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1 08:42

 

 

 


‘남도답사 1번지’ 땅끝 가는 길

[민삿갓의 팔도기행] 봄처녀 살포시 미소 짓는 ‘남도답사 1번지’ 땅끝 가는 길

봄! 코끝에 걸려드는 한 줄기 훈풍에서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이즈음. 성미 급한 이들은 기다림에 지쳐 남도 땅끝마을로 떠난다. 남해를 건너와 한반도 땅끝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봄처녀를 만나기 위해.



▲ 땅끝마을 앞바다 풍광. 왼쪽의 갯바위는 일출 명소로 알려진 맴섬, 오른쪽은 형제바위다.

해남 땅끝은 우리나라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어 어느 지방에서 접근하든 제법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땅끝 여정을 제대로 즐기려면 1박2일로는 조금 무리가 되고 2박3일 정도는 돼야 무난하다.

서해안고속도로 남단의 목포 나들목을 빠져나와 2번 국도를 타고 강진을 향해 달린다. 가는 도중 왼쪽을 힐끗 보면 저 멀리서 남도 명산 월출산이 유혹한다. 그곳엔 유명한 무위사·월남사지 등이 있지만 이번 땅끝 나들이에선 이런 명소들을 잠시 지나치자. 그렇지 않으면 사나흘이 걸려도 땅끝까지 가는 일이 까마득할지도 모르니.

올 봄, 땅끝 여정 첫 대상지는 강진읍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된 고을이다. 사의재, 보은산방 등 다산 선생이 유배 초기에 머물던 곳이 복원돼 있다. 무엇보다 이런 봄날엔 모란꽃 활짝 핀 영랑생가를 꼭 들러보자. 첫날 점심은 이곳 강진읍내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 유명한 맛집이 많다.

이어 다산 선생의 중·후기 유배지였던 다산초당으로 간다. 물론 백련사 동백숲에서의 사색도 빼놓을 수 없다. 다산기념관~다산초당~백련사 산책은 남도 여행의 필수 코스다.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이번엔 18번 국도로 해남읍내를 거쳐 녹우단(녹우당)으로 간다. 녹우단은 조선시대 명문장가인 고산 윤선도 종손이 살고 있는 해남 윤씨 종가다. 고택 답사, 국보와 보물들이 여러 점 보관돼 있는 고산유물관, 뒷산의 비자림 등을 둘러보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어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으로 간다. 일정이 1박2일이든 2박3일이든 이곳에서 숙박하는 게 무난하다. 숙소와 식당이 넉넉하다. 대흥사·일지암 구경과 두륜산 산행까지 여유롭게 섭렵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산행을 1~2시간 절약할 수 있다.



▲ ‘땅끝지맥’이 바다로 빠져드는 갯바위에 서 있는 땅끝탑. 이곳이 땅끝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이튿날, 두륜산을 벗어난다. 13번 국도를 타고 다시 땅끝으로 길을 잡지만,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절집인 달마산 미황사의 유혹도 뿌리칠 수 없다. 봄볕에 정갈하게 씻긴 부도밭 가는 동백길 산책도 좋다. 도솔암은 도솔봉 암벽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아담한 암자다. 여기서 보는 다도해 풍광이 빼어나다.

도솔암을 빠져나오면 드디어 땅끝. 2박3일 일정이라면 여기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숙박업소와 식당이 많다. 이튿날 아침에 땅끝탑까지 산책을 꼭 즐긴다. 이어 전망대에 오르면 백두산부터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바다로 잦아드는 장엄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땅끝마을 산책은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1~2시간 정도 걸린다.

이제 귀가할 시각. 만약 오후 늦게 떠나도 괜찮다면 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 보길도에 갔다 오는 것도 좋다. 2~3시간 정도 더 잡아야 한다.

땅끝 여정을 1박2일로 잡았다면, 영랑생가~사의재~다산초당~녹우단~대흥사~(숙박)~미황사~도솔암~땅끝마을 순서로 둘러보고 귀갓길에 오르면 된다.

꽃샘추위 탓에  봄처녀 발걸음이 굼뜨기만 하더니, 봄비가 몇 차례 대지를 적시자 하루가 다르게 봄처녀의 숨결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4월이 되면 황톳빛 남도 산하는 연둣빛 신록으로 점차 물들어가고, 그 사이로는 처절하게 스러지는 동백꽃의 마지막 절규가 오히려 ‘화사’하다.

‘끝’이라는 말은 마지막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끝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땅끝’이라는 말은 ‘섣달에 그리는 춘삼월’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남도, 그 중에서도 강진·해남을 거쳐 땅끝마을로 여정을 잡았을 땐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땅끝 가는 길은 멀다.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최소 5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고속도로만 벗어나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 눈을 놀라게 하는 경치에다가 혀를 호사시켜주는 별미가 가득하고, 무엇보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에도 깊은 내력이 있는 남도 답사 1번지 아닌가.

땅끝 가는 길, 가만히 귀 기울여보자. 남녘 바다를 건너온 봄처녀가 가슴 깊이 숨겨 놓았던 그 기나긴 사연을 소곤소곤 들려줄 테니.


영랑생가&사의재


해마다 찾아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

강진읍내에서 땅끝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강진읍내 풍광은 남도 해안가에 자리한 여느 읍내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평범한 읍내 풍경이지만 이곳은 남도 여행의 중요한 베이스캠프다.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1903~1950) 시인을 먼저 만난다. ‘북도에 소월이라면 남도에 영랑’이라던 서정시의 대가. 소월이 북도의 투박한 사투리로 독특한 가락을 표현했다면, 영랑은 남도의 곰살스러운 사투리로 시심을 노래했다. 영랑생가 행랑채 앞 큼직한 돌엔 저 유명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새겨져 있다. 차분히 읊어보고 봄을 느껴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 1 영랑문학제가 열리는 4월 하순 영랑생가를 찾아 활짝 핀 모란을 감상하는 사람들. 2 김영랑 시인의 생가. 시인은 이 집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주옥같은 시를 쓰기 위해 시심을 가다듬었다. 3 강진 동쪽 관문의 영랑공원엔 김영랑 시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시를 읊었다면 이젠 생가를 둘러볼 차례. 문화유산해설사가 항상 생가에 상주하니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다. 물론 무료다.

잠시 영랑의 이력을 거칠게나마 살펴보자. 우리나라 서정시의 거목인 영랑은 이 집에서 태어났다. 영랑은 강진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가 서울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배우고 휘문의숙에 입학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만세운동을 모의했으나 발각되는 바람에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이듬해엔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편입한다. 그러다 1923년 동경대지진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8·15광복 후 영랑은 우익청년운동에 힘을 쏟는다. 1948년 영랑 일가는 이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한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 영랑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해 지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자 거리에 나왔다가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이튿날 세상을 떠나고 만다. 48세라는 길지 않은 일생이다.

영랑 일가가 집을 팔고 떠난 뒤 주인이 몇 차례 바뀌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된 것을 1985년 강진군에서 사들인 뒤 영랑 가족의 고증을 얻어 옛 집에 가깝게 복원했다. 생전에 영랑은 나라 잃은 한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대숲으로 둘러싸인 이 생가에서 북을 치면서 시를 지었다고 한다.

집 주변엔 영랑 시의 소재였던 굽은 돌담, 돌로 쌓은 우물, 장독대와 감나무, 모란과 대숲과 동백나무들이 있다. 무엇보다 영랑의 대표 시의 소재가 된 모란꽃을 보려면 4월 하순에 찾으면 된다. 영랑생가의 문화유산해설사는 “이곳 영랑생가 모란꽃은 보통 4월 20일 무렵 피어나기 시작해 4월 30일 이전에 활짝 피어난다”고 귀띔한다.

매년 4월 하순 무렵, 모란이 피는 때를 맞춰 영랑의 시심을 기리는 영랑문학제가 열린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는 영랑문학제는 4월 23일(금)부터 25일(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그러니 4월에 땅끝 여행을 계획한다면 ‘모란이 피는 찬란한 봄’ 풍경이 펼쳐지는 4월 넷째 주말 무렵에 일정을 잡는 게 좋겠다. 영랑생가 061-430-3185

다산 정약용 선생이 머물던 주막 사의재

강진읍내엔 다산의 체취가 가득하다. 하여 영랑생가를 나온 뒤 바로 다산초당으로 달려가기보단 이곳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의 체취를 느껴보자.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됐을 때 바로 다산초당으로 가지 않았다. 다산은 이곳 읍내에서만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1801년 다산은 신유박해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됐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이 터지자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다시 유배길에 올랐다. 형은 흑산도, 아우는 강진이었다. 형제는 나주 율정점 주막에 도착한 뒤 이튿날 이별한다. 동생은 ‘율정별(栗亭別)’이란 시를 남긴다.



▲ 1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처음 유배왔을 때 머물던 주막집. 다산은 ‘사의재’란 이름을 붙였다. 2 다산 선생은 백련사 혜장선사의 주선으로 고성사의 보은산방으로 옮기게 된다.

띠로 이은 주막집 새벽 등잔불 푸르르 꺼지려는데 / 일어나 샛별을 보니 헤어질 일 참담하네 / 그리운 정 가슴에 품은 채 두 사람 서로 할 말을 잃어 / 억지로 말을 꺼내니 목이 메어 오열하네’

1801년 11월 22일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주모 할머니의 배려로 강진의 동문 밖 주막집에 머무른다. 제 아무리 다산이라 해도 유배 초기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술로 시름을 달랬던 모양이다. 어느 날 주모가 다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찌 그냥 이렇게 헛되이 사시렵니까.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갈 데 없는 자신을 거둬준 주모의 닦달에 다산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자신의 거처를 사의재(四宜齋)라 하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기로 다짐한다. 결국 다산이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극복하고 조선 최고의 사상가로 거듭나게 된 데엔 주모의 자극이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당호인 사의(四宜)란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란 뜻이다. 네 가지는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가리킨다. 고난에 닥쳐서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학자의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이 무렵 유명한 실학자가 강진으로 귀양왔다는 소문을 들은 백련사의 혜장선사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강진군은 다산이 머물던 사의재를 2007년 복원했다. 그런데 그냥 빈 집이 아니고 음식과 차 등을 들 수 있는 진짜 주막이다. 음식도 1인분에 모두 5,000원 수준. 만약 강진읍내에서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괜찮겠다. 숙박은 할 수 없다.

1805년 10월 8일, 다산은 약 4년 동안 머물던 사의재를 떠나 5리쯤 떨어진 고성사 보은산방(寶恩山房)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물론 혜장선사의 주선이 있었다. 다산은 이곳에서 <주역> 연구서를 저작하고, 52편의 시를 집필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6년 9월 1일 이학래의 집으로 옮기게 된다. 이학래는 강진 6제자(황상, 손병조, 황취, 황지초, 김재정, 이학래) 중 막내다. 이학래 집터는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강진군에서는 현재 도암만 가까운 곳의 폐가 터를 이학래 집터로 지정해 복원 준비를 하는 중이다.

숙식>> 강진읍내엔 프린스장(061-433-7800), 가필드(061-433-1212), 모두모텔(061- 433-8776) 등 모텔급 숙박시설이 많다.

강진 한정식은 강진만 개펄과 탐진강, 그리고 주변의 들녘에서 구한 온갖 재료로 맛을 낸 요리를 푸짐하게 내는 것이 특징. 해태식당(061-434-2486), 명동식당(061-434-2147) 등이 유명하다. 보통 기본 2인상에 5만 원 내외.

동해회관(061-433-1180)에서 차리는 자연산 짱뚱어 요리도 아주 유명하다. 짱뚱어탕 1인분 6,000원, 짱뚱어 전골(4인 기준)은 3만4,000원.

다산이 머물던 주막인 사의재(061-433-3223)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다. 새싹비빔밥 5,000원, 추어탕 5,000원. 주막집답게 동동주(5,000원)도 마실 수 있다. 안주로는 매생이전(5,000원), 간재미찜(1만 원) 등이 준비돼 있다.


다산초당&백련사

“다산 선생도 저 붉은 동백꽃에 반했으리”

강진 제자의 집에서 두 번의 겨울을 지낸 1808년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에 다산은 드디어 해남 윤씨 소유인 만덕산(409m) 기슭의 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산은 해남 윤씨와 혈연관계가 있었다. 다산의 모친이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손녀고,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니 해남 윤씨 집안은 다산의 먼 외가 친척 관계다.

다산은 초당에서 해남 윤씨 집안의 각별한 배려로 1818년 9월 해배될 때까지 본격적으로 학문을 탐구하게 된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이른바 ‘다산학’이라 일컬어지는 방대한 저술을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었다.



▲ 1 강진 만덕산 백련사. 고려 후기에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을 개설한 절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2 조선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이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3 다산 선생이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던 자리에 세워진 천일각.

강진읍내 쪽에서 다산초당으로 접근하다 보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큰길에서 백련사, 다산초당, 다산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이 각각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예전엔 백련사에서 내려 다산초당으로 걸어갔다 오든지, 아니면 다산초당에서 접근해 백련사까지 다녀오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 답사 순서는 다산기념관에서 다산의 학문과 일생을 먼저 살핀 다음, 다산초당을 거쳐 백련사로 가는 코스가 주를 이룬다. 만약 차량 지원이 가능한 단체관람이라면 차량을 백련사 주차장에 기다리게 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다시 다산기념관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다산기념관~(20분)~다산초당~(30분)~백련사 왕복 코스가 걷는 데만 1시간30분쯤 걸린다. 따라서 2시간 정도면 봄날의 여유로운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인 것이다.

한편 최근 강진군에서는 다산의 체취가 묻어 있는 유적지를 연결한 ‘다산유배길’을 조성했다. 다산기념관~다산초당~백련사~도암만 둑방길~이학래 집터~사의재~영랑생가~보은산방은 총 거리가 약 17km. 꽉 찬 하루가 필요한 거리다. 걷기에 자신이 있거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 시도해보자. 그렇지만 보통 여행객들은 다산수련원~다산초당~백련사 왕복 코스로 아쉬움을 달랜다.

다산기념관을 출발하면 초입의 운치 있는 두충나무 군락지, 정호승 시인이 이름 붙여준 ‘뿌리의 길’을 차례로 지난다. 호젓한 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다산초당에 다다른다.

현재 기와로 지붕을 올린 다산초당은 본디 초가였다. 이는 다산과 교분이 있던 해남 일지암의 초의선사가 다산과 함께 1812년 가을 월출산 구경을 하고 오다가 그렸다는 ‘다산초당도’가 발견되면서 확인됐다.

이렇듯 원래 초가였던 것을 복원할 때 매년 짚을 갈아주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붕을 기와로 올리는 바람에 ‘와당’이 되어버려 ‘초당’의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주변엔 다산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동암(東庵)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하던 건물로서 여기에서 저술작업이 이루어졌다. 서암(西庵)은 다산의 제자들이 머물던 곳이다. 동암과 서암 모두 1970년대에 복원했다.

뜰 앞의 평평한 바윗돌은 다산이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찻물을 끓이던 부엌인 다조요, 초당 왼편 뒤쪽의 샘물은 다산이 찻물로 쓰던 약천(藥泉)이다. 동백 그늘 드리워진 뜰 오른쪽의 아담한 연못은 다산이 직접 축대를 쌓고 못을 파 물고기도 기르고, 꽃나무도 줄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다. 또 초당 뒤쪽의 바위벽엔 다산 선생이 해배될 때 썼다는 정석(丁石)이란 글씨가 있는데, 이 네 가지를 일컬어 ‘다산4경’이라 한다.

다산은 다산초당으로 들어오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본격적으로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혜장선사와 함께 다도를 즐겼다. 만덕산엔 야생 차나무도 많았다. 다산은 백련사 혜장선사에게 “목마르게 바라노니 부디 선물을 아끼지 말기를” 하며 걸명소(乞茗疎)를 보내기도 했다.

백련사 부도밭 주변에 떨어진 동백꽃 장관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 초입의 산등성이는 다산초당에서 가장 전망이 트인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멀리 도암만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천일각(天一閣)은 이를 기리기 위해 1970년대에 세워진 것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오솔길은 다산 선생과 혜장선사가 서로 만나기 위해 오가던 길이다. 동백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암만 풍경은 고즈넉하고, 대나무와 차나무와 동백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니 사색하며 걷기에 더없이 좋다.

고려 말 천태종 부흥의 본산이었던 유서 깊은 백련사(白蓮寺) 주변의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은 남도의 봄을 봄답게 해주는 곳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 1500여 그루에서 피어나는 동백꽃들은 도암만 바다, 그리고 단아한 절집과 조화를 이룬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절을 가리켜 ‘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며 동백 또한 곁들여서 창취가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표현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동백숲에서 부도밭 주변의 정취가 일품이다. 이 동백숲에서 붉은 기운을 느끼려면 한겨울보다 동백꽃이 바닥을 뒤덮는 3월 이후에 찾으면 된다. 물론 4월에도 이런 운치를 즐길 수 있다.



▲ 1 다산 선생이 차를 달일 때 쓰던 샘물인 약천. 2 다산초당 근처에 세워져 있는 다산기념관. 다산의 일생과 학문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3 백련사 부도밭의 동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은 3~4월에 온통 붉게 변한다.

한편 백련사에서는 4월 10일(토) 다례제가 예정돼 있다. 오후 2시 백련사 명부전에서 다례제를 지내고, 3시엔 동백림에서 들차회가 있다. 이어 도암만이 눈에 들어오는 붉은 동백숲에 소박한 무대를 꾸미고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동안 음악회를 연다. 풀피리, 해금, 판소리 등의 공연이 준비돼 있으니 참고하자. 다산기념관 061-430-3780, 백련사 061-432-0837

숙식>> 다산초당 산책 출발 지점인 다산수련원(061-430-3786)에서 숙박할 수 있다. 2인 1실 기준 1만8,000원, 추가 1명당 5,000원. 방 1칸에서 5명까지 숙박 가능. 단체손님은 식사 예약이 가능하다. 1인분 5,000원. 밥상에 7~8가지 정도의 반찬이 올라온다. 주변에 들꽃민박(061-432-9080), 알뜰수퍼민박(061-434-8487), 다향소축(061-432-0360), 다산촌명가(061-433-5555) 등이 있다.



