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음악인의 깊은 향취가 느껴진다.

농담처럼 30분 단위로 하루를 쪼개어 산다고 말하는 그는 늘 푸르른 상록수를 닮았다. 하고싶은 일을 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청년'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본다.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 치이듯 살아온 중년 세대들이여, 과거에 대한 추억과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펄펄 끓여 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39

 

 

 


파수꾼의 이야기판_두수동 낭만카페 제1호 손님

인터넷오일장 파수꾼은 물건 위에 인격과 양심을 팝니다
인터넷오일장 파수꾼 / 010-9252-7564



두수동에 이상한 낭만카페가 있다. 35번 국도변에 카페 이름을 걸고 홍보를 한 것도 아닌, 카페 건물에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 현판을 건 것도 아닌, 미사리에 즐비한 저마다 개성을 지닌 그럴듯한 멋진 건물도 아닌, 말 그대로 이상한 카페인데 잡초가 무성한 뜰에 들어서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다.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예쁜 꽃을 심은 것도 아니고, 카페 음식의 간을 내기 위해 담근 장독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곳이 카페라는 것은 많고 많은 사람 중 어렴풋이 억지로 인정하는 사람이 몇 명, 확실하게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 곧 카페지기뿐이다.

카페지기는 오늘도 장사가 되지 않아 혼자서 이 늦은 가을, 낮 동안 된바람이 몹시 불어 춥다는 생각이 든 긴 하루가 지나 초저녁 밤에 계절과 어울리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카페지기가 이 계절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음악은 순전히 그만의 생각에 의한 것으로, 북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의 음악이다. 카페지기는 먼저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을 쿠르트 잔데를링크의 지휘로 틀었다. 거칠거칠한 브람스 만의 현의 소리가 오늘 같은 스산한 늦가을 초저녁 밤에 잘 어울리고, 사색하기 좋은 음악이란 생각을 카페지기는 하며,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했다.

지금 그가 말하는 즐거운 생각이란 머릿속에 혼재한 여러 가닥의 뒤엉킨 생각들을 잠시 쓰레기통에 과감하게 처넣고, 브람스의 이야기에만 귀를 곤두세우는 것을 말한다. 나태한 의지란 놈에게 사납게 채찍질하여 잠시 동안 브람스의 음악만 생각하다가, 이내 한쪽 귀는 부지런히 근엄한 브람스의 영상 옆에 바짝 앉아 음악이야기를 들으며, 한쪽 귀에는 음성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뇌에서 직접 청각 기관에 긴급상황으로 전하는 소리를 감지했다. 이렇게 되면 음악에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을 카페지기는 누구보다 잘 안다.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의 4악장 종지부에 다다랐을 때 카페지기는 1악장이 시작할 때보다는 모처럼 듣는 브람스와 가까워졌다. 두 번째 고른 곡은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이다. 이 곡은 제3악장이 유명세를 탔는데 영화와 드라마에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3번은 4번에 비해 음악에서 느끼는 계절감, 계절과 연관지었을 때 음악의 느낌이 좀 떨어진다. 카페지기는 브람스란 사람을 늘 경외시 한다. 왜냐하면, 브람스의 음악은 이 밤과 같이 기분과 날씨, 계절이 맞아떨어져, '아, 이것이 브람스!'란 생각에서 좀 더 다가가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거리에의 파토스가 작용하여 수십 년 그의 음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늘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 카페지기는 브람스와 그의 음악에 존경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3번 교향곡이 끝나기 전에 카페지기는 이 밤은 브람스의 교향곡 순례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의 교향곡이 기껏해야 넷밖에 안 되고 4번에 이어 3번을 들었으니, 남은 두 곡만 들으면 된다. 3번에 이어 튼 것은 1번이다. 카페지기의 무작위 선곡의 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4, 3, 2, 1 역순은 숫자 배열의 흐름이 누가 보아도 하강 선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3, 1, 2 순은 수의 배열로 보아 도무지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카페지기조차 모른다.

