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1 08:40

 

 

 


송창식, 윤형주

http://blog.daum.net/paulsong/15859746



2010.9 놀러와
http://www.songcs.net/entry/놀러와-16-세시봉친구들-라라라-100920



2011.2.27 세시봉 다시보기, 전곡 다시듣기
http://cafe.daum.net/jugjang/YBa/416?docid=YsiU|YBa|416|20110227095433&q=%BC%BC%BD%C3%BA%C0



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200502/wk2005021714012037570.htm

[추억의 LP 여행] 윤형주 上
포크 대중화의 기수 뭇 소녀의 꿈에 들다

1970년대에 포크를 향유했던 중장년층은 윤형주를 비롯해 한대수, 송창식, 양희은, 김세환, 이장희, 김민기, 사월과 오월, 이연실, 서유석, 김정호 등 포크 뮤지션들이 일으킨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문화에 대한 원초적인 향수를 지니고 있다. 윤형주는 그 중심에 있었던 주역이었다.

귀공자풍의 앳된 외모와 발랄한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던 그는 1967년 2월 송창식, 이익근 등과 세시봉 트리오를 결성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68년 송창식과 함께 결성했던 듀오 트윈 폴리오는 포크의 대중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대표 곡 ‘조개 껍질 묶어’, ‘두 개의 작은 별’,‘비의 나그네’,‘어제 내린 비’등은 지금도 애창되는 히트 넘버. 그의 음악은 시대와 대상을 초월해 언제나 부담없이 노래하고 들을 수 있는 편안함으로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윤형주는 서울고 국어 교사와 경희대 산업대학장을 역임한 부친 윤영춘 씨와 원산의 신학교 시절 빼어난 소프라노이면서 피아노 반주자였던 모친 김귀순 씨의 장남으로 1947년 11월 19일 서울 신문로의 전 서울고 관사에서 태어났다. ‘별 헤는 밤’으로 유명한 고 윤동주 시인은 6촌 형제 간이다. 네 살때 한국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성악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은 컸다. 늘 집에서 음악을 들고 자란 그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어릴 적 별명은 앵무새. 전쟁이 끝난 54년 서울 덕수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노래를 잘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라디오 음악 프로‘누가 누가 잘하나’에 참가했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떨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입상을 하지는 못 했다. 60년 대광중학에 입학하면서 AFKN을 통해 팝송을 처음 접했다. 그는 방과 후에는 아예 라디오를 끼고 다녔던 팝 송 마니아였다. 당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수는 지미 로저스와 마티 로빈스.

학업 성적이 출중했던 그는 63년 명문 경기고에 진학하면서 동대문 동신교회의 성가대원이 되었다. 당시 고 3이었던 성가대 선배 조영남과 이 때 두터운 음악 인연을 맺었다. 66년 연세대 의대에 합격하자 어머니가 기타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학업보다는 음악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전해 준 6촌형 시인 윤동주의 시에 감동 받아 시를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연세대 최초의 록 그룹 ‘피닉스’를 결성해 TBC 대학생 재즈페스티벌에 나갔지요. 저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습니다.”

당시는 밥 딜런, 존 바에즈, 주디 콜린스 등 미국 포크 음악이 엘리트 음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 그 해 가을 슈퍼 스타급 포크 트리오 킹스톤 트리오를 모델로 같은 연대생 이장희, 유종국과 함께 포크 트리오 라이너스를 결성했다. 대학가와 다운타운가에 노래꾼으로 알려지면서 2학년 때 젊은이의 전당이었던 세시봉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서울예고 출신 송창식을 만났다.

송창식이 트리오 결성을 제안해 왔지만 오페라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기타로 노래할 뿐 포크의 기본 곡도 모른 상태인지라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음악적 감성을 발견하곤 67년 11월 송창식과 연대 토목과 동급생 이익근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다. 이름은 업소의 이름을 빌여 ‘세시봉 트리오’로 정했다. 하지만 68년 2월, 이익근의 군입대로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로 개편되었다. 이후 몇몇 방송에서 통기타 반주로 정훈희의 ‘안개’등을 불렀다.