해남 녹우단

‘푸른 비’ 쏟아지는 고산 윤선도 고택

다산초당을 벗어난다. 이어 18번 국도를 타면 해남읍의 녹우단(綠雨壇·사적 제167호)이 소매를 붙든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기거하던 사랑채가 녹우당(綠雨堂)이고, 녹우당을 포함한 해남 윤씨 종택 전체를 녹우단이라 한다. 해남 현지에서도 이정표에 녹우단과 녹우당을 섞어 쓰고 있지만, 모두 같은 곳을 뜻하니 헷갈리지 말자.

그런데 당호가 녹우(綠雨)? 무슨 뜻일까. 여러 가지다. 흔히 가을에 녹우단 은행나무에서 노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마치 빗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리 지은 것이라 한다. 집 뒤편의 대숲에 부는 바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녹우단 뒷산엔 비자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바람 부는 날이면 마치 빗줄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 해남 윤씨 종택인 녹우단 전경. 오른쪽은 고산유물전시관이다.

그렇지만 녹우는 사전적 의미로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자연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되는 생명수인 셈이다. 녹우당이란 당호를 지은 이는 공재(恭齋)와 절친한 사이였던 옥동(玉洞) 이서(李敍·1662∼1723). 그러니 공재의 재능을 잘 알고 있던 이서가 공재를 녹우에 견주어 당호를 붙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은행나무, 대숲, 비자림 모두 녹우단의 소중한 보물이다.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고산이 시심을 가다듬는 것을 지켜보았을 테고, 대숲은 국난이 닥쳤을 때마다 대대로 전해오는 소중한 보물을 항아리에 넣어 묻어두던 곳이다. 비자림은 해남 윤씨가 대대로 가꿔온 숲이다. 녹우단에 처음 터를 잡아 해남 윤씨가 번창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한 어초은 윤효정이 “뒷산의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유훈을 남기자 후손들이 비자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다. 현재 비자림엔 500여 년 된 비자나무 400여 그루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 1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이 있는 호젓한 돌담길. 제법 운치가 넘치는 고풍스런 길이다. 2 고산 윤선도 집안에 전해오는 유물이 전시된 고산유물전시관. 현재 새로운 유물관을 짓고 있다. 3 고산 윤선도 증손인 공재 윤두서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 국보로 지정돼 있다.

누가 뭐라 해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문적(文籍), 문서 및 고화(古畵) 등이 고루 갖추어진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이곳엔 보물로 지정된 산중신곡(보물 제482호), 노비문권(보물 제483호)를 비롯해 고산의 육필과 집안 문서, 고산의 증손인 윤두서가 그린 걸작 공재자화상(국보 제240호), 그리고 동국여지도·일본여도와 ‘나물 캐는 두 여인’ 등이 수록된 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등이 전시돼 있다.

현재 새로 짓고 있는 유물관은 오는 5월 18일 완공 예정이다. 따라서 그 이후엔 유물을 새로운 전시관으로 옮겨 전시하게 된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새 전시관엔 그동안 비좁아 전시하지 못했던 귀한 유물들도 나올 것”이라고 귀띔한다.

이런 소중한 유물을 관람하고 비자림에서 삼림욕을 하고 나면 입장료(일반 1,000원, 어린이 700원)가 전혀 아깝지 않다. 1시간 정도면 비자림 산책까지 포함해 녹우단 일대를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녹우단 061-530-5548


두륜산 대흥사&일지암

봄 깊은 산중 암자엔 차향 그윽하고

백두에서 길게 뻗어 내려와 땅끝에 사자봉을 세우기 전에 아쉬움처럼 빚은 명품이 두륜산(703m)과 달마산(489m)이다. 두 산 모두 이 땅에서 빠지지 않는 경관을 지니고 있다. 그 산자락 곳곳엔 초록빛을 띤 늘푸른나무 동백나무가 겨울에도 봄꿈을 키우고 있다.

서산대사가 일찍이 “천년병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라 말한 대흥사(大興寺) 가는 길. 봄이 긴 계곡 장춘동(長春洞)은 녹색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한 싱싱한 숲길이다. 아홉 굽이 숲길이라고 해서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고도 하는 이 길 양쪽엔 측백나무와 편백나무가 가득하다. 그 너머 숲엔 수백 년 수령의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4월이면 이 길엔 봄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녹색의 생명 덩어리가 숲을 떠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푸른 기운이 몸 안에 가득 들어찰 것만 같은 생명의 길이다.



▲ 1 신록으로 물든 두륜산 아래 천년 고찰 대흥사가 포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봄이 깊어지는 4월 하순의 풍경이다. 2 일지암과 동백나무. 떨어진 동백꽃들이 땅을 붉게 물들였다.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을 촬영했던 고택인 유선여관을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면, 푸른 숲 그늘에 수십 기의 부도가 모여 있는 부도밭이다. 대흥사가 배출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의 부도와 비를 모시고 있다. 당연히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의 부도도 있다.

두륜산의 두륜(頭崙)은 백두산의 ‘두’자와 곤륜산의 ‘륜’자에서 따온 이름으로 중간에 ‘산이름 륜’자가 ‘바퀴 륜’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원래 ‘두른산’을 한자어로 붙인 이름이다. 가련봉, 고계봉, 능허대, 두륜봉, 도솔봉 등 서산대사가 천년병화가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 이 산줄기가 ‘봄이 긴 골’을 용틀임하듯 감싸고 있는 것을 보면 ‘두른산’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가련봉과 능허대, 두륜봉이 수호신처럼 굽어보고 있는 대흥사 경내로 들어가 해탈문 우측으로 걷다 보면 맑은 무염지가 반기고 은은한 차향이 느껴지는 동다실이다. 어느 때 문을 열고 들어가도 좋은 찻집인데 기왕이면 일지암에 다녀온 뒤 여유 있게 차를 들고 싶다. 바로 옆엔 성보박물관도 보인다. 이곳은 서산대사의 금란가사, 옥발, 수저, 신발, 염주, 교지, 승군다표지물 등 많은 유물이 갖춰져 있는 서산관, 초의선사의 차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초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 1 다성으로 일컬어지던 초의선사가 물맛을 자랑하던 일지암 유천. 2 기묘하게 이루어진 두륜산 구름다리. 두륜봉 정상 근처에 있어 본격 산행을 해야 구경할 수 있다. 3 대흥사 입구의 부도밭. 대흥사가 배출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의 부도를 모시고 있다.

신라 말기에 세워진 대흥사는 당시엔 한반도 남서쪽 해안의 자그마한 절집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서산대사로 인해 당대 최고 가람으로 거듭났다.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위태로운 나라를 구한 승병장 서산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전 제자인 사명당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두라고 유언했다. 서산대사가 입적한 후 제자들은 유언을 따랐고, 구국의 영웅을 모신 이 가람은 그후 크게 일어나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했다.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를 모신 사당이다. 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여 제자들이 1669년에 건립했다. 정조가 표충사라 사액하였으며, 나라에서는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참고로 대흥사 경내엔 유심히 살필 편액이 여럿이다.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고, ‘대웅보전’은 이광사의 글씨, ‘가허루’는 이삼만의 작품이다.

표충사 앞엔 편안한 표정으로 단지를 들고 앉아 있는 노스님의 동상이 있으니 바로 초의선사다. 무안에서 태어나 16세에 출가한 후 40여 년간 두륜산 일지암에서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었던 선사는 시와 글과 그림에 능통한 명인이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다도(茶道)를 정립한 다성(茶聖)이었다.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발길을 일지암으로 향한다. 길섶엔 동백꽃 피고 지는데,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길을 얼마쯤 걸으면 어느새 차향 그윽하게 풍겨오는 일지암(一枝菴)이다. 한 개의 나뭇가지로 지은 암자라! 이름은 ‘뱁새는 항상 한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무 한 가지에만 살아도 마음이 편하다(安身在一枝)’는 한산시(寒山詩)의 일지(一枝)를 따온 것이다. 결국 ‘일지’는 허름한 초가에서 차와 더불어 평생을 지내면서 마음을 맑게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스님의 ‘초의(草衣)’라는 법호와 의미가 맞닿는다.



초의선사가 40여 년 머물던 일지암

39세인 1824년 이곳에 띳집을 지어 머물던 조선 후기의 선승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당대 거유들과 사귀며 다도와 선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차향과 맛이 우수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동다송>과 <다신전>은 ‘차의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저술로 평가된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찻잎을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일 때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일지암 뒤꼍 동백나무 우거진 산등성이에서 흘러나오는 유천(乳泉)은 ‘물은 차의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던 초의선사가 좋은 물이라 칭찬하던 샘물이다. 선사가 자랑해 마지않았던 맑은 유천 한 모금을 들이켜고 돌아보면 아름드리 동백나무 몇 그루와 푸른 차밭 풍경이 싱그럽다. 초의선사도 이 풍경을 사랑했을 것이니 비록 차 한 잔 권하는 스님 없어도 마음은 더 없이 한가롭다.

대흥사를 찾고서도 두륜산 산행을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두륜산 산정에서 감상하는 서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은 정말 일품이다. 여기에 서면 ‘섬들의 천국’이라는 다도해의 섬들을 가장 많이 멀리 볼 수 있다. 한반도 땅끝까지 이어진 산줄기와 남해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 보길도 너머로 추자도, 그리고 날씨가 맑으면 제주의 한라산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부챗살처럼 뻗은 산길을 여러 코스로 조합할 수 있지만, 대흥사부터 산행을 시작한다면 대흥사~오심재~능허대~가련봉~두륜봉~구름다리~일지암~대흥사 회귀 코스가 가장 뿌듯하다. 3시간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대흥사 입장료 성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대흥사 종무소 061-534-5502

두륜산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주릉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대흥사 집단시설지구에서 출발해 고계봉(636m) 정상 아래 해발 570m 지점까지 이어진다. 케이블카~고계봉~오심재~노승봉~가련봉~두륜봉~구름다리~일지암~대흥사 코스는 대략 2시간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케이블카 운행 시각은 08:00~18:00. 요금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 두륜산케이블카 061-534-8992, http://www.haenamcablecar.com/

숙식>> 두륜산 집단시설지구에 여관과 민박집 같은 숙박시설이 많고, 산채비빔밥·산채정식 등을 차려 내는 식당도 여럿이다. 대흥사 입구의 유선여관(061-534-2959)은 영화 ‘서편제’를 촬영하기도 한 전통 한옥. 남도의 온갖 반찬이 올라오는 특별한정식이 4인 기준 한 상(8만 원)으로 나온다. 숙박 손님에게 아침식사 7,000원, 저녁식사가 1만 원. 숙박비는 2인 1실 기준 3만 원.

이외에도 두륜산 집단시설지구엔 두륜각(061-535-0080), 영빈장(016-534-0076), 대성각(061-535-4700), 대흥각(016-535-1551), 남국장(016-535-3955), 그린장(061-533-3344), 낙원각(061-535-4302), 동일각(061-534-2223) 등 숙박업소가 많다. 전주식당(061-532-7696) 등 산채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이다.


달마산 미황사&도솔암

눈을 놀라게 하는 바위 병풍에 안긴 천년 고찰

대흥사에서 승용차로 30~40분 거리엔 한반도 육지 최남단에 자리한 절집인 미황사(美黃寺)가 있다. 달마산의 거친 암봉들이 창과 검을 세운 것처럼 불쑥불쑥 솟은 바위 병풍과 대웅보전 용마루의 부드러운 곡선이 이뤄낸,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는 제법 아름답다는 평이다.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온 검은 소가 점지한 절집인 천년 고찰 미황사는 한때 도솔암, 문수암 등 열두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 대웅보전 기둥을 받치는 연꽃 모양의 주춧돌엔 게·거북·물고기 같은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어 바닷길을 통해 달마산에 불법이 도착했다는 창건 설화의 암시로 풀이된다.

그러나 150년쯤 전에 중창불사를 위해 ‘궁고’라는 전문 공연놀이패를 꾸려 해안지방 순회공연을 하다가 청산도로 공연을 하러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설장고 스님만 남고 떼죽음을 당했다. 그 뒤 미황사는 쇠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응진당(보물 제1183호) 등 몇몇 당우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불사 덕분에 제법 규모가 커졌다.

부도밭 가는 동백 오솔길도 놓치기 아깝다. 동백꽃 내음에 파묻혀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호흡 맞춰 걷는 맛이 좋다. 비와 바람에 마모되어 옛 향기 그윽한 부도들은 미황사의 위상을 짚어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곳 부도 기단 하부에도 용·학·연꽃 등과 더불어 역시 거북·물고기·게 같은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 달마산 도솔봉 바위틈에 제비집처럼 터를 잡은 도솔암. 주변 조망이 아주 빼어나 최근 명소로 떠올랐다.<사진 해남군청>

바위 벼랑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

달마산의 암봉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봉우리는 달마산 남쪽의 도솔봉이다. 도솔봉 정상 근처에 터를 잡은 도솔암(兜率庵)은 최근 인기를 크게 끌고 있는 명소. 미황사에서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으나 가는 데만 1시간30분 넘게 걸리는 먼 거리다.

달마산 통신탑까지 이어진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르면 도솔봉 턱밑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미황사를 빠져나와 송지면 마봉리에서 도솔암 이정표를 따른다. 마련마을을 지나 통신탑 아래 차를 세워두고 짙은 숲길로 20~30분 걸어가면 도솔천이 열리듯 문득 도솔암이 바위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암자는 암봉 사이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 평평하게 만든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아슬아슬한 벼랑에 세워진 암자라 마당은 손바닥만 하지만 조망은 더 없이 좋다. 남쪽 정면으로 땅끝, 서쪽으로는 진도, 동쪽 완도다. 고개를 돌리면 해남 아래 바다 경관이 연이어 펼쳐진다.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이곳에서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주변 풍광이 너무 빼어나 내공이 강하지 않은 수행자라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될 듯하다. 최근 인기 드라마인 ‘추노’를 여기서 촬영하기도 했다. 극 초반에 추노꾼 대길(장혁 분) 일행이 암자로 송태하(오지호 분)를 추격해가는 장면이다.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패퇴하던 왜군들이 해상 퇴로가 막히자 달마산으로 달아나다 불태워버렸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버려진 채 있었는데, 얼마 전 이곳에 암자를 앉힌 이는 월정사에 있던 법조 스님이다. 2002년 법조 스님은 불자들과 기와·자재 등을 져 날라 한 달 만에 법당을 완성했던 것이다.



▲ 1 바위 병풍을 이룬 달마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미황사. 2 미황사 대웅보전의 주춧돌엔 게·거북·물고기 등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숙식>> 미황사 주변엔 숙식할 곳이 없다. 미황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찰예절, 참선, 차 마시기, 울력, 산행 등으로 짜여 있다. 1박2일 5만 원. 미황사 061-533-3521, http://www.mihwangsa.com/


땅끝마을

한반도 남단에 서서 만끽하는 봄 풍경


해남 땅끝은 백두산의 맑은 정기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거쳐 ‘땅끝기맥’으로 내려와 바다로 잦아드는 극적인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 끝에 서서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많이들 찾는다.

갈두산(156m) 정상에 서 있는 39.5m 높이의 땅끝전망대(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에 오르면 푸른 바다와 섬들이 두 눈에 가득 들어온다. 겨울 해풍 한 올에 봄 냄새가 묻어 있는 땅끝.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으로 뻗어내려 길게 길게 이어져 오던 산줄기가 함몰하고 바다가 시작되는 거기에서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면 흑일·백일·어룡·장구·노화·소안도, 그리고 고산 윤선도의 풍류가 숨쉬는 보길도…. 날씨가 맑고 해무가 없는 날엔 저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도 볼 수 있다.

갈두봉 아랫도리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갯바위엔 땅끝기념비가 있다. 땅끝전망대에서 조금 가파른 산길로 내려갔다 올라올 수도 있지만, 만약 일행 중에 노약자가 있다면 땅끝마을 갈두리 선착장에서 땅끝기념탑까지 이어진 해안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땅끝마을에서 모노레일(왕복입장료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 1 땅끝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땅끝마을 전경. 2 일출 명소로 유명한 땅끝마을 갈두선착장 앞의 맴섬. 매년 2월과 10월에 각각 5~6일 정도만 바위 사이로 솟는 일출을 볼 수 있다. 3 육지의 남쪽 끝에서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땅끝전망대.

땅끝 해안산책로는 제법 운치 있는 길이다. 예전에 해안경비병들이 순찰을 다니면서 생긴 오솔길을 넓혔는데,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라 노인은 물론 아이들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특히 땅끝마을에서 하룻밤 묵었을 경우, 아침에 산책 삼아 땅끝기념탑까지 다녀오면 좋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이 최고다. 땅끝마을에서 땅끝기념탑까지는 왕복 30~40분쯤 걸린다. 전망대까지 한 바퀴 도는 땅끝마을~땅끝탑~땅끝전망대~사거리갈림길~자갈밭삼거리~땅끝탑~땅끝마을 코스는 1시간 소요.

한 쌍의 매미를 닮았다는 맴섬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땅끝마을 선착장 앞바다에 떠 있는 맴섬은 유명한 일출 명소. 그렇지만 폭 5m 남짓한 두 개의 갯바위 사이로 해가 뜨는 광경은 1년에 딱 두 번만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이다. 2월(13~18일)과 10월(23~28일)에 각각 5~6일 정도만 볼 수 있다. 지구의 공전 때문에 해 뜨는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땅끝마을 홈페이지 http://www.openland.or.kr/

시간이 허락한다면 바다 건너 보길도에 다녀오지 않을 수 없다. 땅끝마을 갈두선착장에서 파도를 헤치고 1시간쯤 가면 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 보길도다. 고산은 이 섬에서 자연과 한몸이 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풀어낸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고산이 풍류를 즐겼던 세연정 앞 연못에서 ‘어부사시사’ 시상을 다듬었던 부용동까지 이어지는 3km쯤의 동백길도 좋다. 보길도로 직접 가는 배편은 하루 3회(08:20, 12:30, 14:30). 요금은 어른 8,200원. 여객선터미널 061-535-4268

땅끝마을에서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4km쯤 달리면 땅끝해양사박물관(061-535-2110)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폐교된 송호초등학교 통호분교 자리에 건립된 이 박물관엔 각종 어패류와 박제된 바닷고기와 화석 그리고 곤충류, 파충류, 척추동물 등 모두 2만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61-535-2110



숙식>> 땅끝마을에 갯마을민박(061-533-9153), 솔밭민박(061-535-4937), 땅끝민박(061-533-6389), 하얀집 모텔(061-534-3223), 땅끝푸른모텔(061-534-6677), 전망대민박(061-534-0049), 비치모텔(061-534-1002) 등 숙박업소가 많다. 숙박비는 2인 1실 기준 3만 원 내외. 땅끝마을에서 승용차로 5분 정도 거리의 송호해수욕장에도 땅끝관광호텔(061-535-1000) 등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땅끝동산회관(061-532-3004), 갈매기둥지(061-534-9192), 땅끝바다횟집(061-534-6422) 등 싱싱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을 비롯해 일반 가정식 백반을 차리는 식당 30여 개가 성업 중이다.