단지, 카페지기가 아는 것은 3번의 4악장을 몇 초 남기지 않고 2가 아닌 1을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완성까지 무려 이년, 저년, 쌍년이 아닌 해년 앞에 20을 달아야 하는 이 괴짜 교향곡의 1악장 도입부는 멀리서 들리는 팀파니의 연타가 완만하게 상승할 때부터 스산한 초겨울을 연상한다. 교향곡이란 장르에  도전하면서 그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알 수 있다. 4번의 초겨울, 3번의 늦가을에 이어 다시 1번의 초겨울 분위기로 돌아갔다. 이쯤에서 카페지기는, '오늘은 브람스와 궁합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남은 2번을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틀었다.

이 곡에서는 한국의 사계절이 연상되지 않고 작곡자가 태어난 가보지 않은 북유럽의 계절이 떠오른다. 2번을 다 듣기 전에 브람스의 큰 목소리 사이에 이상한 소리가 끼어들어 카페지기는 앰프의 볼륨을 낮추었다. 고전음악을 들을 때 카페지기는 웬만해서는 볼륨을 건드리지 않는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누군가, '형님, 계신교?' 하는데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다. '절 찾습니까?'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초저녁 어둠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쭉 빼고 유심히 보는데 손님이 가슴에 뭔가 안고 계단을 올라온다.

오전에 뒤 산자락을 끼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할 때 본 사람이다. 사과밭을 낀 농로를 걸을 때 사람 소리가 나기에 카페지기는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와 두세 번 얼굴을 근접거리에 둔 적 있었기에, 이름은 알고 있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사과를 따던 그가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반갑게 아는 체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얼굴만 보고 바로 그의 사과밭 자락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오늘 딴 사과를 한아름 안고 그가 찾아왔고, 뜻밖이었다. 분명, 그는 그가 아는 이 동네 사람 집에 갔다가 없어서 낭만카페에 온 것이 아닌 카페지기를 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바로 우리는 음악 이야기에 들어갔다. 카페지기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는 낭만카페에 접근하면서 내가 듣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들은 터여서 쉽게 음악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고전음악도 좋아하지만 우리의 음악에서도 국악을 매일 빠뜨리지 않고 듣는다고 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 카페지기의 머릿속에는 바로, '낭만카페 제1호 손님이다.'란 말이 떠올랐다. 그는 대구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사람인데 하루 중 11시에서 12시까지 어느 방송의 국악 프로그램은 어떤 일이 있어도 듣는다고 했다.

그 시간대에 탄 손님이 그가 듣는 국악에 대해서 반응하는 유형에 대해서 그는 말했다. 한 번은 어떤 손님이 '그런 걸 왜 들어요?'하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뭐, 이런 말이 다 있지?' 하는 좀 불쾌한 생각이 들어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낮추고, '한국 사람이 한국 음악 듣는 게 뭐 잘못됐습니까?' 했단다. 아마, 카페지기라면 더한 말로 그 손님의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을 것이다. 차분하고 유한 성격의 그인지라 그 정도 했을 것이다. 그의 인간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그와 같은 학교를 나온 두수동 친구는 사회과를 나온 것을 자랑삼아 떠벌이기를 좋아한다. 그의 사과밭에 있는 건물에 처음 들어간 날 그는 친구에게, '야, xx아! 제발 부탁인데 내가 사회복지학 전공이란 말도 심지어 대학 나왔다는 말도 하지 마라! 전공도 못 살리고 택시 운전하고, 틈나면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이 창피하다. '처음 그를 안 날 그가 한 이 말에서 카페지기는 좀 생각을 해야 했다. 불알친구였던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의 한때에 같이 있었던 다른 생각에서 나온 말의 의미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두수동 낭만카페에서 카페지기는 늘 손님을 기다려왔다. 카페지기의 카페에는 술 손님과 이야기 손님은 발길이 끓기지 않는다. 그들이 오면 카페지기의 낭만카페는 보이지 않는 문을 걸어잠근다. 그저 그들이 즐겨듣고 거부하지 않는 대중가요 한 두 곡 즘은 서비스 차원에서 들려주기도 한다. 카페지기가 기다리는 낭만카페 손님은 그런 손님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인이 한국 음악 듣는 게 뭐가 잘못됐습니까?'하고 당당하게 따질 줄 알거나, 한국음악이란 단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국음악을 이해하거나 이해하려 하고 즐겨듣는 사람이면 한국의 전통음악과 마찬가지로 뿌리깊은 서양의 고전음악도 거부하지 않고 감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는 낭만카페에 음악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한 보람이 헛되지 않았고,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게다가 이제 겨우 얼굴 익혀 아직은 형이란 소리 듣기가 서먹한 첫 손님이 찾아온 두수동 낭만카페에 음악의 열기로 인해 훈훈하다.