신선한 포크 스타일의 노래를 구사했던 이들은 ‘한국의 사이먼과 가펑클’로 불리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데뷔 앨범은 펄시스터즈, 박연숙과 함께한 김인배 작편곡집으로 68년 발매. 상큼한 화음의 ‘하얀 손수건’ 등 6곡의 번안곡은 재판이 발매될 정도로 젊은 층에 큰 인기를 모았다. 또한 신중현이 음악 감독을 맡은 김응천감독의 하이틴영화 ‘푸른 교실’에 조영남, 최영희 등과 함께 출연했다. 그 해 12월 드라마센터에서 첫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대중속으로 파고들었다. 포크의 대중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들은 경기여고 특활반의 초청을 받고 당시 여고 2학년이었던 양희은의 노래 반주를 해 주는 등 청소년들 속으로 파고 들었다. 69년 12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트윈폴리오는 느닷없이 해체를 발표했다. 완고한 교육자 집안의 반대 속에 어렵게 음악 활동을 했던 윤형주가 학업 때문에 경희대 의대 본과로 학교를 옮기는 사태가 발생되었기 때문. 이에 69년 12월21~22일 이틀 동안 드라마센터에서 공식 고별 공연을 개최했다.

공연은 찬조 출연 없이 둘 만이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진행퓸駭? 수 많은 10대 소녀 팬들에 의해 울음 바다가 되었던 이날 공연 이후 계속된 팬들의 요청으로 무려 6번씩이나 비공식 고별 공연을 열어야 했다. MBC, TBC 등 방송들도 이례적으로 5차례나 고별 공연을 재편집 방송하여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고별 공연 직후 12곡이 수록된 독집 <튄폴리오 리사이틀-지구.70년1월>이 발표되었다. 이 음반 역시 76년과 80년 두 번에 걸쳐 재발매되었을 만큼 포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해체 6개월후인 70년 6월 29일, 젊은이의 전당으로 탄생한 명동 YWCA 청개구리 개관 행사에 윤형주, 송창식은 김민기, 양희은 등과 나란히 참석했다. 주위의 요청에 못 이겨 1~2곡을 부르기로 하고 즉석에서 ‘하얀 손수건’ 등 히트곡을 불렀다. 그러나 거듭되는 앵콜 요청으로 동요메들리, 찬송가, 트로트 ‘눈물을 감추고’ 등 장르를 파괴하는 레퍼토리를 1시간도 넘게 불러야 했을 만큼 이들의 인기는 여전했다.


[추억의 LP 여행] 윤형주 下
청진기 대신 통키다
영원히 기억될 '포크 빅3'


윤형주, 송창식은 조영남과 캐롤이나 리싸이틀 쇼 음반은 물론 공연도 함께 하는 등 최영희 등과 함께 어울리며 두터운 음악적 친분을 유지했다. 학업 때문에 경희대 의대로 옮긴 윤형주는 의대 공부보다는 신방과 후배 김세환과 함께 히트 곡 ‘‘라라라’가 수록된 스플릿 음반 ‘별밤 씨리즈 3집-71년’을 발표하고 DBS라디오의 팝송 프로 ‘0시의 다이얼’ DJ로도 변신하는 등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수천명 씩 모이는 대학가의 행사나 MBC ‘‘ 별 밤 회원’ 야유회 등에 함께 참가한 윤형주, 김세환은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그들이 명동의 DBS 팝 패밀리 사무실에 나타나는 날에는 1~2백명의 여고생들이 몰려들어 백화점 영업이 어려웠을 정도. 솔로 가수 윤형주는 71년부터 ‘랄랄라’, 72년 ‘두 개의 작은 별’ ‘우리들의 이야기’, 73년 ‘어제 내린비’, 74년 ‘미운 사람’ 등 히트 퍼레이드를 벌였다. 또한 오란C, 롯데껌, 새우깡 등 전체 광고 음악의 30%에 달하는 1,400곡을 도맡으며 더욱 대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처럼 은퇴 선언을 반복한 가수도 없을 것이다. 의대를 9년이나 다녔지만 본과 3학년을 끝으로 중퇴를 했다. “의사는 환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입장이라는 엉뚱한 비관론을 가졌던 것이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한 계기가 되었죠.” 성공적인 가수 활동에도 불구하고 72년 12월 또 다시 은퇴 선언과 고별 공연을 했다.

TV에도 방영된 이 공연의 사회자 최희준은 “법대를 졸업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은퇴를 생각 못했는데, 윤형주는 젊은 나이에 2번씩이나 은퇴를 선언하는 용기가 부럽다”고 농담을 건냈고 군복무중인 조영남은 휴가를 얻어 군복 차림으로 게스트가 되어 끈끈한 정을 과시했다. 은퇴 공연의 레퍼토리는 73년 ‘윤형주 리사이틀’ 음반으로 발표되었고 대도레코드는 69년부터 73년까지의 히트 곡 모음집까지 발매했다.