/ 글·사진 민병준 sanm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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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령 샴쌍둥이 형제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살고 있는 로니-도니 게일런 형제는 현재 '세계 최고령 샴쌍둥이'로 세계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나이는 59세!

1951년 10월 출생한 로니-도니형제는 태어날때부터 가슴부터 하반신 모두가 붙어있는 쌍둥이로 소화기관과
양 다리가 붙어있어 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2살때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들은 몇몇 장기들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몸체 분리수술을 안하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하여 몸체 분리수술은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고, 29살때 학업을 시작했으며, 각자가 사는 방식을
터득했습니다.
또한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법도 배웠다고 하네요.





지금은 이들 형제가 거의 6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해왔으며 세계 최고령 샴쌍둥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서로의 성격이 틀리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서로의 운명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있다고 하네요.^^

최근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조그만 집에 사는 로니-도니 형제는 공간이 더 넓은, 형
짐 게일런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전하고 있네요.




지금도 몸체 분리수술을 원한다면 할 것이냐는 질문에 로니-도니 형제는 'NO'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서로에게 협조하며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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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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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5 15:50

 

 

 


뉴발란스 574 L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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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5 09:56

 

 

 


<놀러와>조권.가인 ...안보면 보고싶다~~~

<놀러와> 조권 “가인 안보면 보고싶다, 가인도?”[한국재경신문] 2010년 06월 07일(월) 오후 09:35




조권이 ´가상 아내´ 가인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7일 방송되는 MBC <놀러와> ´어화둥둥 내사랑´ 특집 편에 가인과 함께 출연한 조권은 "‘우결’ 녹화 3일전부터 (가인이) 기다려진다"라며 “가끔 촬영이 없어지면 ‘보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게 된다. 그럼 누나도 ‘나도 보고 싶다’고 답문을 주곤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권은 “다른 여자를 사귄다고 해도 가인과 함께 갔던 곳은 차마 못 갈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권은 또 자신의 첫사랑으로 알려진 ‘오방실’에 대해 “항간에선 가상인물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실존인물이며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조권은 “최근 오방실에게서 연락 온적이 있느냐”라는 MC의 질문에 “미니홈피 일촌 신청을 했다”라고 답했다.

이날 조권-가인 외에도 연예계 실제 ´공식 커플´ 황정음-김용준이 결별설 이후 처음 동반 나들이를 즐겼다.

실제 커플과 가상 커플이 한 자리에 모인 <놀러와>의 ´스타 in 커버 스토리´에서는 커플들의 알쏭달쏭하고 민감한 속마음을 알아보는 ´민감한 속마음-커플 이심전심´ 을 알아보는 시간이 마련됐고, 이날 김용준은 결별설의 원인이 된 최다니엘과 삼자대면한 사연을 털어놓는다.

또, ´골방 밀착 토크´ 코너의 ´내 맘대로 랭킹 1.2.3´에서는 김용준의 ´정음이의 연인으로 캐스팅 되면 은근히 신경 쓰일 것 같은 남자 BEST 3´황정음의 ´내 남자친구가 변했다고 느끼는 순간 BEST 3´ 가인의 ´조권을 제외하고 우결을 같이 하고 싶은 남자 BEST 3´ 조권의 ´가인의 미래 남편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 BEST 3´ 가 공개됐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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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8 01:40

 

 

 


바람이 분다. -이소라

보고싶고..
말하고싶고..
같이 있고싶고..

사랑은 욕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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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7 17:25

 

 

 


Liberty of the Seas (9) Day 4 - Montego Bay, Jamaica

Day 4(Tuesday, May 6, 2008) - Montego Bay, Jamaica
Partly Cloudy, 82F
Smart Casual or Colorful Caribbean Attire



자마이카의 몬티고 베이(Montego Bay, Jamaica)에 도착.
배가 도착하자마자, excursion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이티에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정신없었던 아침. 이날은 거의 하루종일 밖에서 보내야 한다.

자마이카는 캐러비안에서 세번째로 큰 섬으로 자마이카에서 가장 큰 타운인 Kingston이 수도이지만, 두번째로 큰 Montego Bay는 관광의 수도라 불린다.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다가 올리버크롬웰의 승리로 300년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음. 1962년에 독립선언. 거의 300년동안 이곳에서 생산된 블루마운틴 커피로 유명하다.(맛있음 ^^)




프린세스 크루즈 당시 우리 배를 보기위해 몰려들었던 사람들. 어거지로 배 밖으로 나오며 시커멓게 타버린 배를 바라봐야 했던 암담했던 상황.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자마이카는 우리에게 썩 좋은 기억을 가진 남긴 장소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다신 안오겠다던 이 곳에 도착하였으니 ^^;;;
복잡하고 후덥지근한 몬티고 베이 터미널을 나오니, 많은 tour 차량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투어는 Dunn's River Express. 대략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투어이다. 가격은 일인당 68불.

시원하고 쾌적한 버스에 오르자마자 버스는 출발했다. 눈에 익은 많은 장소들이 보인다. 호텔과 공항을 오가며 봤던 풍경이 기억이 나네. ㅋㅋ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들은 그때는 비포장 도로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앉아있기가 힘들었는데, 이번엔 전부 아스팔트를 깔아서 거의 세시간이 걸리던 거리를 한시간만에 휘익~ 갔다는거다.


Dunn's River에 도착해서 주의사항을 듣고 나서 폭포 쪽으로 가려니 어디선가 나타난 자마이카사람. 뭐라뭐라 알아듣기도 힘든 말로 웅얼대더니,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내 카메라를 빼앗듯이 들고 내려가버린다. -.- 이런~ 걸려들었다.



우리를 끌고가다시피 해서 폭포 앞에 세워놓고 순식간에 사진 두방.



또다시 눈 깜짝할 사이 사진 두방. -.-
구경도 못하고 끌려다니며 사진 찍으려고 여기 온거 아니걸랑. 결국 바닷가도 가자는 그의 말에 우리가 알아서 가겠다며 10불 팁으로 주고 헤어져버렸다. 한 5분동안 사진 몇장 찍어주고 10불이라니....뭐 어쨌거나 사진 찍어 좋긴 했다만, 10불 손에 쥐어주니 미련없이 가더군.



자...이제 천천히 구경.
역시 더운 나라라서 식물들도 야리꾸리한 색깔들. 사이사이 보이는 거미줄과 거미들이 소름돋게도 하고.



Dunn's River Fall.
뭔가 했더니, 폭포 아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거다. 운동화도 안되고 물에서 신을 수 있는 얇은 신발을 신어야 하고 수영복은 필수. 바위를 밟고 올라가는거라 다칠 것도 어느정도는 예상해야 하는 절대 산책수준의 투어가 아니었다. 차례차례 줄서서 올라가길 기다리는 중. 사서 고생이 따로 없다. ㅋㅋ



제법 가파른 바위, 쏟아져내리는 물을 맞으며 올라간다. 혼자서는 힘드니 서로서로 손을 잡고 이끌어준다. 중간중간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긴하지만, 역시나 힘들거 같다. 이건 마치 극기훈련의 한장면을 보는듯하다. 그래도 시원해보이긴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면서 이걸 하던지. 아마도 담날 다리가 후들거릴거 같은데.



1차 관문 통과.
나이아가라폭포처럼 절벽 꼭대기에서 물이 떨어지는게 아니라서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다시 재정비해서 올라갈 준비.
직접 하라면 못하겠는데 ^^ 보고 있는건 정말 재밌었다.



폭포에서 바라본 바다.
해마다 방학때면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자마이카로 놀러온다고 한다. 물도 깨끗하고 물가도 비교적 싸서 학생들이 즐기기에 좋은 곳이라고.



한번도 코코넛을 먹어본적이 없다고 해서 - 맛없는 줄 알지만, 먹고나서 판단하라고 ^^ - 적극 장려(?)로 코코넛을 하나 사왔다. 한모금 빨고나서 하는 말이..
" 이거 왜 먹어? " ㅋㅋ


Dunn's River Express의 최대 단점은 총 5시간 30분이 소요가 되고 아침 10시 30분에 출발했는데도 점심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샌드위치를 가지고 내리려고 했는데, 배에서 음식 못가지고 내린다고 해서 빈몸으로 내렸더니, 배가 고파 못결딜 지경. 게다가 옆에서 배에서 삶은 달걀 가지고 온 사람들이 보이니 -.-아...우리가 너무 순진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가공품은 괜찮은거였는데. 그날따라 항상 들고다니던 초콜렛은 왜 두고 왔는지.

결국 입구에 있는 스낵코너에서 병에 든 콜라와 감자칩 몇개를 구입해 끼니를 때웠다. 로컬음식 먹다가 배탈이라도 날까 겁나서 시도도 안해봄. 담번엔 나도 꼭 삶은 달걀 가지고 와야겠다. ^^;;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줘서 아주 잘 보고 왔는데, 기사가 흑인이라 그런지 전부 흑인 가수들(비욘세, 마이클잭슨, 크리스브라운 등등) 뮤비만 나왔다. 흠....마이클잭슨은 흑인이 아닌가?? ^^;;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6 07:15

 

 

 


마태복음 연구

마태복음 안의 반의어 큰 자와 작은 자 연구

 

 

구기정

 

 

 

1. 서론

        마태복음 안에는 여러 반의어들이 많이 나타난다. 큰/작은, 악인/선인, 좋은 열매/나쁜열매 등.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 안의 모든 반의어들을 다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중에서 지상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인 μ?γα?(큰 자)와 μικρ??(작은 자) 용어들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10.42 ; 11.11 ; 18,6,10,14 ; 20.26 ; 23.11 ; 25.40,45). 이 대조 용어들과  그 함축 의미에 우리 연구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용어들은 신약뿐 아니라, 구약과 그 주변문학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의  마태복음 안에서 사용된 그 반의어가 예수와 관련해서 사용된 점에 대해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마 20:26-28), 주변 문학 안에서 사용된 용법과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이 반의어 연구는 부분적으로는 되어 왔지만1) , 전체적으로 또 특정한 점에 주목해서 살펴보는 것은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다루어질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는 고전문학과 구약에서 사용된 그 용어들의 용법을 간단히 살펴보고, 그 후에 마태복음 20장 17-28 본문을 관찰해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렇게 살펴 본 마태 본문과 다른 본문들에 나타난 용어들을 관련시켜 봄으로서 반의어의 의미를 고찰해 볼 것이다.    

2. 고전문학과 구약의 큰 자(μ?γα?) 작은 자(μικρ??)

2.1. 고전문학 안의 반의어

        고대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호머(Homer)의 작품에서부터 그 용어가 나타나는데, 거기서 그 용어는 계급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큰 자 용어에 관하여, 일리아드(Iliad) 서사시에서, "큰 신"(16.531 ; 19.410), "큰 헥토르"(2.816 ; 3.324), "큰 네스토르"(11.501), "큰 아이아스"(5.610) 등이 언급되어 있다. 오디세이(Odyssey)에서도 "큰 제우스"(9.411), "큰 유리토스"(8.226 ; 21.32), "큰 제피르"(14.458) 등이 나타난다. 이외에도 이 저자의 작품에서 그 용어는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빈번하게 나타난다.2) 특히 이 용어들은  신성, 지도자, 전사, 귀족 등에게 부여되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다른 고전주의 저자들에게서도 우리는 유사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큰 사람"(Platon, 법률 5.730d ; 5.732a), "큰 자 안티오커스"(Polybius, 4,2,7), "큰 그리스인들"(Sophocles, 아이아스, 225) 등에서 나타나는데, 이 용어 이해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상위의 계급적 신분에 그 용어가 부여되었다3).
        이와 달리, "작은 자" 용어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호머가 용어를 사용할 때 서사적 위엄을 축소시켜서 사용했기 때문일 수 있다.4) 그러나 적은 수가 출현함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의 의미는 명백하다. 분명히, 위에 언급된 큰 자 용어와 반대의 계급적 의미로써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작은 자 클리게네스"(Aristophanes, 개구리, 709), "작은 자"(Aristoteles, 시학, 58b 25-30), "티데는… 작았다"(Homer, 일리아드, 5,801). 예를 더 들지 않아도, 그 본질 상 보잘 것 없는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칭호인 것을 알 수 있다.5)
        전체적으로 보아, 고전 문학에서 큰/ 작은 용어들은 일반적, 계급적인 의미로 대조되어 사용된 것을 우리는 관찰할 수 있다. "큰 자"는 명예의 신분이고 반대로 "작은 자"는 보잘 것 없는 경멸을 받는 자에게 부여되었다.6)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신분의 상위 계층을 담당하는 자들(주로 신들, 왕들, 지도자들, 귀족들, 어린이에 대조된 어른들 역시 큰 자로 지칭된다)이 큰 자로 분류되고, 사회의 하위층의 신분이 작은 자로 분류된다.7)
        이 두 용어가 계급적 신분을 대조적으로 표시하고 있다면, 그들 사이 관계는 지배와 복종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참조, Platon, 국가론, 5.475a).

3. 구약의 용법

        구약 LXX 에서 메가스(μ?γα?) 용어는 모두 902 번 등장하는데 해당되는 용어는 보다 적다. 미크로스(Mικρ??) 용어도 총 161번 중 36번만 해당된다8).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해서 특히 중요한 구절들만 언급할 것이다. 먼저 창세기 25장 23절을 주목하면, 거기서 "큰 자"(LXX : με?ζων, MT : ??)와 "작은 자"(LXX : ?λ?σσονι, MT : ????)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 구절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 부터 나누이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리라 그리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로 번역되는데, 이 구절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구절은 종래 해석되던 대로, 에서보다 야곱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문장이 말하는 대로, 큰 사람이 작은 자를 섬기라(service)는 봉사적 부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오로지 이 구절들에만 있는 특이한 점들에 주목할 것이다.

        1. 문맥은 싸움과 다툼(LXX : σκιρτ?ω, MT : ???) 이다. 즉, 에서와 야곱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싸움을 말한다.9) 그러나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단순한 다툼으로 이해될 수 없고 범세계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즉, 민족으로 표현된 것처럼, 영역을 넓혀 보면, 모든 인간  관계들에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갈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그 두 사람은 아브라함의 "한 큰 나라"에 속하지만, 지배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 때문에 적대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고 그 나라는 둘로 쪼개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고자 큰 자가 작은 자를 살피고 배려하는 섬김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2. 작은 자에게 지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사실, "큰 자"는 에서였고 "작은 자"는 야곱이었다. 작은 자의 선택은 단순한 예정적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이 작은 자를 선택하신 것은 당시 큰 자 위주의 이방 계급주의적 관점을 뒤엎는 놀라운 사건이다(참조. 위 1:1).
        모든 사람들은 큰 자에게 우선적으로 달려 간다.10) 여기서 하나님이 작은 자, 즉, 야곱을 선택하므로 하나님 편의 가치는 작은 자에게 놓여지고, 이 작은 자가 그 중심이 된다. 이것은  구약에서 자신의 작음을 인정하는 낮춤과 겸손의 독특한 유대적 사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고(삿 6:15 ; 삼상 9:21 ; 삼상 15:17 등) 자신을 낮추는 작은 자에게 하나님 편의 고양(exaltation)이 주어진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참조. 왕상 3:10-14).
        3.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지고의 구조를 설립하신 특별한 의지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것은 작은 자를 배려하는 하나님의 긍휼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하다. 즉, 하나님의 백성에 두 그룹이 있다면, 하나는 다른 자보다 더 강할 것이고, 다른 자는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 분명하다. 이 두 그룹 중 약한 자가 경멸을 받고 천시를 받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한 자를 편 드시고 "큰 자"가 "약한 자"인 "작은 자"를 배려하고 섬겨야 한다는 구조를 만드신다. 이 구조는 에서와 야곱 사이에서 벌어진 살해 계획까지 치닫는 무거운 갈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싸움과 갈등으로 얼룩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설립하신 지고의 긍휼적 구조인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자 정체의 탁월성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택에 기인한다. 이스라엘의 선택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겨야 하는 구조에서 시작됐으므로 신분의 기능적인 차원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섬김의 구조를 실천해야 했다. 이러한 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 백성들 모두가 예외 없이 지켜야 되는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적 계급제도를 설립하였고 그들의 공동체적 관계는 깨어져서, 상위 신분은 하위 신분에 그들의 계급적 우위를 주장하고, 그 신분에 걸맞는 특권과 지배를 요구하게 되었다. 결국, 구약의 말미에 닿으면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모두 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타락의 본질은 큰 자가 작은 자를 배려하고 섬기는 관계가 아니라, 이방 계급적 관계로 돌아서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영역, 즉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의 관계들을 깨뜨렸다는 데 있다. 즉, 법과 질서가 파괴되고 지배와 종속관계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이끌어간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참조. 렘 5:5 등).

4. 마태복음 20:17-28의 그 용어

        우리가 다루는 용어가 마 10장, 11장, 18장에 나타난다. 그러나 20:17-28 11)의 본문이 기독론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26절에 "큰 자"(μ?γα?)와 "종"(δι?κονο?)의 용어가 대조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 대조가 설립된 이유를 본문을 통해 자세히 살펴 볼 것이다.