그가 옆에 앉은 친구에게 한 말처럼, '야 xx아!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들으려고 한 번만 노력해봐! 그러면 그 후는 쉬워!' 늘 함께하지 않은 음악을 접하면 누구든 단박에 친할 수 없다. 이런 말에, '예전에 많이 들었어, 안다! '하면, 그런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렵고 카페지기의 낭만카페는 그저 사랑방 구실만 하면 된다. 그보단, '뭘 알아야죠?' 하는 사람이면 조금만 클래식과 국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면 미래의 낭만카페 손님이 될 자격이 있다. 낭만카페 제1호 손님인 그가 자주 오기를, 또 누가 될지 모르지만 2, 3호 손님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를 카페지기는 기다리며 첫 손님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해금과 대금 음악에 이어 추천 곡으로 생황 음악과 장사익의 노래를 이었다.

두수동 낭만카페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 한 잔에 백만 원하는 상품이 있다. 카페지기는 이것을 공짜로 파는 대신 음악손님의 열린 마음과 뚫린 귀를 대가로 받는다. 카페지기가 그의 커피에 이런 가치를 부여한 것은 허풍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허풍이 아니라고 믿어도 되는 까닭은 한 잔의 커피에 그가 스스로 알아낸 건강을 지키는 비결을 담았기 때문이다.

'장사익의 음악을 들으면요. 저는 이런 생각 합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은 느낌! 그 기분 아시죠?', 적절하고 절묘한 표현에 카페지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의 택시에 탄 손님 중 어떤 사람이 국악에 접근하려고 '뭘 들어야 해요?' 할 때, 그를 국악에 푹 빠지게 한 '수제천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우리 음악의 맛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다는 그는 음악을 듣는 차원이 아닌 작곡, 연주, 감상이란 음악이 존재하게 하는 세 구성요소에서 당당하게 감상자 몫을 하는 사람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손님은 두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 살며 택시 기사, 고향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손재익님이다.)

인터넷오일장 파수꾼은 물건 위에 인격과 양심, 사랑, 행복을 팝니다.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38

 

 

 


화요비 고유진 김정은의 초콜릿 89 10 02 06










화요비 고유진 김정은의 초콜릿 89 10 02 06 주인공 영화에서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는데... 역시 영화는 영화일뿐... ' '에 나온걸 굳이 찾아보고는 깜짤 놀랬다...;; (괜히 찾아봤어... 괜히...


화요비 고유진 김정은의 초콜릿 89 10 02 06 지난 17일 그녀는 <스타킹>, <세바퀴> < >에 출연했다. <스타킹>은 고정출연으로... 혹은 연예인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고스트’ 뮤직 비디오에서 보여주지만...


2010년 4월 최신가요모음 (연속듣기 By. 김배추씨)


제5회 더락 콘서트 후기(좋은 자리 맡는 방법)


캡처 (출처는 준갤)


읽어야 하는 책들


가희-정가은-나르샤의 공통점은?


널 사랑해 < 오늘 이런 음악 어때요 - 100216 >


Kiss The Radio 일일 DJ- 온유 ( .1MHz) (토) [방송] [방송] PM :30 SBS-TV 놀라운... (3/25 촬영분) 21 (수) [녹화] PM :30 SBS-TV 100회 특집 [공연] PM 08:00 뮤지컬...


24 시즌 화 엄마의


< > 첫 회가 방송됐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음악과 토크가 흐르는' 무대를... 시상식 - 이제 극장으로 달려가자 ( ) 2008/ /25 1박 2일 - 건강한 일요일 저녁 밥상 (6) 2008/ /24...