하지만 73년 영화OST인 ‘어제 내린 비’를 발표해 5만장의 판매되는 빅 히트를 터트리자 “은퇴 선언을 수 없이 번복한 가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74년 YMCA에서 개최한 구두닦이 소년들을 위한 자선 공연에 무료 출연한 그는 3월엔 4살 아래의 홍대 미대 출신 김보경 씨와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습관성 약물 중독설과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76년 2월, 징역1월 6개월에 집행 유해 3년을 선고 받으며 잊혀졌다.

활동 금지중이던 79년 1월 일간스포츠에 ‘속죄의 봄을…’, 11월 경향신문에 ‘어둠 속 우리의 모습 ? 회한의 4년’이란 대마초 가수의 고백 수기를 발표했다. 이 후 80년 해금이 되자 5년 만에 ‘바보’‘고백’등이 수록된 독집 음반을 발표했다. 1백 여 곡의 노래를 작곡한 그는 창작 곡 ‘바보’를 자신의 특성에 잘 맞는 노래로 꼽는다.

특히‘사랑스런 그대’는 KBS 인기가요TOP 10과 MBC 인기가요 퍼레이드에 5위에 랭크되며 재기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81년엔 MBC FM의‘한밤의 데이트’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또 송창식과 10년 전에 발표한 트윈폴리오 음반과 같은 레퍼토리에다 송창식이 작곡한 ‘우리’를 추가시킨 프로젝트성 음반을 발표했다.

82년 송창식과 ‘긴 머리 소녀’‘편지’‘축제의 노래’ 등을 수록한 금성사 판촉 카세트 테이프까지 발매하자 트윈폴리오의 재결합설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83년 12월 쌍룡 김석원 회장의 도움으로 김세환은 송창식과 함께 도너츠판, 책자가 들어 있는 ‘하나의 결이 되어’라는 박스 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은 84년 KBS 가요대상에서 트리오 음반 기획상과 가톨릭 매스컴 위원회 공로상을 안겨 주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85년 광고 기획사 한빛기획’을 창립해 용평 팝 페스티벌, 태교음악회등 각종 콘서트를 기획하는 사업가로 거듭났다.

86년 미국 LA 슈라린 오디토리엄의 포크 페스티벌. 송창식 양희은 이장희 김세환 이종용등 70년대 포크 가수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6,800여명의 교포들에게 고국에 대한 향수를 듬뿍 안겨 주었던 이 공연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88년 창작 곡 10곡을 모아 6년 만에 신보‘사랑하는 사람이라면’을 발표하고 KBS 2FM에서 ‘윤형주의 음악앨범’의 DJ로‘뮤직 엉클’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후 자유방송인협회 공동 부의장을 맡고 93년 교통방송의 ‘밤과 음악 사이’, 10월에는 SBS TV의 심야프로 ‘SBS 콘서트’를 진행한 데 이어 94년 2월 MBC TV ‘음악이 있는 곳에’윤형주 스페셜 프로에 서울음대 작곡과에 입학한 딸 선명과 함께 출연해 건재를 과시했다. 12월에는 KBS 빅 쇼 크리스마스 특집에 송창식과 함께 모처럼 트윈폴리오시萱?히트 곡들을 불렀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윤형주는 송창식, 김세환과 함께 ‘포크 빅3’로 명명해 전국을 순회하며 올드 팬들을 위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2000년 벤처 기업인 이트보의 부사장으로 취임하며 벤처 사업가로 거듭났다. 또한 2002년 4월에는 한일 포크 가수 1세대들의 조인트 공연 ‘포크 빅3와 일본 포크의 개척자 모리야마 료코의 캠퍼스 콘서트’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사랑의 집짓기 운동엽합회의 헤비타트 운동 홍보 이사로도 활약하고 있는 그는 2003년 7월에는 미국 카네기 홀에서 6명 온 가족이 가족 콘서트를 개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편안함을 주는 많은 창작 곡들을 생산해 낸 포크 아티스트 윤형주. 그는 우여곡절이 많은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전문직 사업가로 본업을 유지하면서도 통기타를 잡고 노래를 계속, 살아있는 한국 포크의 전설로 모범적인 삶을 꾸려 가고 있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mailto:%22kschoi@hk.co.kr%22  