3. 1. 본문의 문맥

        마태복음서 저자가 이 본문을 이 장소에다 배치하게 된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선행하는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세례 요한에 뒤이어 시작한 예수 사역에서 예수가 한 첫 번째 요구는 회개와 나라의 도래였다(4.17). 이것은 하나님 통치 안에 들어오라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부름이다. 그러나 산상수훈을 통한 그 나라의 요구(5-7장)와 기적을 통한 신적 능력의 현시(8-9장)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메시아를 거절한다(11장). 11-16장을 살펴보아도 이스라엘은 계속 거절한다. 이스라엘의 거절을 확인한 후 예수는 그의 공동체를 설립한다(16.18). 예수는 어린이처럼 변화되어 하나님 통치 안에 들어와 살라고 요구하고 바로 이 "어린이-작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선포한다(18,3,4).12) 그러나 제자들은 어린이-작은 자를 경멸하고 계급주의를 만든다(18.6-14). 우리의 본문은 이러한  연속성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한다.
        근접 문맥으로 살펴볼 때, 본문에 선행하는 본문은 20:1-16으로, 이 본문 안에 공동체 안에 설립된 계급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예수의 교훈이 주어지고 있다. 갈등은 그들 신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첫째들과 신분의 하위를 차지하는 마지막 제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계급적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말한 것처럼, 본문이 계급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면, 이어지는 단편은 두 소경 이야기이다(20:29-34). 이 이야기의 본질은 무리가 사회 하층 계급들인 두 소경에게 던지는 멸시와 무시에 있다. 거기서 예수는 모두가 다 같이 자기를 따르기를 원하고 있다. 세 본문 전체가 그들 내부에 공통적으로 유사한 갈등 문제를 심층에서 말하고 있다.

3. 2. 본문 주석

        마태복음에서 반의어 용어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여러 번 나타난다. 그러나 그 용어가 기독론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는 본문은 20:17-28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세밀히 살펴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네 단락으로 본문의 구조를 구분해 볼 것이다.
3.2.1. 17-19절. 3.2.2. 20-23절. 3.2.3. 24-27절. 3.2.4. 28절.

3.2.1. 십자가와 예루살렘(17-19절)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17-19절(수난 예고)은 별도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알리는 수난 예고는 20:20-28의 주요 부분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13)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조는 좋은 서술 방향을 제공해 주며 공동체가 수난에 붙여지는 예수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이 연합되어 있다고 강조한다.14) 즉,  수난 예고는 따라 오는 다른 단락들에 영향을 미치며, 최종적으로 마지막 단락에서는(28절) 예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수난 예고가 예루살렘을 향한 길(17절)로 되어 있다는 것도 의미 있다.15) 이것은 예수와 함께 가는 제자들 역시, 최종착역인 예루살렘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길(17절)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3.2.2. 오는 나라 안의 오른쪽과 왼쪽 자리(20-23절)

        이 단락의 핵심은 마태 제자들이 우선권을 요구한 욕구에 있다(20-23절). 그 표현은 "이 나의 두 아들을 당신의 나라에서 하나는 당신의 오른쪽에 하나는 당신의 왼쪽에 앉도록 명령하소서"(21절)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오른쪽에 앉다"는 고전 문학과 유대 문학에서 명예의 자리를 뜻한다16). 정상적으로 중간이 가장 높은 자리이고, 그 다음 오른쪽, 그 후 왼쪽 자리들이다17). 이러한 용법에 비추어 보아, 좌우의 두 자리는 그 사회 최고 계층이 차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두 자리를 의미한다. 우리 본문이 언급하는 "당신의 나라의 오른쪽 왼쪽"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나라는 “오는 나라” 혹은 “천국”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그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경배하다"(20절)와 "아버지께서 예비하셨다"(23절)의 미래적 표현들을 보아 알 수 있다.
결국, 세베대 아들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이 오는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욕심을 보이고 있다(θ?λω, 21절). 사실, 오는 나라 신분 조건은 5.19에서 이미 언급되었었다. 그리고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의 최 측근 제자들로, 그들이 예수를 충실히 따랐다면, 오는 나라의 보좌에 앉을 자격이 있었다(19.28). 그럼에도 최고위 자리를 요구한다면, 이것은 지배하고자 하는 계급적 욕구와 관계가 깊다고 간주할 수 있다. 게다가, 리브가의 개입을 상기시키는(창세기 27.5-46)18), 세베대 아들들의 어머니의 등장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마태 예수는 끊임없이 자기를 따르기 위해 가족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8.21,22 ; 10.37 ; 19.29). 이것들을 보아, 그들은 공동체의 지도급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오는 나라의 가장 우선권도 차지했으면 하는 지배 계급에 대한 깊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본문은 이것을 계급적 욕구의 절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3.2.3. 공동체 안의 큰 자들(24-27절)

        세번째 단락에 μ?γα?/δι?κονο?(26절), πρ?το?/δο?λο?(27절) 쌍이 언급되어 있다. 27절은 26절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므로, 우리의 초점은 26절의 표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왜 마태 예수는 이 단락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면 너희의 종이 되라"(26절, μ?γα?)고 요구하는가 ? 이것은 마태 공동체에 큰 자가 되기를 욕구하는 자들과 실제로 큰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가? 게다가, 마태 예수는 "이방인들의 큰 자들처럼 하지 말라"(25절, μεγ?λοι, 복수형)고 요구한다. 여기서 신분에 관련된 이러한 언급들을 고려해보면, 우리는 마태 이야기 안에 세 그룹의 큰 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이방인의 큰 자들(20.25). 2) 마태 공동체 안의 큰 자들(26.27절 ; 23.11). 3) 유대교의 큰 자들(23장).19) 우리는 여기서 먼저 이방인의 큰 자들에 대해서 살펴본 후 마태 공동체의 큰 자들을 다룰 것이다.
        먼저, 이방인의 큰 자들을 언급한 것은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삶을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정체뿐 아니라 삶의 방식의 차이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미 전기한 II.1의 고전 문학에서, μ?γα?는 그 사회의 가장 높은 계급을 나타내고, μικρ??는 반대로 가장 낮은 신분을 나타낸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그들 사이 관계는 지배와 복종으로 특징지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단락의 마태 예수 역시 같은 점을 지적한다.
        25절의 μεγ?λοι는 이방 세계의 큰 자들을 지칭한다. 그 절은 본질적으로 이방 세계의 큰 자들과 지배받는 자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두 타입의 지도자가 등장한다. ?ρχων(통치자, 왕, 관리)과 μεγ?λοι(큰자들). 고전문학 안에 이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이 두 신분은 계급제도의 정상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20)  이 타입의 지도자들은 그 사회의 다양한 기능들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어떤 점에서 보면, 사회가 그러한 상황들과 지도적 신분들을 필요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능이 사회 유지에 불가결한 것이라면, 문제는 권위의 행사에 놓여진다. 고전주의의 분명한 용법에 비추어 보아, 이방계급주의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 구조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고, 상위와 지배권의 가치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5절이 이 상황을 잘 요약하고 있다. 즉, 이방 큰 자들의 행위는 κατακυριε?ω(지배하다, 다스리다, 정복하다) 와 κατεξουσι?ζω(통치하다, 억압하다, 권위를 행사하다)21)로 요약된다. 예수는 이 표현을 긍정적이22) 아닌,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게 될 때 결과적으로 두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이다. 즉, 두 계급(지배자들과 종속자들)과 두 관계(섬김받다/섬기다)이다. 이런 관계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은 섬김 받고 다른 사람들은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들 지배하기를 원하지 지배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없는 것처럼, 이런 관계 아래서 세상 안에 타락과 싸움과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참조. 18.7). 따라서 마태 예수는 두 계층 사이의 계급적 관계를 다루면서, 이방 세계의 특징들을 주의 깊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6절 초에서 예수는 잘못 세워져 있는 이방적 방식을 본받지 말라고 초대한다23)이절이 이방인들과 제자들 사이의 삶의 방식들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처럼, 마태 이야기 전체는 이러한 틀 안에서 전개된다. 마태에서, 이방인들과의 차이는 지역적이라기 보다 교리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이다(5.47 ; 6.7 ; 18.17). 전체적으로 보아, 삶의 방식이 문제이다. 마태 이야기에서 제자들은 이방인들과 경계 없는 근접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5.47 ; 10.18 ; 18.17  24.9,14). 당연히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6절에서, 예수가 "너희 중에는 그렇게 있어서 안 된다"고 할 때, 이것은 이방인들의 계급적 관계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본받지 말라는 권고이다. 사실 동시대의 요세푸스 작품 안에는, 이방 신분이든, 유대 신분이든, 수많은 계급의 소유자들이 폭발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계급주의를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열심히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방국가가 계급주의로 구조화 되어있는 것을 지적하고, 이 지배의 구조가 이방세계로 부터 마태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마태 공동체 안에도 큰 자들과 그 지배구조가 존재하는가 ? 24절에 따르면, 두 제자가 가장 높은 자리를 달라는 요구에 나머지 열(δ?κα)제자들은 분개한다(?γανακτ?ω). 이것은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그들 역시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24)그것으로 다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25). 게다가, 예수가 "너희는 안다", "너희 중에", "너희의"(참조. 25-27절)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모든 제자들을 겨누는 것이 틀림없다. 이것들이 드러내는 바는 마태 공동체가26) 예외 없이 이방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계급적 우선권을 깊이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26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이 μ?γα?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너희 중에 큰 자가 되고자 하면…”, 역시 27절,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면…”). 이 말은 마태공동체에 이미 "큰 자들"이 있다는 점에서만 가능하다. 이 자들이 존재한다면, 역시 "작은 자들"도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 인물들의 정체를 분명히 파악하려면, 우리는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고, 그 후 마태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두 쌍둥이 태아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창 25:22). 이것은 인간들에겐 원초적으로 지배자가 되기 위한 지배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인 것이다. 결국, 다툼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돌봐줘야 한다는 지고의 계획을 설립하신다(창 25:23). 에서는 이 구조를 거절했고, 하나님은 그의 긍휼에 따라 작은 자인 야곱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작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곧 잃어버리고 만다. 마태는 이러한 구약 전승의 관점을 물려받는다. 따라서 마태 예수는 다시금 메시아 공동체를 설립하고 어린이, 작은 자의 정체를 제자들에게 요구한다(18장). 그러나 마태 제자들 역시, 이스라엘과 다름없이, 점차로 그들의 정체를 잃어가고 계급주의를 설립하기 시작한다. 즉, 제자들 사이에, 이방인들처럼, "큰 자/작은 자"의 지배, 종속의 계급적 구분을 짓는 것이었다(참조. 특히, 19-20장).
        모두가 큰 자가 되고 싶어하는 큰 욕구 앞에, 예수는 "큰 자가 되길 원하면 너희의 종이 되어라"(26절)고 초대한다. 여기서, "너희의"(?μ?ν)의 표현은 누구를 지시하는가 ? 그 용어 "너희"는 전체 제자들을 지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마태에서, "12" 또는 "12제자들", 혹은 단순히 "제자들"은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27) 이들은 예수 메시아를 고백하고(16.16), "어린이-작은 자"로 변화되어 신적 통치 안에 들어왔던 제자들을 가르킨다(18장). 그렇다면, "너희의"는 분명 마태공동체의 "작은 자들"을 가르킨다. 이 말을 종합하면, "너희 중에 큰 자가 되길 원하면 작은 자들의 종이 되어라"이다. 이 말은 창 25:23에서 표명된 하나님의 요구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섬기다" 용어가 사용된 27절을 연결 시켜보면, 그 용어들은 LXX과 동일하고, MT와도 의미론적으로 같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의 차례에, 하나님에 이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지고의 구조를 마태 공동체에 설립하고 있는 것이다.

3.2.4. Imitatio Christi(28절)

        그러면, 왜 마태예수는 "종"(δι?κονο?, 26절)과 "노예"(δο?λο?, 27절)가 되라고 요구하는가 ? 이 부름은 고대 사회에서 잘 이해될 수 없는 말이다. 그리스인들은 일반적으로 노예의 삶을 불행한 삶이나28) 멍에 아래 삶으로29) 알았다. 쿰란 공동체에는 작은 자가 큰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1QS 6.2). 예수의 부름은 동시대인들의 사고와 완전히 다르다. 일상성에서 벗어난 이 부름의 참된 의미는 제자들의 계급적 욕구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나 큰 자가 되고픈 욕구가 있으므로 그로인해 무겁고 긴 갈등이 생겨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이런 끈질긴 우선권 욕구를 끝장내기 위해서 마태 예수는 아주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이 방식은 구약과 다르고, 이방 세계에도 없던 것이다. 즉, 예수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타인에게 종과 노예처럼 내어주며, 그러한 방식의 삶을 제자들도 살도록 모델로 구조화한다(28절, ?σπερ30)). 이 방식은 많은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내어준 예수 대속의 참다운 효과를 맛볼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 요청은, 그 어느 것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지상 예수의 삶과 죽음의 참된 역사성위에 설립되어 있다.

5. 본문의 기초

        어떤 동기 아래에서 이 본문의 반의어가 태어났는가 ? 먼저 우리는 어떤 가설들을 선험적으로 취해야 한다: 마태공동체의 내적 분쟁31)과 유대교와의 단절의 상황32)이 상황들은 마태 공동체의 현 상황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마태 공동체 외부 갈등 이론(유대교에 의한 박해와 이방인들에 의한 박해가설)과33) 인트라 무로스(intra-muros) 가설(랍비 유대교 안에 살고 있는 마태 공동체)은34) 지금까지 우리가 언급해온 상황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배제할 것이다. 우리는 1세기 교회 관리들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논쟁의 반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35) 혹은,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지역교회들 사이에 생겨난 우선권의 다툼으로 볼 수도 있다.36) 아니면, 제도화된 교회의 비판으로 볼 수도 있다37)이 견해들은 모두 마태공동체 내부의 문제들에 관계하기 때문에 교회론적 관심이 그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본문은 이방세계와 대조적 삶을 살라고 요구하므로 도덕적, 윤리적 관심도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이 언급은 마태 공동체가 이방인들처럼 계급주의적 욕구에 문을 열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공동체가 점점 메시아적 공동체의 정체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우려할 상황은 이미 이방 세계의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마태공동체의 상황이 우려할 만하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이스라엘 공동체도 작은 자 공동체에서 시작하였지만, 그들이 계급주의로 돌아섰다면, 마태 공동체 역시 그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이방적 계급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본문은 모든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계급적 욕구들을 예수 메시아의 삶과 죽음의 동기 없이는 해결될 수 없음을 마태 저자가 깨달았다는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예수 메시아의 삶과 죽음의 모델에서 태어난다. 예수는 종말론적 삶을 사는 그의 메시야 공동체가 그의 삶과 죽음으로 주조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예수가 그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이 방식은 이방세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고, 구약의 것과도 다르다. 랍비 문서에 유사한 문장이 있지만("이 세상에서 토라 연구를 위하여 종이 되는 자는 오는 세상에서 해방된다", Baba Mezia 85b), 이것은 그와 같은 경우가 아니다. 토라 연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천이 중요한 것을 마태 예수는 자주 언급했고(5.19 ; 19,17 ; 22.36-40), 인간 관계의 평화는 큰 자가 작은 자를 돌보는 관계로 부터만 가능한 것을 예수는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의 삶과 죽음의 모델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싸움, 다툼, 갈등들에 끝을 내기 원했던 지고의 메시아이다.38)
        그러므로 당시 마태 공동체 내부에 심각한 갈등들, 다툼들,39) 계급주의가 존재했을 것이다. 분명 계급주의적 욕구는 이방 사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태 공동체 가까이 공존하는 이방인들의 존재를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곁에 얌니아 이후 그의 길을 가고 있었던 랍비 유대교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태 공동체는 그들의 삶과 신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40)  1세기말 경(85년경), 시리아 안디옥의 역사적 환경과 그 주변의 발달된 도시 환경은 이러한 마태 환경에 다소 일치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역사적 순서 상, 메갈로이(μεγ?λοι)는 예루살렘에서 도피한 팔레스틴 유대 기독교인과 디아스포라의 유대 기독교인이 차지했을 것이다. 이들이 마태 공동체를 이끌어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 기독교인이 점차로 많아졌을 것이고, 이들은 유대 기독교인에 비해서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신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주로 교리 문답자들, 최근 개종자들, 가난한 자들, 무식한 자들, 병자들, 굶주린 자들, 즉,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신분의 기독교인들이었을 것이다. 이 기독교인들은 유대 기독교인들에 의해 경멸을 받았을 것이고, 복종적, 예속적 관계 아래 있었을 것이다.