항제밴드, 클레이지콰이, 바비킴, 밴드, 해금연주가... (0) :04:35 방청 (순번표 받기+명당자리 맡기) (11) 2009/09/17 에 출연한 박한별, 그녀의 심정 (12) 2009/ ...


아이들) - 하루종일 (Original ver.) 22. 플라워 - 운동화 23. 컬투,캔 - 나는... 88. 윤성혜 - 제주도.. 바다 (Freedom) . 최인영 - 소리 없이 날 90. 피아노(Piano) -...


원스(Once) OST


- 장수하는 음악프로그램으로 남아주길


모략 5. 하나님의 인도(2008) 6. 찰리와 공장(외서) 7. 마틸다(외서) 8. [외서]Anne... 박물관(4/ ) 164. 오르세 미술관(4/ ) 165. 최인호의 인연(4/ ) 166. 다산의 마음(4/22) 167....


분이라면, 추측컨대 아마도, 현재 ' '을 진행하고 있는, '연기자 '을... < 오늘 이런 음악 어때요 - 100210 > (11) 2010/ / 거위의 꿈 < 오늘 이런 음악 어때요 - 100208 > (4)...


샤이니 4월 스케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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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5MB 40일 11386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2 24회 . . 방영 686.8MB 40일 11385 화 . . 방영 700.7MB 40일 11384 개그스타 15화 . .... 24 시즌 화 방송,예능,스포츠...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38
2011.03.21 08:37

 

 

 


* 故 안재환 父母 “억울하고 분통해 이대로 눈감을 수 없다” 통곡###

故 안재환 父母 “억울하고 분통해 이대로 눈감을 수 없다” 통곡
[뉴스엔] 2008년 09월 23일(화) 오후 12:14 가 가| |




[뉴스엔 서보현 기자]
故 의 죽음이 발견된 지 보름이 지난 23일 현재 아직도 고인의 가족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날 방송된 ‘’에서는 막내아들을 잃은 고통에서 괴로워하는 고인의 부모님의 모습이 전격 공개됐다. 고인은 최소한 돈 때문에 자살을 할 만큼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유가족의 입장이다.

고인의 어머니는 “꿈을 꾸는데 얼마나 서럽게 울고 있는지 꿈속에서 나도 따라 울었더니 실제로도 울고 있었다”고 말하며 통곡했다. 꿈속에서 안재환이 찢어진 바지를 입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는 것. 이어 “요즘에 청년들만 보면 살 수가 없다”며 “우리 아들만 없잖아. 내가 재환이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현재 유가족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들이 안재환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타살의혹과 항간에 떠도는 사채 빚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안재환의 아버지는 “필체는 우리 아이와 비슷하다”며 유서가 안재환이 썼다는 점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까 이건 있을 수 없다”며 “유서라면 문장이 길지 그렇게 짧을 리가 없다”고 강경하게 입장을 밝혔다. 유서 속 안재환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돼 이 길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안재환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이라는 것이다. 고인의 아버지는 “만약 자살을 했다면 누군가가 압력을 가한다든가 언어폭력에서 스스로 죽게 만들었을 것”이라며 안재환의 자살을 용납하지 않았다.

안재환 부모는 무엇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안재환의 아버지는 “우리는 대도 끊어졌을 뿐더러 너무 비참하다. 지금 우리 둘만 남았다”며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어 “사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약만 먹으면 당장 죽을 수 있지만 내가 죽을 수는 없다. 이 결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한다”고 말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이 여전히 지속될 것을 짐작케 했다.

현재 故 안재환의 죽음은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로 판정됐다. 지난 16일 있었던 2차 부검 결과 역시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24일에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필적 감정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어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풀릴 수 있을 것인지 주목을 받고 있다.