 

[인터뷰]영원한 청년, 윤형주(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0&aid=0000000032


| 기사입력 2003-10-31 11:22 | 최종수정 2003-10-31 11:22


인터뷰 섭외를 위해 윤형주씨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자신의 스케줄이 30분 간격으로 짜여져 있다며 농담조로 바쁜 척(?)을 했었다. 농담이려니 했었는데 이게 웬 일, 윤형주씨가 5년째 사용하고 있다는 스케줄 노트를 눈앞에 펼쳐 보이자 깨알같은 글씨로 30분 단위의 스케줄 계획이 메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윤형주씨는 66년 의대에 입학해 당시에도 소위 잘나가는 직업이었던 의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과감히 자퇴서를 내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인의 삶을 택했다. 의대를 비롯한 특정 직업만을 선호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귀기울여 볼 이야기가 아닐까.


스트레스를 즐기는 남자

- 66년 의대에 입학하셨었죠? 어디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의사는 환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직업이지만 음악이라는 건 능동적인 직업이다'라고요.

의대는 3학년까지 다니다가 나왔어요. 두 번 은퇴를 하고 학교로 돌아가 가만히 공부를 하다가 생각을 해보니, 앞으로 내가 의사가 돼서 한 군데 앉아 비슷하게 아픈 사람을 백명씩 보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숨이 막히더라구요. 아버지는 저를 의대에 보내려고 그렇게 성화였는데 저는 우리 아들 의사 되는 걸 말렸어요.

- 지금 선택에 후회는 없으시죠?

그런 얘기 할 필요도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제일 행복한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문학을 하셨잖아요.(당시 윤영춘 경희대 학장) 그런데 아버지가 가만히 보시니 문학은 배가 고프잖아. 그래서 저를 의대에 보내려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상과를 나오면 은행에 들어갔어요. 지금 보면 은행에 우리 또래가 없어요. 다 명퇴했잖아요. 나는 피동적인 삶이 싫었어요. 자꾸 벌리고 진취적으로 나가는 일을 하고 싶었죠. 케니로저스, 셀렌느 디옹 다 제가 불러들였습니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나는 아직도 꿈이 많아요.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손주들하고 음반을 만들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정말 아이들이 필요한 노래, 아이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이상하게 제가 꿈꾸어온 건 다 이루어졌어요. 꿈은 어디서 오느냐하면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주신 거예요.(윤형주씨는 온누리교회 장로이다) 여기까지 온 건 내 힘으로,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닙니다. 카네기 홀 공연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유태인하고 이탈리아계가 꽉 잡고 있는데 웬만해선 어림도 없는 일 아니겠어요. 빅3 카네기홀 공연도 계획중입니다. 자녀들하고 유럽공연도 생각중이고. 참 할 일이 많아요.

이제는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게 문화와 스포츠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나는 돈을 목적으로 문화를 끌고 간 적은 없어요. 좋은 문화, 건강한 문화는 병든 문화 속에서 설 땅이 없다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좋은 문화는 꼭 인정받게 되어있어요. 좋은 문화끼리 만나게 돼있어요.

'얘야 시 다칠라'

- 윤동주 시인(윤형주씨의 사촌형)의 시를 가사로 노래를 만들지는 않으셨죠?

내가 노래가 자꾸 히트를 치다보니까 작사, 작곡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CM송 가사도 다 제가 만들었지만 제 몸 속에는 시인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작곡자로 알아주니까 자신감이 붙어서 아버지(윤영춘 박사)에게 말했죠. '아버님, 동주 형님 시를 제가 작곡을 잘해서 노래로 발표해 보겠습니다.' 아버님이 대답을 안 하고 한참 동안 계시더군요. 그 때 참 무안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생각을 한참 하시더니 '얘야 시 다칠라' 하시면서 '시도 노래다. 시도 음이 있고, 화음이 있고, 리듬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무슨 말씀이셨냐면 네가 잘난 작곡실력으로 노래를 만들어봤자 고유한 시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말씀이셨죠.