6. 마태복음 안의 다른 본문들

        여기에서 다룰 본문은, 지상 계급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큰 자, 작은 자(μ?γα?/μικρ??)가 나타나는 다른 마태의 본문들과 관계가 있다. 이 용어들은 개별적으로 연구해서는 안 되고, 상호 연관성 속에서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먼저, 10장 42에서 작은 자(μικρ??) 용어가 나온다. 이 용어는 지상 계급 중 첫 번째 언급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다른 용법들과 차이가 있다. 이 인물의 정체가 무엇인가 ?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기원 자체가 작은 자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정체는 어느 정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전달되어 내려오는데, 10장의 주된 수신자가 역사적 12제자들임을 고려할 때 이들의 기원 정체가 분명 "작은 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18장에 가서야 만들어지는 작은 자와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언급된 "작은 자"는, 그 절이 언급하는 것처럼, 구약 전승의 위대한 인물들인 "선지자와 의인"(41절)과 같은 반열에 서있는 구약적 작은 자의 위엄을 갖춘 자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11장 11절에서는 지상의 큰 자(με?ζων)를 언급한다. 예수의 선포를 수용하고 거절하는 문맥에서 읽어야 한다. 즉,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선구적 사역을 믿지 못하고, 계급주의만 추구하는 그 백성에게, 예수가 요한이란 인물의 진정성을 말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예수는 고양적 용법을 사용하여 요한 찬사를 만든다(참조. 위의 1.2.2). 구약에서 모세, 여호수아(출 11.3 ; 참조, 시락46.1)에게 고양(exaltation)이 부여된 것처럼, 세례 요한 역시 큰 자로 불려진다. 즉, 하나님(예수) 편에서, 세례 요한에게 진정한 지상 계급의 위대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41)

        셋째, 18:6,10:14의 작은 자(μικρ??)는 어린이와 동등물이다42). 어린이의 특성은 작고 약하고 무지하고 의존적이다43)부모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런 특징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미크로스(μικρ??)는 어린이처럼 변화되고, 자신을 낮추는 제자들에게 부여되는 칭호이다. 즉, 어린이의 겸손과 낮춤의 특징을 갖고 있는 제자들은 예외 없이 작은 자들로 간주될 수 있다. 이들은 구약의 작은 자의 연속성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44)그러나 다른 이 본문에서부터 진정한 기독교인 정체를 가진 작은 자가 시작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어쨌든 이 메시야의 작은 자 공동체 안으로 점차 이방 계급주의가 들어오고, 계급적 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 23:11에서 큰 자(με?ζων)가 등장한다. 23장 전체는 이스라엘의 타락 즉, 율법에 불복족하고 공동체 내에 계급주의를 증식시킨 것에 대한 결정적 평결이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주장한 가설이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유대 공동체가 계급주의(참조. 4-7절)로 말미암아 공동체적 형제애 관계가 무너졌다면, 마태 공동체는 그러한 전철을 피해야 한다(참조. 8-12절).45) 이미 언급한 것처럼(20:26), 마태 공동체 안에 메이존(με?ζων)의 신분이 있다면, 그는 섬기고 배려하는 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메시아가 그의 종말론적 공동체에 주는 최후 경고이다.

        다섯째, 25:40,45에 가장 작은 자(?λ?χιστο?)가 나타난다. 가장 작은 자는 참으로 특이한데, 그것은 작은 자들보다 더 작은 자들(참조. 최상급)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미 공동체 안에 계급주의가 설립되어 있으므로 제자들 중에 가장 작은 자가 나타날 수 있게 된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예수는 이 가장 작은 자(?λ?χιστοι)를 배려하는 자가 나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으로 간주한다. 창세로 부터 예정된 자는, 바로 천하고, 낮은 형제를 보살펴 준 제자를 가르킨다는 것이다. 인생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돌보라는 예수의 권고이다.

7.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안의 그 용어들

        첫째,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그 용어들을 각각 4번과 9번 사용한다.46)마가복음 용어들의 전체 용법은 대략 마태복음의 것과 같다. 그 중, 관찰할 만한 중요한 본문은, 마가본문 10:32-45인데, 전체적인 틀과 인물들은 마태나 마가나 동일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마태복음 20:17-28 47)). 이방 공동체내의 계급적 용어처럼 (42절 μεγ?λοι, 그리고 역시 6:21 ο? μεγιστ?νε?48)), 10:43의 메가스(μ?γα?)는 마태 공동체안의 가장 높은 계급을 말한다. 이 용어는 이미 막 9:34에서 계급적 의미로 언급 되었었다. 마가복음의 본문들은 그 문맥이 다툼에서 기인되었다고 마태보다 더 분명히 표현한다(9:34 ; 10:41). 마가의 본문은 마태복음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관찰한 결과와 다른 것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누가복음 안에 나타난 전체 용어를 고려해 본 결과(9번)49)누가 기자의 용법 역시 마태나 마가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 우리가 다룬 마태의 병행 본문인 눅  22:24-30(//마가10.32-45)은 기독론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본문에서 그 용어는 3번 나타난다. 이 본문은 제자들이 모두 성공 욕구와 영광 욕구에 휩싸여 있고(26절), 우선권을 쟁취하려고 서로 싸우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φιλονεικ?α).50) 사실, 누가에 따르면, 제자들은 이미 이전에도 우선권 때문에 서로 싸웠었다(9.46). 9장의 싸움은 22장까지 연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그 이야기를 큰 자가 되기 위한 다툼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51) 결국, 누가복음서의 예수 역시 그의 제자들이 이방인들처럼 계급적 욕구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고(25절), 그 자신의 삶을 따라, 제자들도 남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다(27절).  

8. 마태복음 20:17-28의 신학적 의미

        우리가 다룬 용어는 마태 저자의 중요한 신학적 관점을 드러낸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서 역시 마태복음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이야기가 구약 배경뿐 아니라,  지상 예수의 삶과 죽음에 비추어 해석되고 편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본문의 핵심은 섬김이고, 이 섬김의 요청은 마태 공동체에 윤리적, 도덕적 실천을 복돋우는 부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윤리적 의미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윤리와 도덕은 실천의 요구에 내재적 한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론적 의미가 역시 게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 메시아의 삶과 죽음의 모델이 강하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메시야가 세상에 온 목적은 섬김과 돌봄의 모범을 통해서, 세상의 잘못된 계급적 관계를 그의 의지대로 다시 세우기를 원한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에서, 큰 자가 작은 자를 돌보는 배려의 관계로 변화된 것이 관찰되었다.

몽펠리에 대학교 Th. D.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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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연구의 초점은 마태복음안의 지상 계급을 나타내는 반의어 μ?γα?/μικρ??의 배경과 의미에 놓여있다.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고전 문학과 유대문학, 특히 구약안에 나타난 개념들을 먼저 찾아 보았다. 호머부터 시작되는 고전문학에서 μ?γα?(큰자)는 계급구조의 상위층을 차지하는 높은 신분이라면, μικρ??(작은자)는 그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두 범주의 관계는 계급주의적이며, 작은자가 큰자를 섬기는 노예적 구조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약(LXX과 MT)에서 하나님은 이 구조를 바꾸시는데, 이방 세계와 달리, 구약적 개념은 큰자가 작은 자를 섬겨야(service) 한다는 것이다(창25.23). 이스라엘이 이 구조를 따르지 않자, 예수는 그의 삶과 죽음을 모델로 하여 다시 이 지고의 아름다운 구조를 재 설립한다. 마태복음 20.26(참조, 23.11)이 말하는 것처럼 μ?γα?(큰자)가 μικρ??(작은자)를 섬겨야(service)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마태복음의 기독론의 가장 독특한 점으로 드러난다. 신약은 모두 같은 관점을 갖고 있는데, 특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같은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1) 이 용어들의 연구를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 O. MICHEL, μικρ??, TDNT, IV, p.648-659. S. L'EGASSE, Jesus et l'enfant, "'enfants", "petits" et "simples" dans la tradition synoptique, EB, Paris : Gabalda, 1969. F. THIELE, μικρ??, DNT, II, p.427-429. A.C. WIRE, "L'accueil des petits. Une etude de la theologie de Matthieu", Reconnaissance a Suzanne de Dietrich. Cahiers bibliques, 1971, hors-serie, p.94-108. J. LAMBRECHT, "The parousia discourse", L'evangile selon Matthieu. Redaction et theologie, 1972, p.332-339. G. BARTH, "Matthew's understanding of the Law", Tradition and Interpretation in Matthieu, G. BORNKAMM, G. BARTH, H. J. HELD, London : SCM, 1982, p.121-125. S.W. GRAY, The least of my brothers. Mt 25 : 31-46. A history of interpretation, SBL (114), 1989. D.B. PEABODY, "Repeated Language in Matthew : Clues to the Order and composition of Luke and Mark", SBL, 1991, p.667-686. D.D. KUPP, Matthew? Emmanuel: Divine Presence and God's People in the First Gospel, SNTS, 1996, p.176-200. E. CUVILLIER, "Justes et petits chez Matthieu. L'interpretation du lecteur a la croisees chemins", ETR, 1997/3, p.345-364. W. GRUNDMANN, μ?γα?, TDNT, IV, p.529-544. F. THIELE, μ?γα?,  DNT, II, p.424-427. G. BONNEAU, Strategies redactionnelles et fonctions communautaires de l'evangile de Marc, EB, Paris : Gabalda, 2001, p.227-320.
2) 몇가지 예로, 일리아드 : 2.134 ; 2.412 ; 2.816 ; 3.324 ; 5.610 ; 5.721 ; 6.5 ; 16.531 ; 19.410. 오디세이 : 9.26 ; 9.411 ; 11.255 ; 11.268 ; 11.604등을 보라.
3) 고전문학안의 실례를 더 든다면, Aeschylus, Supplices, 1053. Persae, 24. Herodotus, The Histories, p.I.188.Polybius, 18,35,9 ; 4.2.7. Euripides, Electra, 405등을 보라.
4) G.P. SHIPP, Studies in the Language of Homer, p.196-197 : ''μικρ?? (σμικρ??) is very rare in Homer, as being an affective word lacking in epic dignity, the idea being commonly expressed by ?λ?γο?, τυθ??. The avoidance of the word is an interesting paralle to the well-known absence of diminutives in Homer''.
5) 파피루스등에 나타나는 다른 자료에 관해서는 O. MICHEL, μικρ??,TDNT, IV, p.649를 보라.
6) O. MICHEL, μικρ??,TDNT, IV, p.652.
7) W. GRUNDMANN, μ?γα?, TDNT, IV, p.529. O. MICHEL, μικρ??,TDNT, IV, p.652.
8) 이 용어들에 관하여, E. HATCH & H.A. REDPATH, A Concordance to the Septuagint, II, p.902-906와 926-927를 참조하라.
9) 다음 저자들도 같은 관점으로 본다 : H. GUNKEL, Genesis, tr. M.E. BIDDLE, p.288. G. WENHAM, Genesis 16-50, p.175. J.W. WEVERS, LXX, p.175. WESTERMANN, Genesis 12-36, p.413.
10) 여기서 장자권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장자에게 아버지의 재산권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물려주는 장자권은 신적 기원이 아닌 당시 고대 근동의 관습였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중국, 에스키모, 오스트랄리아등지에서 발견되는 관습였었다 (J. HENNINGER, "La primogeniture en ethnologie", p.462이하).
11) 이 본문에 대한 참고 문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언급할 것이다 :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161-192. 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II, p.79-103. U. LUZ, Matthew 8-20, p.539-547.  
12) 이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 18장(“교회 연설”)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한다면, 이 공동체 연설은, 구약 작은자처럼, 기독교인 “어린이-작은자”의 탄생과 그러한 공동체의 설립을 알리는 중요한 본문이다. 아래 IV.c를 참조하라.
13) 보통 저자들은 20.17-19 과 20.20-28 단편을 연결시키지 않는다 (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II, p.83이하. P. BONNARD, Matthieu, p.293,295. D. HILL, Matthew, p.288. C.S. KEENER, Matthew, p.484-485. U. LUZ, Matthew 8-20, p.539,541. F.W. BEARE, Matthew, p.404. R.T. FRANCE, Matthieu, II, p.99). 이 구조의 단점은 예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부터 다음 저자들은 둘을 밀접히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161-163. Matthew and the Margins, p.399. J. RADERMAKERS, Matthieu, II, p.255,264. D.J. HARRINGTON, Matthew, p.288. R. GUNDRY, Matthew, p.401 역시 그 밀접한 관계성을 설명한다.
14)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163-165.
15) 이 구절("예루살렘에 오르자")에서 예전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특히 P. BONNARD, Matthieu, p.294를 보라. 그리고 J. SCHNEIDER, ?ναβα?νω, TDNT, I, p.519-522와 H. SCHULTZ, ?ερουσαλ?μ, DNT, II, p.324-329를 참고하라.
16) W. GRUNDMANN, δεξι??, TDNT, II, p.38.
17) F. JOSEPHE, Les Antiquites Judaiques, 6.235 (참조. 7.31). 랍비문서도 같은 내용을 언급한다 : M. Yom. 3.9 ; B. ibid. 37a ; T. Sanh. 8.1 ; Mid. Ps.18(79b). S.T. LACHS, A Rabbinic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p.337를 보라.
18) 이 점에 대해서 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II, p.87를 참조하라.
19) 유대교의 큰자들에 대해서 다루려면 23장을 상세히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논의가 확대되므로 생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이글에서 여러번 작은자 공동체인 이스라엘안에 들어온 이방 계급구조를 설명했으므로 이와 같은 선상에서 23장의 유대 계급구조를 이해하면 족할것이다.
20) 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II, p.83 : "synonymous parallelism".
21) A. BAILLY, Dictionnaire Grec-Francais, p.1038,1063.
22) 이 두 용어에 대해 주석가들은 자주 긍정적 의미를 생각한다(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II, p.93.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170. P. BONNARD, Matthieu, p.297. R.T. FRANCE, Matthieu, II, p.101). 그러나 마태 예수가 부정적 의미를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수에 따르면, 지도자들(즉, 왕들, 고관들, 큰자들)의 신분은 지배하는데 있지 않다, 그러나 섬기는데 있다 (20.26-28).
23) 참조. D.C. SIM, "Matthew and the Gentiles", p.28. 이 저자가 다룬 본문들이 5.46-47 ; 6.31-32 ; 6.7-8 ; 18.15-17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우리의 것과 동일하다.
24) 제자들 사이의 “우선권 다툼”은 다음 학자들에게서 나탄난다 : D.A. HAGNER, Matthew 14-28, p.581. 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II, p.92. U. LUZ, Matthew 8-20, p.544. C.S. KEENER, Matthew, p.486 : "competition for status among peers was important in their culture". 특히 W.G. THOMSON, Matthew's Advice의 논문안에 마태 공동체 내부의 갈등적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다 .
25) 특히 막 9.33-37 ; 10.32-45 ; 눅 9.46-47 ; 22.24-30 등은 제자들 사이의 다툼으로 소개한다.
26) 이 본문의 "형제들"용어 (?δελφο?, 24절)는 마태에 고유하다. 병행구를 보라 : 막 10.41 ("야고보와 요한"). 그러나 누가복음(22.24-30)안에는 해당 용어가 없다.
27) M.J. WILKINS, The concept of disciple in Matthew's Gospel, p.143. E. CUVILLIER, "Matthieu et le judaisme", p.46.
28)  PLATON, Gorgias, 491e.
29) SOPHOCLES, Trachiniac, 302. 그레코-로마시대의 노예의 최하층 신분에 대하여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172-189를 보라.
30) 이 용어에 기독론적 모방의 의미가 있다. U. LUZ, Matthew 8-20, p.546.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171. 참조 : 마가 10.45(γ?ρ, 원인 강조)와 누가 22.27(δ?, 대조의 강조).
31) G.D. KILPATRICK, The origins, p.127. G. BARTH, "Matthew's understanding", p.75-76. W.C. THOMPSON, Matthew's Advice, p.261. J. ZUMSTEIN, "Matthieu, l'avocat", p.115-118.
32) BORNKAMM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 가설(즉, 유대교 밖의 상황)을 지지한다 : G. BORNKAMM, "The Authority", p.88. D. MARGUERAT, Le jugement, p.239-302. J. ZUMSTEIN, Matthieu : Le theologien, p.23. E. SCHWEIZER, "Matthew's Church", p.149. E. CUVILLIER, "Matthieu et le judaisme", p.53-54. U. LUZ, Matthew 1-7, p.88. "L'evangeliste Matthieu", p.91. G.N. STANTON, A Gospel for a new people, p.97, 113-169. "Introduction : Matthew's Gospel", p.18-19. J.D. KINGSBURY, Matthew as story, p.154-155.
33) 유대교와 이방인들에 의한 박해의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학자들이 이 견해를 지지한다 : G.D. KILPATRICK, The origins, p. 109-112. U. LUZ, “Le probleme historique et theologique”, p.127-150.  G.N. STANTON, A Gospel for a new people, p.379-391. E-J. VLEDDER, Conflict, p.160. 그러나 D.R.A. HARE, Jewish Persecution, p.146-166는 기독교인 선교사들만이 박해를 받았다고 하며, 마태 복음안의 박해는 과거 사실이라고 반박한다. HARE의 이 견해에 대해 G.N. STANTON 역시 반대한다(A Gospel for a new people, p.159).
34) intra-muros 가설에 대해 : G. BORNKAMM, "End-expectation", p.20. G.D. KILPATRICK, The Origins, p.111,118,122. A.J. SALDARINI, "Boundaries and polemics", p.239-253. W.D. DAVIES & D.C. ALLISON, Matthew, I, p.22-24. P.S. ALEXANDER, "The Parting of the Ways", p.1-25. D.C. SIM, Matthew and christian Judaisme, p.5-6. E.-J. VLEDDER, "Conflict", p.141-167.  
35) 이것은 P. BONNARD, Matthieu, p.297의 가설이다. D. HILL, The Gospel of Matthew, p.288 역시 이 가설을 따른다.
36) J. RADERMAKERS, Matthieu, II, p.264.
37) U. LUZ, Matthew 8-20, p.544-547.
38) 사 9.5-7.
39) 마태의 상황은 다소간에 W.G. THOMPSON이 제안한 가설에 가까울 것이다. Matthew's advice, p.255-266, 특히 p.263 : "Scandal resulting in mutual betrayal and hatred (24,10), false-prophets (24,11) and widespread lawlessness (24,12) can easily cause a disciple to wander from the community... Peter's question (18,21-35) about his attitude toward a brother who repeatedly sinned against him was particularly meaningful to a divided community which was experiencing mutual betrayal and hatred (24,10) and in which love was growing cold (24,12)".
40) 참조. E. TROCME, ''Le Christianisme primitif'', p.16. 이 저자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는 그의 고유한 신앙, 고유한 예배, 고유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저자에 있어 이 사실은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분리를 뜻하지 않는다.
41) 이 본문안에 언급되는, “지상 큰자(με?ζων)”로서의 세례 요한과 “천국 작은자(μικρ?τερο?)”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해석이 나뉘어져 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고, 다만 세례 요한을, 구약에서 처럼, 지상 큰자로 언급하는 고양적 용법으로 간주한다(참조. 출 11,3).  
42) S. LEGASSE, Jesus et l'enfant, p.35. E. CUVILLIER, "Juste et petits chez Matthieu", p.357.
43) E. CUVILLIER, "Juste et petits chez Matthieu", p.357이하. W. CARTER, Households and Discipleship, p.95이하.
44) 특히 삿 6.15 ; 삼상 15.17 ; 왕상 3.7등을 보라.
45) 8절 이하가 마태 공동체를 겨눈다는 것은 수신자의 변화에서 나타난다. 많은 학자들이 이점에 동의한다 : R. GUNDRY, Matthew. p.457. P. BONNARD, L´evangile selon Saint Matthieu, p.336. W.D. DAVIES - D.C. ALLISON,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III, p.265. R.T. FRANCE, L'evangile de Matthieu, II, p.136. J. RADERMAKERS, Au fil de l'evangile selon saint Matthieu, p.288. D.A. HAGNER, Matthew 14-28, p.658.
46) 지상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는 마가복음 6.21(μεγιστ?σιν) ; 9.34(με?ζων) ; 10.42(μεγ?λοι),43(μ?γα?)에 나타난다. 그외의 다른 구절들은 우리의 논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므로 생략할 것이다.      
47) 누가복음 역시 동일하다. 누가 22.24-30을 보라.    
48) 이 용어는 "국가의 큰자들, 첫번째들"을 의미한다. A. BAILLY, Dictionnaire Grec-Francqis, p.1236.
49) 누가복음 1.15(μ?γα?),32(μ?γα?) ; 7.16(μ?γα?),28(με?ζων, 반복) ; 9.46(με?ζων),48(με?ζων) ; 22.24(με?ζων),26(με?ζων),27(με?ζων)에 나타난다. 그 용어가 나타나지만, 관련되지 않는 구절들은 생략했다.
50) A. PLUMMER, The Gospel According to S. Luke, p.501. I.H. MARSHALL, The Gospel of Luke, p.811. 여기서 φιλονεικ?α용어(신약에 한번 나타남)는 “dispute, strife” (BAGD, p.860)을 의미한다.
51) 특히 다툼은 막 9.33-37 ; 10.32-45 ; 눅 9.46-47 ; 22.24-30등에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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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요한)의 인물 묘사에 나타난 누가의 의도
신약, 공관복음신학