서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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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










안재환(안광성) 탤런트
출생/사망 : 1972년 06월 08일 / 2008년 08월
신체 : 신장-180cm
가족관계 : 아내 개그우먼
학력 : 공예학과
데뷔 : MBC 공채 탤런트 25기(1996)
경력 : 방송연기영상과 겸임교수(2007), TV: (2006), (2005), (2005), (2004), 똑바로 살아라(2002), 엄마야 누나야(1999), LA 아리랑(1995)





연예계 스타 사업가들 엇갈린 명암
[뉴시스] 2008년 09월 23일(화) 오전 10:22 가 가| |




【서울=뉴시스】이 사업 실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업 확장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안재환 이외에도 사업에 뛰어든 스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본업 외에 사업 등 부업을 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탓이다. 언제 그만 둬야 할지 모르는 데다 수입마저 일정하지 않은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부업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사업으로는 음식 장사다. MC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은 압구정에 고기 집을 냈다. 도 치킨집과 피자집을 경영하다가 지금은 피자집만 운영하고 있다. 한때 박명수가 운영하던 치킨 체인점이 전국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도 서울 신사동에 족발 전문점을 오픈했다. 이전에도 김밥집을 비롯한 요식업을 경영한 바 있다.

탤런트 도 고깃집을 내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수 신지도 한때 고깃집을 경영하다가 문을 닫았다.

술집을 경영하는 스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 가수 심태윤, 등이 과거 술집을 운영했거나 현재 운영 중이다.

여자 스타들은 온라인 쇼핑몰 창업에 열성이다.

가수출신 탤런트 이혜영은 패션브랜드 ‘’를 내고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탤런트 역시 속옷 브랜드를 론칭하고 사업가로 나섰다. 탤런트 김준희는 쇼핑몰을 창업, 연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이승연은 동대문에서 직접 자신의 가게를 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탤런트 김규리 김원희 박탐희 최강희 오승은 백보람 이기찬 김성은 이의정
MC몽 노홍철 등 셀 수 없이 많은 스타들이 쇼핑몰을 운영했거나 하고 있다.

아예 본업이 사업인 스타들도 있다.

개그맨 주병진은 20년 전, 속옷 제조업체를 창업, 성공가도를 달렸다. 탤런트 김영애도 황토미용 업체를 창업, 수백 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가수 김태욱과 개그맨 박수홍은 웨딩업체를 창업, 웨딩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MC 탁재훈은 언더웨어 사업, 개그우먼 배연정은 국밥집, 모델 홍진경은 김치사업, 가수 토니안은 교복 사업에 열심이다.

하지만 연예인 사업이 항상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없다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스타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자신의 이름만 믿고 무턱대고 사업을 벌였다가 한 순간에 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연예인이라 초기에 홍보가 잘 되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실패할 경우에는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 아울러 투자자들 역시 스타들의 이름만 내세우면 사업이 잘 될 거라고 맹신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경지 기자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100호(9월2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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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36

 

 

 


* 故 안재환 父母 “억울하고 분통해 이대로 눈감을 수 없다” 통곡

故 안재환 父母 “억울하고 분통해 이대로 눈감을 수 없다” 통곡[뉴스엔] 2008년 09월 23일(화) 오후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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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서보현 기자]
안재환의 죽음이 발견된 지 보름이 지난 23일 현재 아직도 고인의 가족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날 방송된 MBC기분좋은 날’에서는 막내아들을 잃은 고통에서 괴로워하는 고인의 부모님의 모습이 전격 공개됐다. 고인은 최소한 돈 때문에 자살을 할 만큼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유가족의 입장이다.

고인의 어머니는 “꿈을 꾸는데 얼마나 서럽게 울고 있는지 꿈속에서 나도 따라 울었더니 실제로도 울고 있었다”고 말하며 통곡했다. 꿈속에서 안재환이 찢어진 바지를 입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는 것. 이어 “요즘에 청년들만 보면 살 수가 없다”며 “우리 아들만 없잖아. 내가 재환이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현재 유가족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들이 안재환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타살의혹과 항간에 떠도는 사채 빚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안재환의 아버지는 “필체는 우리 아이와 비슷하다”며 유서가 안재환이 썼다는 점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까 이건 있을 수 없다”며 “유서라면 문장이 길지 그렇게 짧을 리가 없다”고 강경하게 입장을 밝혔다. 유서 속 안재환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돼 이 길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안재환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이라는 것이다. 고인의 아버지는 “만약 자살을 했다면 누군가가 압력을 가한다든가 언어폭력에서 스스로 죽게 만들었을 것”이라며 안재환의 자살을 용납하지 않았다.