아버님께서 동주 형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어요. 아버님이 먼저 동경으로 유학 가셨다가 조카인 윤동주 형님을 불러 들였어요. 그래서 함께 독립운동 하다가 함께 체포가 되었는데, 사안이 달라 아버님은 먼저 나오셨고 윤동주 형님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있게 됐죠. 그런데 끝까지 뒷바라지를 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셨어요. 당숙이 조카를 뒷바라지하는데 면회를 가면 '삼촌, 자꾸 이상한 주사를 놔요'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후에 밝혀졌는데 일제의 생체실험에 희생되신 거지요. 해방되기 6개월 전에 결국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시로만 썼던 조카의 시체를 안고 나오는 아버님의 심정이 어떠셨겠습니까. 아버지도 시인이셨지만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끔찍하게 유별났어요. 조카지만 늘 그 시 세계를 존경하셨죠. 그래서 제가 동주 형님의 시를 노래로 못 만들게 된 겁니다.

그런데 보니까 나만 빼고 윤동주 시인 노래를 다 만든 거예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웃음) 그래서 '윤동주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만들어서 시낭송회 할 때 발표했어요.

팝송이라곤 하나도 모르던 송창식과 함께

-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던 외국 가수가 있었나요?

지미 로저스와 마티 로빈스죠. 지미 로저스는 스탠더드 팝을 했고 재즈 쪽에 가까웠죠. 마티 로빈스는 컨트리 송을 부리면서 팝 쪽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좋아했어요.

나는 좀 특별한 케이스인데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덤벼들어서 가수가 된 게 아니었어요. 노래를 좋아하고 취미삼아 했던 것이 사람들이 인정하면서 방송 출연도 하게 되고 해서 가수가 된 거죠. 창식이도 마찬가지였죠.

창식이는 같이 노래하자고 저를 먼저 찾았는데 팝송이라고는 전혀 몰랐어요. 기초적인 카펜터스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노래를 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남몰래 흐르는 눈물'같은 오페라 아리아를 기타로 치는 거예요. 처음에는 무슨 이런 친구가 있나 했죠. 창식이는 나한테 충격적이었고 나는 창식이한테 충격적이었어요.

- 지금 중년 세대는 포크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 그 때 생각이 나면서 정서적으로 참 와 닿거든요. 요즘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도 30년 뒤에 들으면 그런 감정이 생겨나게 할까요?

부모들이 많이 물어봐요. 힙합이다~ 랩이다~, 그런데 음악은 유행이 있어요. 비틀즈가 처음 나왔을 때 온 세상이 미친놈이라고 그랬어요. 엘비스 프레슬리도 그랬고요. 지금은 이 사람들 노래가 클래식이에요. 지금 서태지 좋아했던 친구들보고 서태지 노래 들려주면 안 들을 겁니다. 요즘 노래 사이클은 2주예요. 노래방까지 간다면 한 두어 달?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고 유행이 있는거에요.

저는 형태를 보지 말라고 항상 말해요. 장르변화라는 건 왔다가 가는 패턴일 뿐이지, 중요한 건 사랑에 대한 감성, 경외를 요즘 노래들은 껌 씹다가 단물 다 빠지면 뱉어버리는 것처럼 본다는 거예요. 사랑의 메시지가 없는 겁니다. 우리 세대 노래들은 '우리는, 그대와 나, 당신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등 사랑을 공유개념으로 가졌었는데 지금은 개인주의가 나오면서 '필요 없어!, 바꿔!' 식으로 굉장히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인스탄트적인 사랑관으로 바뀌었어요. 굉장히 위험해요. 사랑에 대해서 참지를 않아요.

노래를 듣다 보면 결국에는 감성적인, 감정이 있는 노래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평생 이별이나 할 친구들은 인스턴트 사랑 노래를 부르겠지만요. 그런데 우리는 이별하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어요.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이 있는 한 감동이 있는 노래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 그 당시 금지곡들도 참 많았죠?

당시 정치상황은 암울했어도 대중가요 쪽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1975년 6월 발령된 '긴급조치 9호'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당시 7월과 9월 2차 3차에 걸쳐 금지곡 조치가 벌어져서 200여곡의 노래가 금지곡이 되어버렸죠. 송창식이 부른 '왜불러' '고래사냥', 김민기의 '아침이슬' '상록수' 등 수도 없어요. '거짓말이야'는 사회에 불신 풍조를 퍼뜨렸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다.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어요.

명퇴 없는 인생 - 세월 갈수록 바쁜 남자

- 지금 사랑의 집 짓기 운동 홍보이사이신데 처음에 어떻게 해서 참여하시게 된 거예요?