2009/05/08 11:32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67191981

마가(요한)의 인물 묘사에 나타난 누가의 의도

 

윤철원(서울신대, 신약학)

 

 

이 글은 2004년 10월 21일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마가[요한]의 인물 묘사에 나타난 누가의 의도
Luke's literary intention disclosed by the characterization of Mark[John]


I. 서론

1.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사도행전에서 마가[요한] 1)에 대하여 언급하는 구절들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복음서 읽기, 특히 마가복음서 해석과는 다르게, 소외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서 본문을 읽는 방법은 사도행전 해석에서 드문 경우지만 의미 있는 작업으로 시도해볼 만하다. 이와 더불어 본 작업이 목적하는 바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 의도가 해석 과정에서 사라져버렸거나, 묵살될 수 있는 점을 살려내서 본문이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래 의미를 재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읽기는 성서를 ‘거꾸로 읽어서’(reverse reading) 본문의 의도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읽기의 산물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읽기와는 차별적으로 ‘거꾸로 읽기’를 하다보면 그 가운데서 저자가 심층적으로 이야기하고자 의도한 그 무언가가 녹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2) 필자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오늘의 성서 읽기가 너무 전통적이거나 관례적인 습성에 고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읽기를 지향(志向)하지 못하고 있다는 성찰의 결론이다.3) 역사적으로 개신교회(The Protestant Church)는 언제나 새롭게 개혁하는 교회를 지향하고,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게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할 숙명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성서 읽기가 새로워지기 전에 과연 이런 이상(理想)이 실현될 수 있을까? 바른 성서 읽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러한 기대는 허상(虛像)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서를 보다 철저히 읽기에 집중할 시기를 맞이했으며, 이러한 염려는 목회 현장의 선포자들에게 더 긴급한 과제로 보인다. 즉, 본 연구의 초점은 심층적인 읽기가 발휘하는 본문의 잠재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먼저 누가가 묘사하는 문학적인 특징을 살펴보고, 우리의 주된 관심인 마가[요한]에 대해서 분석해보자.

2. 누가의 문학 기법

        누가복음서와 함께 사도행전에는 다양한 모습을 띠면서 등장하는 조연급 인물들이 많다. 사도행전을 보면, 맛디아 같은 신출내기 사도는 선택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등장이 왜 필요할까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물론 신학적인 이유와 저자가 그러한 사건을 기록하는 의도가 분명하지만 말이다. 또한 불행한 부부 아나니아와 삽비라든지(5:1-10), 바리새파의 수장격인 가말리엘(5:34-39), 설교를 듣던 중 졸다 떨어져 죽었지만 다시 살아난 유두고(20:9-12) 등으로 이어지는 여러 명의 조연급 배우들의 역할은 그리 무게를 두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등장인물들이다. 그렇지만 마가[요한]은 이러한 조연들 가운데 한 인물이지만, 내러티브에서 그의 역할은 실제로 중요하며 예외적인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가 야기한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의 단단했던 연대(連帶)와 협력(協力)의 관계가 와해되기 때문이다.
        마가[요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주석서들을 통해서 이미 선행 연구가 나름대로 진행되었지만, 한국의 신약학자 가운데는 유상현 교수가 그의 인물됨에 대해서 가장 세밀하게 연구한 것 같고, 충분한 설명을 첨가했다.4) 그렇지만 본 논문에서는 전적으로 내러티브 읽기의 차원에서 마가[요한]을 집중 탐구할 것이다. 사도행전의 내러티브 전개에서 마가[요한]이란 인물이 결코 가볍게 취급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서 몇 차례 등장해서 결국은 바울과 바나바의 팀 사역을 깨고 마는 마가[요한]을 주목하여 분석하는 일이다. 누가가 기록한 본문은 수사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의 본문은 수사학적 방법을 통해서 본문을 읽는 (원)독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저자의 이러한 문학적 기술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이러한 의미는 저자의 수사학적 능력과 독자(들)의 해석학적 통찰이라는 상호작용으로 확인된다.5)
        사도행전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마가[요한]에 대해서 분석할 때, 먼저 숙지할 사항은 누가가 앞으로 전개될 일들에 대해서 미리 암시하는 기법을 흔히 활용한다는 점이다.6) 필자의 판단으로, 누가의 이러한 특징은 누가-행전을 코텍스트(co-text)적인 관점으로 읽어갈 때 더욱 더 분명해질 것이다.7) 우리는 누가복음서의 전반부에서부터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수의 고향 나사렛의 사람들은 그가 가버나움에서 사역한 내용이 묘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들을 그의 고향에서도 행하라고 다그친다(눅 4:23). 그렇지만 독자들은 가버나움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전혀 듣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경우는 연이어 등장하는 ‘시몬의 장모’라는 언급에도 불구하고(눅 4:38), 시몬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누가는 이런 장치를 활용하여 독자들이 시몬을 만날 수 있게 미리 준비시키는데(5장에서 시몬은 예수의 제자로 선택된다), 이것이 누가의 문학적 전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마가[요한]의 등장도 너무나 유사하다.8) 헤롯 아그립바 1세의 감금으로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석방된 베드로가 마가[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마가[요한]의 이름이 언급될 뿐이다(행 12:12). 그렇지만 누가의 문학적 기교와 전략을 파악하는 고급 독자들이라면, 마가[요한]이 언급되는 장면에서 저자가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마가[요한]을 통해서 묘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본격적으로 등장할 한 인물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부터 사도행전까지를 연이어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자 무엇인가를 농염하게 미리 발설하는 누가의 기술적 특징을 감지하고도 남게 될 것이다.

II. 마가[요한]과 그의 인물묘사에 대한 분석

        앞으로 살펴볼 내용처럼, 마가[요한]과 그의 이름은 사도행전에서 다섯 번 언급된다(12:12, 25; 13:5, 13; 15:37). 이 가운데는 그가 직접 등장하거나, 어느 경우에는 그의 이름만 거명될 때도 있다. 그 중에는 바나바와 사울과 함께 한 선교 여정에서 이탈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로서 ‘신약성서 속에서의 요나’로 불릴 정도로 아주 특별하게 묘사되고 있다. 왜 누가는 이처럼 사도행전에서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할까 궁금하다. 지금부터 마가[요한]의 이러한 모습을 주목하면서 누가의 의도를 찾아보자.

1. 예루살렘의 여성 지도자 마리아와 마가[요한](행 12:12)

        마가[요한]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베드로가 ‘마가라 하는 요한의 모친 마리아의 집(? ο?κ?α τ?? Μαρ?α? τ?? μητρ?? ?ω?ννου το? ?πικαλουμ?νου Μ?ρκου)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고 언급되는 장면에서 맨 처음 등장한다. 우리는 마가[요한]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그가 갑자기 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행12:6-12). 그렇지만 우리는 12장 12절에서마가[요한]의 가족 관계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한다.간접적으로우리는그의모친이유복한 예루살렘 교회의 여성인 것만알 수 있을 뿐이다. 마리아의 집(ο?κ?α)은로데라는하녀(12:13)가있고,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수 있으며,그집에접근하는방법으로대문(πυλ?ν,12:13)을이용했을 만큼 큰 규모였다.9) 여성들은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들은 물론 예수의 사역에서도 돋보이는 협력자로 활약했다(눅 8:2-3).10) 여기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마가[요한]의 모친 마리아가 초대교회 구성원들 모두가 모일 수 있을 만큼 큰 다락방을 갖춘 저택을 소유할 만큼 사회적 신분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이다. 사도행전은 마리아 이외에도 이미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공동체를 위해 매매할 만한 땅과 집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행 2:45; 4:36-37). 이러한 상황은 사도들이 처음 만났던 장소(성전 근처의 시온산)는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핀지가 주장하는 곳에서도 확인되는바, 그것은 상류층이 대체로, 특히 시온산을 포함하는 도시의 높은 지역에 거주했기 때문이다.11) 바울이 선교한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기독교의 모습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은 광범위한 스펙트럼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12)
        이런 차원에서도 마가[요한]의 모친의 소유와 영향력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나름대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기적의 주인공 베드로가 찾아간 집이 마가[요한]의 어머니의 집이라는 언급에도 불구하고, 마가[요한]과 베드로가 전혀 관련이 없음은 흥미를 유발한다. 독자들은 한편에서 마가[요한]과 베드로가 혈연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예상할지도 모르지만, 내러티브의 전개에서 그들의 만남은 전혀 감지되거나 노출되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석방되어 문 앞에 서 있는 베드로와 그 소식을 알리는 여종 로데의 기별을 무시하는 일이 있은 직후(12:13-16),13) 마침내 베드로는 집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탈출에 대해서 말한다. 그 일이 있은 직후, 베드로는 그의 석방 사실을 야고보와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형제들에게 전하라고 부탁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12:17). 실제로 나레이터는 베드로가 도착하자마자 그를 마리아의 집으로부터 주의 깊게 떼어놓는다(12:17). 여기서 독자들은 누가의 의도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어지는 17-18절에서 헤롯이 베드로를 해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로마법에 따라서, 간수들이 처형될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베드로가 처한 위험이 긴급한 것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14) 이와 같이, 마가[요한]은 12장 12-17절에서베드로의후원자 역할을 수행하는마리아를지시하면서 이름만 스치듯 언급될 뿐,15)그와 베드로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내러티브가 이렇게 전개된다면, 사도행전에서 마가[요한]이 재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으로 판단된다.

2. 안디옥에 온 마가[요한](행 12:25)

        문맥적으로 볼 때, 조연급 인물로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마가[요한]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일 수 있지만, 앞서의 언급처럼, 누가의 인물묘사 기법을 주목할 때 설득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의 등장과 관련된 전후 사정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탐구를 위해서 유익하다. 마가[요한]과 관련해서 우리가 먼저 인지할 사항은 유대의 예언자 아가보가 천하(ο?κουμ?νη)에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는 장면인데(11:27-28), 이 내러티브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아가보가 예언한 기근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보도한다.16)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돕기 위하여 부조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파견했다(11:29-30). 물론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이라는 예언은 예루살렘 모교회가 위치한 유대 지역은 물론 안디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해석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위한 자발적 봉사와 구제에 참여하는데,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가 모은 헌금을 전달하는 책임을 맡아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다. 바렛에 의하면, 이러한 안디옥 교회의 결정은 그들의 교회가 자립한 상태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주는 동시에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희망하는 전략적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17) 여기서 눈여겨 볼 사항은 부조의 책임을 맡아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바나바와 바울이 구제의 사역을 마치고나서 앞에서 스치듯 언급되었던 ‘마가[요한]’이라는 협력자와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온 것이다(12:25). 25절의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π?στρεψαν ε?? ?ερουσαλ?μ)는 구절은 사본학적 문제를 제기한다.18) 고대의 권위 있는 대문자 사본들(?, B, H, L, P) 등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11장 30절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안디옥 교회가 장로들에게 보냈다는 본문의 흐름으로 봐서 적절치 않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문제를 ‘예루살렘으로’와 완성했음을 의미하는 πληρ?ω의 부정과거 분사 πληρ?σαντε?를 연결하여 해결을 시도한다.19) 즉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구제의 사역을 마친 두 사람이 마가[요한]을 데리고 안디옥에 복귀함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한 구성원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과 긴밀한 관계 안에 놓이게 된다.20) 이러한 긴밀성은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마가[요한]의 모친 마리아의 집에서 그들이 묵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독자들은 마가[요한]이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와 사울이 펼치는 선교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자가 될 것을 예감하며, 마가[요한]이 사도행전의 선교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직감한다. 그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에서 파송 받아 활동하고 있는(9:26-30; 11:19-30) 사울과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에 나서게 될 것이다. 물론 바나바와 사울이처음등장할때도 그들은보조적인 인물로소개된 적이 있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은연중에 나타나는 듯하다가 곧 사라기도 했었다(cf. 4:36-37; 8: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도행전 내러티브에서 혁혁한 선교의 공적을 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반대로, 독자들은 마가[요한]의 잠재적 영향력을 확신할 수 없는데, 그가 동행하는 두 사도와 동등한 파트너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의 내러티브는3명의 선교사 모두를 동일하게 배치하지 않고 바나바와 사울이 마가[요한]을‘데리고’(συμπαραλαβ?ντε?) 활동했다고 보도한다(12:25; 15:37, 39). 물론 독자들은 바나바와 사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선교의 과정에서 마가[요한]이 협력자로 활약할 것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συμπαραλαβ?ντε?는 여행에서의 함께 활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1) 그러나 마가[요한]이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여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울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가 어떻게 실현될지는 이어지는 장면에서 확인될 것이다.
        이쯤해서 독자들은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기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바나바와사울의동역자로마가[요한]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의 내러티브는 이 점에 대해서 전혀 언급해주지 않는다. 상당히 오래된 견해이지만 마가[요한]에 대한 중요한 해석을 시도한 스웨트는 ‘바나바가 그의 사역을 위해서새로운 동역자를 물색했고, 요한은 바나바의 가까운 친척’이라고제안했다.22) 이 주장은 골로새서4장 10절에 의존하면서, 사도행전에서 마가[요한]의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누가가 마리아를 마가[요한]의 모친과 동일시하는 반면, 바나바와 마가[요한]을 사촌 관계라고 확인해주지 않는다. 만약 사도행전 12장 12절에서 누가의 의도가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어떤 사람과 마리아를 연결시키려는 것이었고,또한 마가[요한]과 바나바가 사촌 사이라는 점을 누가가 알았다면, 마리아가 바나바의 친척이라고 밝히지 않은 이유는 또한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내러티브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 12장 25절에서 마가[요한]이 갑자기바나바/사울의 동아리에 어떻게 합류할 수 있었을까? 이 내러티브에서 분명한 실마리가없는 가운데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미 저자가 사라진 현재 시점에서 본문의 기록 목적을 그 누가 확인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전승비평적인 입장은누가가수집한 자료들 가운데서 이러한 연대를 확인한 다음, 그것을 단순히 보고했다는 식으로 해석할 것이다. 또다른경우는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거나, 마가[요한]과 다른 인물들 또는 12장 25절에서 그가 관련된 사건들 사이에 암시된 사실을 탐구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인 그리스도인의 기도 모임이 예시하는 것처럼(12:12), 마가[요한]은, 그의 모친이 부유한 여성이므로, 동시에 부와 경건의 모습으로 묘사될 수 있다. 헹엘은 그의 모친의 집은 대문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훌륭한 집이라고 이 점을 확인해준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바나바와 사울의 제 1차 선교여행이 시작될 때 마가[요한]을 함께 데리고 갔다고만 언급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가[요한]이 왜 무대에 출현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문학비평, 특히 독자반응비평은 저자의 의도를 살려낼 수 있을 만큼 전능한(?) 존재로 독자의 위상과 능력을 무한대로 확대하지만,24) 이러한 이해 역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본문 읽기는 세심한 이해에 근거해야 한다.25) 마가[요한]의 출현에 대해서도 본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3. 선교의 조력자 마가[요한](행 13:5)