안재환 부모는 무엇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안재환의 아버지는 “우리는 대도 끊어졌을 뿐더러 너무 비참하다. 지금 우리 둘만 남았다”며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어 “사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약만 먹으면 당장 죽을 수 있지만 내가 죽을 수는 없다. 이 결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한다”고 말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이 여전히 지속될 것을 짐작케 했다.

현재 故 안재환의 죽음은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로 판정됐다. 지난 16일 있었던 2차 부검 결과 역시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24일에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필적 감정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어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풀릴 수 있을 것인지 주목을 받고 있다.

서보현 zmsdodch@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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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www.newsen.com)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080923121451708e7&linkid=rank_news&type=day&cate=en&rank=9






안재환
(안광성)     탤런트          
최근 이슈 보기 출생/사망 : 1972년 06월 08일 / 2008년 08월신체 : 신장-180cm가족관계 : 아내 개그우먼 정선희학력 : 서울대학교 공예학과데뷔 : MBC 공채 탤런트 25기(1996)경력 : 주성대학 방송연기영상과 겸임교수(2007), TV: 눈꽃(2006), 다이아몬드의 눈물(2005), 비밀남녀(2005), 아름다운 유혹(2004), 똑바로 살아라(2002), 엄마야 누나야(1999), LA 아리랑(1995)


연예계 스타 사업가들 엇갈린 명암[뉴시스] 2008년 09월 23일(화) 오전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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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탤런트 안재환이 사업 실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업 확장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안재환 이외에도 사업에 뛰어든 스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본업 외에 사업 등 부업을 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탓이다. 언제 그만 둬야 할지 모르는 데다 수입마저 일정하지 않은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부업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사업으로는 음식 장사다. MC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강호동은 압구정에 고기 집을 냈다. 개그맨 박명수도 치킨집과 피자집을 경영하다가 지금은 피자집만 운영하고 있다. 한때 박명수가 운영하던 치킨 체인점이 전국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이경규도 서울 신사동에 족발 전문점을 오픈했다. 이전에도 김밥집을 비롯한 요식업을 경영한 바 있다.

탤런트 김종결도 고깃집을 내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수 신지도 한때 고깃집을 경영하다가 문을 닫았다.

술집을 경영하는 스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개그맨 정준하, 탤런트 홍석천, 가수 심태윤, 이하늘 등이 과거 술집을 운영했거나 현재 운영 중이다.

여자 스타들은 온라인 쇼핑몰 창업에 열성이다.

가수출신 탤런트 이혜영은 패션브랜드 ‘미싱도로시’를 내고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탤런트 황신혜 역시 속옷 브랜드를 론칭하고 사업가로 나섰다. 탤런트 김준희는 쇼핑몰을 창업, 연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이승연은 동대문에서 직접 자신의 가게를 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탤런트 김규리 김원희 박탐희 최강희 오승은 백보람 이기찬 김성은 이의정
MC몽 노홍철 등 셀 수 없이 많은 스타들이 쇼핑몰을 운영했거나 하고 있다.

아예 본업이 사업인 스타들도 있다.

개그맨 주병진은 20년 전, 속옷 제조업체를 창업, 성공가도를 달렸다. 탤런트 김영애도 황토미용 업체를 창업, 수백 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가수 김태욱과 개그맨 박수홍은 웨딩업체를 창업, 웨딩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MC 탁재훈은 언더웨어 사업, 개그우먼 배연정은 국밥집, 모델 홍진경은 김치사업, 가수 토니안은 교복 사업에 열심이다.

하지만 연예인 사업이 항상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없다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스타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자신의 이름만 믿고 무턱대고 사업을 벌였다가 한 순간에 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연예인이라 초기에 홍보가 잘 되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실패할 경우에는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 아울러 투자자들 역시 스타들의 이름만 내세우면 사업이 잘 될 거라고 맹신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경지 기자 bright@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100호(9월2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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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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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1 0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