어떤 뜻이 있어서 했다기보다는, 고왕인 선배라는 분이 처음 한국에서 헤비타트 운동을 시작했는데 선배가 오라고 해서 간 거였지요. 그렇게 들어갔는데 이 운동이 참 좋은 운동이더라구요. 지금까지 450세대 이상의 집을 지었습니다.

(편집자 주: 윤형주씨는 지난 7월 카네기 홀 공연때의 수익금 5만여 달러를 해비타트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 연합회에 기증했다.)

- 광고음악으로 돈 많이 버셨죠?(웃음)

'하늘에서 별을 따다~' 오란씨, '껌이라면 롯데 롯데껌~' 롯데껌,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 등 많이 만들었죠. 대략 합치면 1400곡 정도 했는데 전체 한국 광고음악의 30%를 차지한다고 하더군요. 최고의 CM 송 10곡을 꼽으라면 그 중 7곡은 제 노래에요. 공익광고협의회 위원으로 3년 동안 추대받기도 했는데 광고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들어간 거였습니다.

돈 많이 벌었냐구요? 말도 마세요. 광고 제작한 회사에 가면 그 쪽 담당직원이 저에게 와서 그래요. '준비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돈이 준비됐다는 게 아니에요. 차에 가보면 새우깡이 몇 박스로 들어와 온~통~ 과자 천지에요. 내가 평생 살면서 새우깡을 몇 박스나 먹겠어요.(웃음)

- 광고 기획 쪽은 어떠세요?

나는 CF는 안 찍었어요. 지금 실용 광고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각 학교마다 광고학과가 생겼는데 광고 음악에 대해서 강의를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한 학기를 맡아서 강의를 하라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고사했습니다. 이렇게 와서 보면 제 광고음악이 새로운 장을 연 셈이죠. 통기타의 좋은 감성을 광고음악에 접목시켰다고 할까요.

-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지인은 어떤 분이 계세요?

성격이 유별난 송창식하고 35년 간 지냈죠. 누가 나보고 그래요. 그 송창식하고 어떻게 35년 간 친구로 지내왔느냐고.(웃음) 홍신이는(김홍신 의원) 바른 소리를 잘 하는데, 정치를 하면 좀더 정치가답게 했으면 하는데 이 친구는 분석적으로 따지는 속성이 있어요. 그런데 정치는 소설이 아니잖아요. 그게 좀 안타깝긴 하죠. 세환(가수 김세환)이는 교회에서 같이 활동도 하고 있고, 양희은도 있고. 신앙적인 친구들도 있고요. 그리고 역시 온누리 교회의 하영조 목사님. 그 분이 전도사 때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는데 참 대단한 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은 아버지

- 가수, 사업자, 종교인, 여러 호칭 중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으세요?

기자들이 많이 물어봐요. 작곡도 해, 가수도 해, 방송진행, 광고, 사업도 해, 몇 가지 일을 하느냐는 거지요. 그 중에 어떤 직업이 제일 힘든지 물어보거든요? 저는 자신있게 대답하는 직업이 있어요. 아버지에요. 아버지는 사표도 안 받아주고요, 휴가도 없어요. 죽을 때까지 아버지이고 죽어서도 아버지에요. 제일 귀하면서, 힘들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라는 직업이에요. 아버지를 직업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가정의 중요한 리더쉽이고, 경영자고, 종의 자세를 가져야하는 것이에요.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해결이 되나요. 끝내는 내가 아버지로서 터득한 결론은 가장 최고의 교육 방법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훈계나 교육이나 책망이나 뭐든 것의 근본은 사랑에서 나와요. 한창 사랑받아야 될 10대 아이들이 부모가 깨지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나가겠어요. 참 심각합니다.

(편집자 주: 윤형주씨는 막내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매일 팩스로 사랑이 담긴 메모 편지와 함께 큐티 내용을 실어 보냈다. 평소 그가 늘 주장하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식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대목. 두 부자의 팩스 대화는 'QT로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졌다.)

- 자식들 결혼 시켰을 때 혼수를 안 하셔서 화제가 됐었죠?

둘째 딸이 올 11월에 결혼하는데 예단이 없어요. 첫째 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아이들이 남녀가 동격인데 같이 들어오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동등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는데 풍속 때문에 시댁이 혜택을 받아야 하고, 딸을 가졌기 때문에 무엇을 요구하고 이런 건 잘못된 결혼관이죠. 부모는 자식들이 좋은 시작을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지, 부모가 결혼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어요. 모든 것이 지난 날의 관념과 틀에서 벗어나자는 겁니다. 결혼은 달라져야 해요. 결혼 때문에 고통받는 남녀가 얼마나 많아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결정한 배우자인 것을... 혼인을 통해서 대접받고자 하는 게 있다면 차라리 아이들을 도와줘야 해요.