        제 1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는 바나바/사울과 함께 동아리에 편입한 마가[요한]은 살라미에 도착,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수종자(?πηρ?τη?)로 그들을 돕는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바울(13:9)이 바나바의고향인구브로(4:36)에서선교하는 동안 봉사한다. 우리는 13장 5절에서 마가[요한]의 인물 묘사에 관련하여두가지 문제를제기할 수 있다.우선, 부수적인문제는 누가가 마가[요한]을 언급한 것과 그 언급에 대한 모호성인데, 12장 25절과 13장 5절 사이에서 요한이 다른 인물처럼 나타나지만, 여기서 거명된 요한은당연히 마가[요한]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더 이해하기 힘든것은마가[요한]을수종자로묘사하는누가의의도이다. 누가가 사용한 ?πηρ?τη?를 어떻게번역하느냐에 따라서 마가[요한]의 위상은 결정된다. 노를 젓는 뱃사공을 의미하는 ?ρ?τη?와 어원적인 관련성 때문에 흔히 ?πηρ?τη?는 ‘노를 젓는 뱃사공’의 ‘조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뱃사공에게는 두 계급이 없었으므로, 이 용어는 단순히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서 노를젓는자유인 정도를의미했을 것이다.26)이 용어는 헤로도투스27)나 플라톤28)이나 필로29)와 요세푸스30)도흔히사용했으며,부하,종,시중드는 사람을 의미했는데, 가정과 정치, 군사 그리고 종교 분야에서 종속적인 관계를 지시했다.
        위의 분석 결과, 이 용어 ?πηρ?τη?가 본래 지시한 의미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서 마가[요한]의 위상을 보조자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13장 초두에서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 이 두 사람을 안수하여 성령의 증인으로 삼지 않았는가? 마가[요한]이 그들과 대등한 위치였다면, 누가의 이런 묘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안디옥 교회에는 바나바와 사울을 포함하여 시므온,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σ?ντροπο?)31) 마나엔과 같은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금식할 때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다수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안디옥 교회에 주류를 형성하는데, 마가[요한]이 그 자리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은 마가[요한]의 위상을 고려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5절에서 마가[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다’(ε?χον)고 할 때 사용된 동사의 주어는 문맥에서 볼 때 바나바와 사울이므로, 그들이 마가[요한]을 선교 도우미로 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32) 그가 음식을 만들고 짐을 나르거나 선교 여정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거나, 또한 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던지 불분명하지만, 내러티브의 흐름상 그가 바나바/사울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역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와 동시에 13장 6절 이하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과 엘루마라는 박수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마가[요한]은 스포트라이트의 조명을 받지 못한다. 도대체 마가[요한]의 직무는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의 조력자일 뿐이라는 해석은 바나바와 사울이 자투리 일이라도 시킬 생각으로 그를 예루살렘으로부터 데려왔을 것으로 짐작케 한다. 이 경우에는 마가[요한]의 위상이 너무 축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헌신하며 봉사하는 두 사람의 선교사들을 돕는 보조자로서의 그의 위상은 여전히 중요하다. 성령의 지시를 받은 선교사들이 중차대한 선교 여행을 위해서 아무나 협력자로 데려왔을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 묘사를 통해서 누가가 의도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스치는 듯 잠시 나타났다가, 이렇게 다시 무대로 등장하는 마가[요한]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이 끌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 내러티브에서 분명한 것은 마가[요한]의 위상이 높이 치켜지거나 혹은 그에 대하여 모호하게 일변도로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서 마가[요한]이란 인물이 함의하고 있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파력을 숨기고자 의도했을까? 현재까지의 내러티브의 전개로 볼 때, 그러한 암시는 불충분하다. 이런 저런 생각의 편린(片鱗)을 모아본들 지금까지의 내러티브의 전개에서 마가[요한]의 위상은, 사울이나 바나바처럼, 중요한 인물로는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33)

4. 배반자 마가[요한](행 13:13)

        독자들을 설왕설래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 보이던 마가[요한]의 정체는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했을 때, 곧이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는 장면에서 단번에 드러나고야 만다.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가지고 며칠이 못되어 허랑방탕하게 다 허비한 것이 단 한 구절의 길이로 묘사될 뿐이어서 너무나도 허무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눅 15:13), 마가[요한]은 단 열 세 구절(12:25에서 13:13까지)을 사이에 두고 그의 선교 열정이 식어버리고 만 것처럼 그려진다. 구브로 동쪽 해안 살라미에서부터 사역하다가, 전체 섬가운데를 지나서쪽항구 바보에 이르러,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남부 소아시아의 주요 항구 도시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자, 마가[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다. 우리는 여기서 마가[요한]에 대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묘사를 접한다.
          왜 마가[요한]은 바울 일행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가버렸을까?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서는 어떠한 암시도 해주지 않지만, 이 물음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물론 저자의 의도를 아무리 추측해서 찾아보려할지라도 분명하게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학자들의 견해는 마가[요한]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해법 가운데서 몇 가지만 살펴보려고 한다.

a. 그가 선교사로 처음 위임받은 지역이 시리아의 안디옥과 구브로에 한정되었기에,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34) 요즘 말로는 단기 선교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본문에서 어떠한 지원도 얻지 못할 만큼 근거가 빈약하다.
b.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저항으로 마가[요한]이 돌아갔다는 그럴듯한 해석인데, 이방 선교에 대한 신학적 갈등 내지는 몰이해로 이해하므로 마가[요한]을 유대적 입장을 대변하는 신학자로 격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하나, 이것 역시 본문이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마가[요한]이 그들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복귀했다고 하면서, ‘떠나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된 동사 ?ποχωρ?ω는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선교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음을 함축하므로 어느 정도는 설득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35) 그렇지만 누가의 서술에서는 그러한 논쟁의 성격이 특별하게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은 독자들의 불만을 살만하다.36)
c. 그의 삼촌 바나바가 바울의 다음 지위로 전락한 것에 대하여 조카로서 분개해서 돌아갔다는 해석인데, 이것은 혈연의 끈끈함과 인간적 관계를 중시하는 해석으로 보이며, 골로새서 4장 10절을 의존할 때 가능한 해석이다.37)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서는 바나바와 마가[요한]의 어떠한 혈연적인 관련성에 대해서 언급해주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d. 바울의 선교 동아리가 밤빌리아 북부의 만만찮은 타우루스 산맥을 횡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버렸다는 견해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38) 누가는 바울 일행이 구브로를 떠나 소아시아에 도착한 후, 행로가 용이할 수 있는 반도의 남쪽 연안으로 향하지 않고 훨씬 험로임이 분명한 내륙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고 보고하여,39) 마가[요한]의 예루살렘으로 복귀가 그의 의지와 관련된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것은 마가[요한]의 의지의 박약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15장 38절에서 마가[요한]을 선교의 동역자로 데려가자는 바나바의 제안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울의 태도가 이 견해를 지지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마가[요한]의 위상을 너무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바나바와 마가[요한]이 함께 선교에 나서는(15:39) 점을 간과하게 만드는 오류를 낳고 만다.
e. 그의 모친을 예루살렘에 남겨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발동했다거나, 그의 모친 마리아의 요리를 선호해서 돌아갔다는 등의 향수병과 연관시키는 해석도 있는데,40) 이것은 현대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마가[요한]을 마마보이의 성격을 지닌 유약한 청년으로 격하시키는 약점이 있다. 그렇지만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의 흐름에서 볼 때, 마가[요한]의 모습은 그렇게 유약해보이지는 않는다.
        위에서 우리는 누가가 마가[요한]을 묘사할 때 암시했을만한 몇 가지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마가[요한]에 대하여 기술하는 내러티브가 언급하지 않는 내용을, 암반을 굴착하는 것처럼 읽어내려는 무모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 독자의 힘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확보된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권력(?) 행사는 본문의 의도를 곡해할 수 있는 충분한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마가[요한]의 행동에 혐의를 둘 수 있는 실마리를 내러티브에 남겨놓았다. 첫째, 마가[요한]의 명성이 바나바/사울과 동등한 위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바나바와 사울이데려간 수동적 인물이다. 독자들이 그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대해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성품에대하여추측하거나 확신할 수 없다.둘째,성령이 마가[요한]을 따로 세워 파송했다는 것이명확하지않고,선교하는 과정에서 안디옥 교회의승인을받지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13:1-4).셋째, 마가[요한]이 그의 동역자들과 결별하기 바로 앞선 시점에, 로마 총독의 회심과박수 엘루마와 바울의 대면이 독자들에게 언급된다. 여기서 우리는 유력한 이방인 지도자가 기독교로 회심한 사건을 목격한다. 이 사건에 대한 마가[요한]의 반응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마가[요한]이 살라미의 한 유대인 회당에서 선교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5절). 곧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불안이 예루살렘 회의에서조차 진정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여튼,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서 마가[요한]을 둘러싼 긴장과 반전은극도로치밀하다.그래서 13장 13절에서 마가[요한]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렇게 하찮게 취급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계획된 단절인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여기서도 우리는 역경가운데서 사도들이 성공을 경험하는 가운데서(13:42-52; 14:1-28; 15:30-35), 마가[요한]의예루살렘으로의 복귀에대한애매한진술이독자들을긴장하게 만들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마가[요한]의 예루살렘으로의 복귀는 심층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인간적인 이유나 신학적인 이유라든지 또한 혈통적인 관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차원에서 그의 문제를 다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

5. 바나바와 사울의 결별 속에 숨겨진 마가[요한](행 15:36-41)

        마가[요한]의 예루살렘으로의 복귀를 언급하는 13장 13절 이후를 이어서 읽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마가[요한]이 이제는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겠지만, 내러티브의 진행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마가[요한]을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여러 조연들 가운데서 비중 있게 취급하는 이유다. 사도행전에서 마가[요한]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15장인데, 마가[요한]이 사도행전의 내러티브에서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궤적을 추적해보자.
          15장의 서두를 보면, 유대로부터 안디옥에 와서 율법과 할례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안디옥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진다. 이 소용돌이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 소집된 예루살렘 회의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최소한의 단서를 달고(29절), 새로운 이방 개종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교회의 화해와 일치에 대한 결정은 안디옥과 소아시아의 회중들이 환영하고 이 회의의 소식을 수용하는 가운데서 절정을 이룬다(15:31). 이렇게 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하는 이방 선교의 여정은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대로를 향해서 내달리게 되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41)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처럼, 관계가 무난했던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는 갑작스럽게 균열이 생기고 만다. 선교의 과정에서 지지해주며 협력하던 그들은 놀랍게도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만다. 소아시아 교회들을 방문하려는 여행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마가[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은 대립하게 되는데,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반면, 바울은 이전의 이탈자와의 합류에 거부감을 갖고 결사반대한다(15:38-39). 결국 바나바는 마가[요한]과 함께 구브로로 돌아가는 여정을 선택하고, 바울은 그의 새로운 협력자인 실라와 함께 제 2차 선교여행을 출발한다.
        이러한 분열이 발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편집비평의 입장에서 볼 때, 마가와 연관된 다툼은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보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본질적인 흠집을 숨기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식탁교제와 관련하여 바나바와 다툰 사실을 알려준다. 바울의 주장에 의하면, 베드로와 같이 바나바도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의 할례자들이 방문했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거부했다(갈 2:12-13).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한 이방인에 대한 포용과 일치하기 어려운 문제다.42)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갈등은 이 내러티브에서 두 인물과 그들의 특별한 관계를 주목할 때 가장 잘 설명된다. 바나바의 특별한 반대 없이 지도력이 바나바에서 바울로 이미 교체되었다. 그러나 바나바의 지속적인 중요성에 대한 암시는 바울 앞에 그의 이름이 열거되고, 제우스와 관련된 루스드라의 사건(14:12, 14)에서 다시 나타나고, 예루살렘에서 소개되는 순서에서 또 한번 나타난다(15:12, 25). 바나바는 바울에게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양보한 것도 아니고, 특히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한 예루살렘에서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바나바가 이전의 핍박자였던 바울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동료 제자로 받아줄 것을 처음으로 설득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행 9:27). 우리는 또한 이러한 행동이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서 바나바의 뛰어난 명성을 예증하는 것임을 기억하게 된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바나바의 이러한 사역은 여기서 마가[요한]에게 적용되어 그에게도 또 한번의 기회를 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나바는 마가를 위하여 바울의 입장을 반대하면서까지 행동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불화 이야기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바울인데, 그는 자신이 회심한 핍박자로서 이전에 바나바로부터 받았던 신뢰를, 회심한 이탈자 마가에게는 결코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역동적인 선교사로 바나바보다 더 역량을 발휘하지만, 바울은 덕망 있는 위로의 아들 바나바(4:36)에게 아직도 좀더 배울 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드러나는 바울의 모습은 불완전해보이며 결코 완벽하지도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이 바로 누가의 문학적 의도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을 이끌어내는 부정적인 역할을 마가[요한]이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바로 바나바의 인격과 ‘위로의 아들’(υ?ο? παρκλ?σεω?)이라는 그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보해주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15:37). 그래서 사도로 활약하는 바울조차도 바나바로부터 더 배울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마가[요한]이 감쪽같이 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요한]은 그러한 부정적인 것에서만 머물지 않고, 나아가서 바나바와의 선교적인 연대를 통해서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15:39). 바울의 입장에서 마가[요한]은 선교 여행에서 이탈한 배신자이지만, 바나바에게는 당당한 선교 파트너가 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되는 것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구원 계획을 추진하신다는 점이다. 스데반의 순교로 불거진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밖으로 내몰아서 결과적으로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성공을 거두는 일이 이미 발생했었다(행 8:4-24). 즉 사도행전의 목적인 선교 명령(1:8)을 확증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인간관계와 같은 표피적인 요소들을 극복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공동체로 거듭 태어나고 있었다.

III. 결론: 마가[요한]의 인물 묘사를 통해서 읽은 사도행전

        우리의 분석을 통해서 밝혀진 것처럼, 사도행전에서 마가[요한]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에 버금갈 만큼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분명히 예루살렘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되며, 구성원들 사이에서 경건과 부(富)의 상징으로 꼽힐 수 있다(12:12). 이와 동시에 그는 바나바와 바울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들의 초청을 받아 구브로로향하는제 1차 선교 여행에서 수종자로 협력한다(12:25, 13:5). 사도행전 내러티브에서 그는 바나바의 조카(골 4:10)나, 베드로와 직, 간접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비록 베드로가 마가[요한]의 모친 마리아의 집에 자주 왕래했다 할지라도. 12:12, cf. 벧전 5:13). 또한 마가[요한]은 살라미에 있는 한 유대인 회당에서의 선교와 암묵적으로 연결되지만(13:5), 이방인 선교라는 더 광범위하고 포용적인 지평에서는 다만 암시되거나 격리될 뿐이다(13:13, 15:38). 마가[요한]은 대체로 그의 과묵한 성격이나 이방인 선교에동참하기를거절한것때문에애매하게 표현되거나(13:5, 13) 또는 경멸적으로(15:38-39) 묘사되기도 한다.결과적으로 그는 바나바와 바울사이 불화의 원인이 되며(15:39-40), 그의 후원자 바나바와 더불어 마가[요한]은 15장 이후 무대에서 사라져, 재등장하지 않는다.
          본 연구의결론은 사도행전을 읽는데 있어서 균형을 갖추도록 안내한다.
a. 비록 사도행전과 신약성서의 서신으로부터 나온 요소들을 종합해서, 그의 삼촌 바나바의도움으로 바울의 동아리에 참여한 ‘유대 그리스도인 배신자’라는 식으로 마가[요한]에 대한 단일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유혹은 거부되어야 한다.43)
b.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마가[요한]의 본래 역할은 주인공들을 보완하는 역할일지라도, 누가가명확하게 묘사하지 않은 마가[요한]이라는인물의중요성을바르게 탐색하기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누가는 마가[요한]의 인물묘사를통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조명하고, 나아가 그들의 삼각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미묘하게 노출시키거나 강화시킨다.
c. 저자의 인물묘사에 초점을 맞추어 본문을 읽어보는 작업이 제공하는 효과는 신약성서라는 거시적인 측면보다는 누가의 내러티브라는 코텍스트적이고 미시적인 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읽기는 누가의 내러티브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저작 의도, 즉 사도행전의 목적지를 향한 선교 명령(행 1:8)의 지속적인 추구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협력한다. 마가[요한]같은 조연을 통해서도 밝혀지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외자들에 대한 누가의 인물묘사를 검토하는 미시적인 읽기는 오히려 사도행전에서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거시적인 명제를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읽기 방법이다. 우리의 성서 읽기는 그것이 미시적이든 거시적인 방법이든지간에 하나님의 구원과 그분의 섭리를 밝혀내어 인류를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는 것을 지향해야 하고, 나아가 그러한 복음을 통하여 사도행전에서 경험되었던 사건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함을 확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1) 마가[요한]이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를 언급해야 하겠다. 우리는 그를 관례적으로 마가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원문상(12:12, ?ω?ννου το? ?πικαλουμ?νου Μ?ρκου) ‘마가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요한’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서 또는 서신 기록자인 요한과 혼동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글에서도 관례상 사용되는 호칭을 그대로 쓰려고 한다.
2) 이러한 특징은 특히 구조주의(Structuralism)에서 발견되는데, 본문의 표층 구조(surface structure)의 의미를 지배하고 결정하는 심층 구조(deep structure)를 연구한다. 이 심층 구조에 대한 탐구는 심층 구조 내부의 통괄적 기호를 규명하는 일로서, 이것은 구조적 구분을 반영하는 대립 쌍에 기초한 기호의 형태를 분석하는 일을 의미한다. 성서 연구에 있어서 대립 쌍의 규명을 통한 구조주의적 연구는 주로 정결/불결, 내면/외면, 소외/중심, 남자/여자, 내재/초월, 하늘/땅, 빛/어둠, 물/땅, 인간/하나님, 생명/죽음 등과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표층 구조의 의미를 가능케 하는 불변의 내적 패턴을 관찰하는 일을 말한다(D. Patte, What is Structural Exegesis? Philadelphia: Fortress, 1976).
3) 어떻게 수백 명의 설교자가 동일하게 설교를 한단 말인가?(텍스트의 이해와 접근성의 문제) 이것은 텍스트 해석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명료하게 드러내주는 하나의 현상일 것이다.
4) 유상현, 『바울의 제 1차 선교여행』,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61-63.
5) 독자와 수사학 그리고 인물 묘사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J.A. Darr, On Character Building: The Reader and the Rhetoric of Characterization in Luke-Acts,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를 참고할 수 있다.
6) B.R. Gaventa, Acts, Nashville: Abingdon, 2003, 56-58.
7) 윤철원, ‘코텍스트(Co-text)로 누가-행전 읽기,’ 『신학과 선교』 27(2002), 부천: 서울신학대학교, 219-240.
8) 윤철원, ‘애송이, 마가 요한,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 『기독교사상』 548(2004, 8월호), 124-134.
9) Contra I.R. Reimer, Women in the Acts of the Apostels: A Feminist Liberation Perspective, Minneapolis: Fortress, 1995, 240-243. 여기서 라이머는 여성 신학적 관점에서 마리아를 해석하므로, 많은 수가 모일 정도로 규모가 있는 집이나 대문 등에 관해서 보다는 오히려 공동체의 내부에 속한 여성 노예 로데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 cf. M.I. Finley(지동식 역), 『서양고대 경제』, 대우학술총서 번역 64, 서울: 민음사, 1993, 15-16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정(ο?κο?/ο?κ?α)은 재산과 관련되며 누가-행전에서도 동일하지만, 이와 동시에 선교와 가르침, 그리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역을 행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10) B. Witherington III, Women and the Genesis of Christian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88-112; L.F. Massey, Women and the New Testament, Jefferson: McFarland, 1989, 7-27.
11) D.A. Fiensy, 'The Composition of the Jerusalem Church,' The Book of Acts in Its First Century Setting, vol. 4, Grand Rapids: Eerdmans, 1995, 213-236.
12) Cf. G. Theissen, The Social Setting of Pauline Christianity, Edinburgh: T&T Clark, 1982, 69; W.A. Meeks, The First Urban Christian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3, 73.
13) E. Haenchen(이선희, 박경미 역), 『사도행전(I)』,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566. 베드로가 밖에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극도의 긴장된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웃들이 알아차리고 도망자를 붙잡기 전에 베드로를 안으로 들일 것인가?”
14) Code of Justinian 9.4.4. 로마의 법은 간수들이 죄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놓쳤을 경우에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15) B. Witherington III, The Acts of the Apostle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98, 386, n.95. 이러한 묘사는 헬라파(Hellenist)의 일곱 지도자들의 명단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빌립(행 6:5)이나 스데반을 처형하기 위해서 돌을 던질 때 증인들이 자신들의 옷을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고 기록된 7장 58절과 유사하다.
16) E. Haenchen(1987) 543. 물론 이러한 언급은 역사적으로 시기 설정을 하려는 의도보다는 예언의 성취를 말하는 데 일차적인 의도가 있다.
17) C.K. Barrett, Acts, vol. 1, ICC, Edinburgh: T&T Clark, 1994, 599; E. Haenchen(1987) 545. 누가는 독자에게 안디옥의 초기 이방 기독교 공동체가 얼마나 긴밀하게 모교회와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18) B.R. Gaventa(2003) 187.
19) J.A. 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ABC 31, New York: Doubleday, 1998, 493.
20) E. Haenchen(1987) 550.
21) H.Balz/G. Schneider(eds.), 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vol. 3. Grand Rapids: Eerdmans, 1993, 288. 행 12:25; 15:37, 38 갈 2:1에서 συμπαραλαμβ?νω는 사람을 목적어로 받아서 사용되고 있다. 위의 모든 경우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의 협력자를 지시한다.
22) H.B. Swete,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London: Macmillan, 1927, xvi.
23) M. Hengel, Between Jesus and Paul, London: SCM, 1983, 108.
24) 온건한 독자반응 비평을 위해서는 W. Iser, The Implied Reader: Patterns of Communication in Prose Fiction from Bunyan to Beckett,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74, U. Eco, The Role of the Reader: Explanation in the Semiotics of Texts, AS, London: Hutchinson, 1981을 참고할 수 있고, 보다 급진적인 견해는 다음을 보라. S. Fish, Is There a Text in This Class? The Authority of Interpretive Communitie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25) 이러한 읽기는 개신교회의 전통적인 성서 이해에 전제하며, 이런 해석학적 입장은 구속사적인 신학적 입장과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는 작업이 선행할 때 가능할 것이다.
26) K.H. Rengstorf, '?πηρ?τη?', in G. Friedrich(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vol. viii. 1972, 530-544.
27) History 3.635.111.
28) Politicus 289c
29) On Joseph 241.
30) Ant. 15.287.
31) F.J. Foakes Jackson/K. Lake(eds.) The Beginnings of Christianity, part I, The Acts of the Apostles, vol. iv. London: Macmillan, 1933, 142, σ?ντροπο?는 왕궁에서 왕자들에 함께 양육된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부여된 존칭이며, 장년이 되어서도 이 호칭은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마카비 1서 1:6과 마카비 2서 9:29를 예로 들어서 가까운 친구나 왕궁에서의 친구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C.K. Barrett(1994) 604; B. Witherington III(1998) 392, n.127].
32) C.K. Barrett(1994) 612.
33) B. Witherington III(1998) 395.
34) F.J. Foakes Jackson/K. Lake(1933) 147-148.
35) Epictetus, Discourse 4.1.53. 누군가와의 입장 차이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36) B.R. Gaventa(2003) 197.
37) 유상현(2002) 63; cf. F.F. Bruce, The Acts of the Apostles: Greek Text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90, 300. 여기서 브루스는 마가[요한]이 그의 삼촌이 바울보다 낮은 위치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 분개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38) C.S.C. Williams, The Acts of the Apostles, London: A. & C. Black, 1964, 160; J.D.G. Dunn, The Acts of the Apostles, Valley Forge: TPI, 1996, 178-179.
39) 유상현(2002) 61. 여기서 유 교수는 험한 코스를 잡게 된 이유를 그들이 미리 계획된 선교 여정의 구상과 연관되었다고 제안한다.
40) B. Witherington III(1998) 404.
41) J. Jervell(윤철원 역), 『사도행전 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00, 105-107. 여기서 예르벨은 아주 색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데, 율법과 이방인 선교의 상관성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라.
42) F.S. Spencer, Act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158.
43) cf. 윤철원, ‘오네시모를 위한 변호: 빌레몬서,’ 『기독교사상』 547(2004, 7월호), 12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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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복음서
신약, 공관복음신학