- 딸이라 그러신 건 아닌가요? 아들 때도 그렇게 하실 거예요?(웃음)

아들 때는 아마 더할 겁니다.(웃음) 이번에 딸이 결혼할 때도 우리 딸이 시집가는 게 아니라 사위가 들어오는 겁니다. 이번 사위는 바리톤인데 내가 많이 도와줘야죠.

소리내 울고 싶은 아버지들을 위해 기도하자

-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가 있잖아요. 나이테란 것은 우리의 세대가 엮어놓은 하나의 흔적, 결이거든요. 우리는 그 나이테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하나의 결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거든. 우리가 많이 힘들고 지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서로 공감해 줄 수 있는 노래가 있고, 우리 젊음을 위로해주었던 문화가 있는 우리의 그 날들을 함께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지금은 20대에게 밀려난 것 같은 서글픔 때문에 나라가 왜 이러냐, 정치가 왜 이러냐 그렇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죽지 않았다. 그 결은 늘 남아있다. 우리는 밀려나는 세대가 아니다.'

아버지들이 모두들 명퇴하고 자기 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실망감 속에 있는데 우리가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꿈을 가져야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같은 세대가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해요. 우리 세대를 위해 노래할 곳이 있으면 가능한 한 가서 노래를 하려고 합니다. 공연 중에 항상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을 해요. 그리고 공연 끝날 때 즈음에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남편 손을 잡아줘라, 남편들이 울고 싶을 때가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라고 말해요.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래요. 아버지들은 요즘처럼 자녀들의 기도가 필요한 때가 없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수리를 맡겼었다는 커다란 기타케이스가 배달되어왔다. 기타케이스를 열어보고 매만지는 그에게서 오랜 세월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음악인의 깊은 향취가 느껴진다.

농담처럼 30분 단위로 하루를 쪼개어 산다고 말하는 그는 늘 푸르른 상록수를 닮았다. 하고싶은 일을 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청년'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본다.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 치이듯 살아온 중년 세대들이여, 과거에 대한 추억과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펄펄 끓여 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20 23:05
2011.03.20 12:33

 

 

 


★승무패 19회차 토 5/15일

1 05/16 22:00 A S 바리 vs 피오렌티( 승 무)

49.5%

29.1%

21.4%

2 05/16 22:00 칼리아리 vs 볼 로 냐(승 패)

66.9%

22%

11.1%


3 05/16 22:00 카타니아 vs 제 노 아(승)

36.6%

33%

30.4%


4 05/16 22:00 키 에 보 vs A S 로마(승 패)

8.6%

14.7%

76.7%


5 05/16 22:00 라 치 오 vs 우디네세(무)

43.5%

34.5%

21.9%

6 05/16 22:00 A C 밀란 vs 유벤투스(패)

66.8%

21.3%

11.9%


7 05/16 22:00 삼프도리 vs 나 폴 리(승)

70.2%

17.6%

12.2%


8 05/16 03:00 AT마드리 vs 헤 타 페( 패)

30.8%

25.1%

44.1%


9 05/17 02:00 산탄데르 vs S 히 혼 (승)

66.7%

19.2%

14.1%


10 05/16 05:00 알메리아 vs 세 비 야(승 패)

11%

13.2%

75.8%


11 05/16 03:00 사라고사 vs 비야레알(무)

23.3%

20.9%

55.8%


12 05/16 05:00 마요르카 vs 에스파뇰(승 )

79.3%

13.5%

7.2%


13 05/16 01:00 빌 바 오 vs 데포르티(무 패 )

43%

31.9%

25.2%


14 05/17 02:00 말 라 가 vs 레알마드(승 패)

7%

9.9%

83.1%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5 15:48

 

 

 


뉴발란스 576 CPU (보라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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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5 09:54

 

 

 


유재석·김원희, '놀러와' 300회 맞아 듀엣곡 '열창'


유재석·김원희, '놀러와' 300회 맞아 듀엣곡 '열창'
[이데일리SPN] 2010년 08월 02일(월)


[이데일리 SPN 장서윤 기자] 방송 300회를 맞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연출 신정수 이지선)가 특별한 축하 공연을 준비했다.

2일 방송하는 '놀러와' 300회에서는 7년 동안 함께 호흡한 유재석·김원희 등 두 MC가 듀엣 곡을 선보인다. 7년간 진행해 온 '놀러와'에 대한 감회를 담은 가사를 1990년대 인기곡 '내사랑 투유'에 담아 새롭게 개사한 노래를 들려주는 것.


▲ 유재석-김원희

제작진은 "밤 새워 연습한 두 MC가 녹화 당시 노래를 온몸으로 열창해 큰 웃음을 줬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이날 300회 특집으로 방송하는 '놀러와'에는 전설의 MC 송해, 이상용, 이상벽이 출연해 두 MC에게 장수 프로그램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놀러와'는 2004년 5월 8일 첫 전파를 탄 이래 1200여명의 게스트가 함께한 기록을 세웠다.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4 16:06
2011.03.08 01:39
2011.03.07 17:24

 

 

 


크리스 브라운, 오프라 쇼에서 공식 사과하나


[JES] 가수 크리스 브라운의 오프라 윈프리 쇼 출연여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영국 연예 사이트 피메일퍼스트는 30일(한국시간) 리한나가 브라운에게 윈프리 쇼에 출연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브라운은 한 달 전 여자친구인 리한나를 심하게 폭행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폭행당한 리한나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브라운을 겨냥한 비난은 봇물터지듯 거세졌다. 둘이 서로 화해했다며 재결합을 선언했을 때에도 리한나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고 심지어 오프라 윈프리는 "한 번 폭력을 휘두른 남자는 또 때릴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경고하기까지 했다.

보도에 따르면 리한나는 윈프리의 충고가 신경쓰였는지 브라운에게 윈프리 쇼에 출연해 다시 한 번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측근은 "리한나는 지난 2월말 이후부터 윈프리와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라고 전했다. 윈프리는 리한나에게 개인적으로도 브라운과 헤어지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리한나에게 자신의 토크쇼에 출연해 다시 한 번 토론해볼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한나가 거절하자 윈프리는 "브라운에게 쇼에서 그의 심경 고백을 하도록 권유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다시 제안했다. 처음에 브라운은 토크쇼 출연을 거부했지만 지금은 어머니와 진지하게 상담하는 등 출연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브라운이 리한나와 함께 나온 섹스비디오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 누리꾼들의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브라운은 오는 6일 법원에 출석할 예정이다.

이민지 IS리포터

콤팩트 IS일간스포츠, 재미씨가 낸 퀴즈풀고 노트북 받자!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 ⓒJ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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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6 07:12

 

 

 


실종 장병 왜 못나왔나?특히 야간에는 사고를 막기 위해 잠궈놓는다는....

MBC Home > 다시보기 > 뉴스데스크




실종 장병 왜 못나왔나?



◀ANC▶

천안함의 내부는 통로가 좁고 미로처럼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탈출을 더 힘들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김세진 기자입니다.

◀VCR▶

침몰한 천안함의
내부입니다.

6개 층 가운데
사고 당시 장병들이
모여 있던 3층은
행정실과 침실, 탄약고,
세탁실 등 많은 방들이
복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통로의 폭은
성인 남자 1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 미로 같이 얽혀
있는 구좁니다

가장 많은 실종자가 발생한
배 뒷부분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배의 엔진 등을 관리하는
병사들이 쓰는 침실도
수많은 격벽과 통로로
연결 돼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폭발과 함께 선체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넘어지면서
좁은 통로와 입구가 물건이나 사람들로
막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SYN▶ 김태준 / 전 공주함 함장
"배가 위로 서면 한 80m가 변화가 생긴다고
하면 굉장히 많은 물건이 흩어지고 부상도
생기고..."

또 정전과 폭발 연기가 뒤덮히면서
출구를 제대로 찾기 힘들었을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

또 폭발이 일어난 9시 30분은
장병들이 취침 준비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대여서
갑작스런 사고에 대비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야간에는 사고를 막기 위해
문을 잠궈 놓는다는 전역자들의
증언도 있어,

사고 당시 탈출하려는 출입구와 통로가
잠겨 있었는지 여부도 철저히 규명돼야 할
부분입니다.

MBC뉴스 김세진입니다.

김세진 기자 blue32@mbc.co.kr / 201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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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4 0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