2008/06/06 10:44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51938332

공관복음서

 

목   차


Ⅰ.  서 론  2

Ⅱ.  본 론  2

ⅰ. 공관복음서의 문학적 상호 연관성  2

     α. 기사 배열의 순서에 있어서의 연관성  3

     β. 어휘와 문체에 있어서의 연관성  3

     γ. 삽입자료의 일치를 통한 연관성  3

     δ. 누가복음 1:1-4이 내적 근거가 된다. 3

ⅱ. 시도된 역사적 해결 방안 4

     α. 비평 이전적 설명 4

     β. 원복음설 (原福音說) (The Evangelium Theory)  4

     γ. 단편설 (斷篇說) (The Fragment Theory)  5

     δ. 구전설 (口傳說) (The Oral Tradition Theory)  5

     ε. 상호의존가설 (相互依存假說) (The Interdependence Theory) 6

     ζ. 이문서설 (二文書說) (The Two-Document Theory)  6

     η. 네문서설 (四文書說) (Four-Document Theory)  8

ⅲ.마가복음 우선설 (Mark Priority)의 증거들 8

ⅳ. 공관복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들에 대한 비판 9

ⅴ. 그러면 마태복음 우선설 (Matthew Priority)이냐  아니면 마가복음 우선설 (Mark Priority)이냐  10

ⅵ. 시기적 마태복음의 우선을 주장하면서 11

Ⅲ. 결 론 12

 

Ⅰ. 서 론


소위 공관복음 (共觀福音) 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점은 찾을 수가 있다.

이 복음서들은 우선 그 내용에 있어서 동일 역사 구조를 기초로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행적을 중심으로 가이샤라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전환점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마지막 여행과 재판, 십자가의 사건,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세 복음서 모두 기록하고 있다. 1) 이러한 역사 구조뿐아니라 어휘 구사에 있어서도 세 복음서 사이에는 거의 일치하는 어휘의 선택이 드러난다. 이러한 어휘 선택은 더불어서 각 복음서 사이에서 때로는 차이점으로도 드러나기도 한다. 만일 어휘에 있어 완전히 일치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사함과 함께 드러나는 차이점은 공관복음 문제를 야기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공관복음 사이에는 일종의 삽입 문구에 있어서 그 삽입 문구가 동일한 이유로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이 삽입 문구의 동일은 공관복음 문제의 결정적 근거이기도 하다.2) 누가복음 1:1-4은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최소한 이전에 기록된 자료들을 사용하였음을 밝히고 있는 것을 근거로 공관복음의 상호연관의 내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밝힌 이러한 유사성은 성경의 영감성을의심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리하여 공관복음이 상호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도록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본 소고에서는 공관복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사적 노력들을 살펴보고 그러한 노력들을 상호 비평하는 가운데 가장 복음적인 입장을 피력하고자 한다. 본 소고의 목적은 공관복음의 문제가 문서비평 등의 고등비평을 뒷받침하는 시도의 희생물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영감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연구의 목적을 삼았다.

 

Ⅱ. 본   론


ⅰ. 공관복음서의 문학적 상호 연관성3)


α. 기사 배열의 순서에 있어서의 연관성


공관복음서의 기록된 기사들에는 분명히 유사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배열에 있어서의 연관성이다. 각 복음서의 내용을 표로 만들어서 비교한다면 훨씬 용이하게 그들 상호간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4)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거의 뚜렷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마태복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른 두 복음서와의 관계에 있어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단지 복음서 기자들의 중점 사안에 기초하여 사건을 누락하거나 첨가한 사항 외에는 결국 그 연관성이 실로 놀랄만하다. 한 복음서의 기자가 일탈하여 그 순서에 있어 상이한 듯 보이는 것에도 궁극적으로 잘 살펴보면은 원래의 순서로 다시 찾아 들어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β. 어휘와 문체에 있어서의 연관성


공관복음서의 유사성에는 또한 어휘에 있어서의 연관성을 들 수 있다. Robert Morgenthaler에 의하면 마가복음에 사용된 어휘는 1345개의 단어로 보고 있다. 이 단어 중에서 거의 90%정도 적어도 80%정도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일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5)


γ. 삽입자료의 일치를 통한 연관성


공관복음의 상호 연관성의 근거로 삽입자료의 일치를 살필 수가 있다. 세 명의 복음서 기자가 동일하게 편집자로서 동일한 언급을 삽입하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삽입구라는 것은 기자들의 독특한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일치되었다면 어떤 다른 자료를 인용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혹자는 누가복음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언급되어진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라는 표현을 주시하며 기록되어진 어떤 기록의 인용으로 보기도 한다.6)


δ. 누가복음 1:1-4이 내적 근거가 된다.


우리 종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돤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모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라.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를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눅 1:1-4)


이미 우리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공관복음이 일치점을 보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누가복음 처음에 드러난 부분에는 최소한 누가가 기록된 자료들을 인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 내적 근거로 상기의 본문을 들 수가 있다. 즉,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았다는 부분을 볼 때 분명히 기록된 자료를 인용하였거나 최소한 기록된 자료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이 존재하였다면 분명 누가는 이 문서를 최소한 그의 진술대로 자세히 미루어 검토하였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은 공관복음의 문제를 큰 신학적 과제가 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우리는 그러한 시도들을 살피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ⅱ. 시도된 역사적 해결 방안


α. 비평 이전적 설명


공관복음서의 문제가 이미 초대교회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의 고등비평학이 발전된 이전까지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다. 단순히 타티안(Tatian)의 세 복음서의 조화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코자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조화와 더불어 단순성만이 공관복음 문제를 끌어안은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즉, 어거스틴이나 초대교부들의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에 우선한다는 그저 평이한 해석만이 있었을 뿐이다. 칼빈 역시도 공관복음 문제에 있어서 그다지 큰 관심에서이기보다는 편의상 A harmonie upon three evangelistes, Matthewe, Marke and Luke 이라는 주석을 썼을 뿐이라는 것이다.7)


β. 원복음설 (原福音說) (The Evangelium Theory)


이 이론은 세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자기들이 쓴 복음서의 원 자료로서 원복음서 (原福音書, Original Gospel)가 있었다는 가설이다.8) 이러한 주장은 레싱 (G.E. Lessing)과 아이호른 (J.G. Eichhorn)에 의하여 제기 되었다. 레싱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복음서는 원래는 마태가 아람어로 기록한 나사렛 사람의 복음 (gospel of the Nazarenes)을 헬라어로 요약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발췌되어 기록되었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은 아이호른의 주장에 의하여 더 한층 인위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말하기로 오직 세 복음서의 공통 내용만이 아람어의 원 복음서의 내용이며 이러한 것은 35년경에 한 사도에 의하여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의 내용이 상이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35년에서 60년 사이에 쓰여진 여러 복음서들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너무나 인위적이고 너무나 많은 근원들에 의하여 그 신빙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9)


γ. 단편설 (斷篇說) (The Fragment Theory)


쉴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는 공관복음의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시도로 단편설을 제시하였다. 단편설이란, 복음서의 기초로서 문헌이 구전(口傳)이나 어떤 기록이 아닌 여러 개의 단편들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원래 복음서의 내용이 완성되기 이전에 여러개의 단편 이야기가 사도들에 의하여 기록되었고, 이 단편 이야기를 후에 와서 여러 교사들이 팔레스틴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수집하여 오늘 날의 복음서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교사는 기적의 이야기를, 어떤 교사는 강화를, 어떤 교사는 수난 기사의 단편들을 수집하였다는 것이다.10)

쉴라이어마허는 이러한 단편설의 근거로 누가복음 1:1-4의 서문 (prologue)을 들고 있다.11) 즉 이미 기록된 단편을 근거로 누가복음이 쓰여졌다는 해석으로 이 서문이 너무나 확연히 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δ. 구전설 (口傳說) (The Oral Tradition Theory)


이 견해는 공관복음이 유사점과 더불어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구전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초로 헤르더 (G. Herder)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의에 이어 구전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이 기슬러 (J.K.L. Gieseler)에 의하여 제시 되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의 교훈 강해(행 1:1-8:4)로 인하여 이 자료는 동일 방법에 의하여 반복적으로 듣고 사용되었다는 것이다.12) 즉 이것은 기초적인 구전 복음서가 된 것이고 이 복음서는 아람어로 보전되었으나 이방 선교의 필요성에 의하여 헬라어로 번역되어 세 복음서의 저작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마태는 순수한 팔레스틴적 복음을, 마가는 수정된 팔레스틴의 복음을, 누가는 바울적인 복음을 저작했다는 것이다.13)

기슬러와 더불어 구전설을 발전시킨 인물로 웨스트코트 (Westcott)를 들 수 있다. 그는 조직적인 암기의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이 학설의 근거로 웨스트코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다.14) 유대인들은 보통 기록하는 것보다는 암기하여 구전 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며 그들의 문화는 교욱을 통한 습득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도들은 기록하는 작업보다는 말씀 전파에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에 기록보다는 구전에 의하여 후세에 알려졌고 그것이 교육과 문화를 익힌 사람들에 의하여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속사도들도 - 특별히 파피아스(Papias)15)- 이 구전설을 지지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마가가 기록한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베쩰(G. Wezel)은 마태가 구전의 일을 담당했다고 보고 이 구전 교육을 고정시킬 필요성에 의하여 전승이 생겨났고 또 암송자의 필요에 의하여 사용된 메모들이 생겼다는 견해이다. 이 근거가 누가복음 서문의 이미 쓰여진 기록이라는 것이다. 16)

또 다른 구전설의 변형으로 라이트 (A. Wright)의 견해를 들 수 있다. 라이트에 의하면 로기아(Logia) 라는 것을 통하여 구전되었다는 것이다. 이 로기아라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또 다른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라이트는 각 기사들의 공통 구조는 구전을 위한 암송에 용이하도록 기록 순서를 고정시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7)


ε. 상호의존가설 (相互依存假說) (The Interdependence Theory)


이 이론은 복음서의 각 저자들이 먼저 기록된 복음서를 기초로하여 복음서를 기록하였다는 견해이다. 이는 먼저 기록된 어떤 복음서를 중심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서로 상호 유사하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학자에 따라서 그 시기의 배열이 틀림으로 큰 호응을 얻는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먼저 기록된 복음서를 기초로 하여 내용을 첨가하거나 삭제하였다는 것은 극도의 합리주의적, 진화론적 사고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ζ. 이문서설 (二文書說) (The Two-Document Theory)


이문서설은 바이스 (B.Weiss)와 홀쯔만 (Holzmann)에 의하여 제기된 이론이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18)

우선 어떤 한 복음서의 근본 자료로서 복음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 한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는 근거로서 하나의 복음서나 그와 상응하는 자료를 가지고 있음을 가정한 것이다. 이외에 다른 하나의 근본 자료로 Q 문서(Quelle, Sayings)를 들 수 있다. Q 문서란 마가복음에는 들어 있지 않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내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Q문서에 관하여는 하나의 문서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문서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인하여 그 신빙성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의 근본 자료설 외에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 설명과 누가복음의 소위 베리안 부분 (Perean Section)에 대하여 2차적인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신학자들에 의하여 제1 근본자료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드러나게 되었다. 쉴라이어마허는 이 근본자료로써 원 마가복음 (Ur-Markus)이 존재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원 마가복음을 기본으로 마가복음이 기록되었고 후에 마가복음을 기초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레이크 (Lake)나 스트리터 (Streeter)같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부정되었다.

바이스 (B. Weiss)가 지지하는 견해로는 마태의 로기아 (Logia)를 의미하는 원 마태복음 (Ur-Matt?us)설이다. 그는 이 원마태복음이 수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현재의 마태복음과 거의 같다고 주장한다. 쟌 (Zahn)은 또한 마태가 원래는 아람어 복음서를 썼는데 이것을 마가복음과 현재의 마태복음을 기록하는데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 아람어 마태복음은 오직 예수의 교설 (Sayings)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19)

오늘날의 일반적인 설명으로 이문서설은 다음과 같은 도표로 설명될 수 있다.


             마가복음 ????????????       ???? Q 문서          

               ??   ??????????????????????????????????     ??           

               ??   ??       ????????????????????????  ??   

               ??   ??                  ??  ??   

    

             마태복음               누가복음                            


제일 근본 자료로 현재의 마가복음과 어떤 성격이든지 Q문서를 들 수 있고 이것을 기초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었다는 견해이다.


η. 네문서설 (四文書說) (Four-Document Theory)


두 문서설의 소위 Q문서의 보편적 특성으로 인하여 네문서설이 스트리터 (B.H. Streeter)에 의하여 제시되었다. 이 이론은 Q 문서의 범위를 마태와 누가에는 나타나지만 마가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엄격히 제한하였다.  또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특별 강화 재료로 두 가지 다른 재료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M 문서와 L 문서이다. 스트리터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저작되었고, Q 문서는 안디옥을 기초로 기록되었고, M 자료는 예루살렘 강화 문서를 담고 있었으며, L 자료는 아마도 구전적인 가이샤라 전승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그 기초를 삼았다. 20)

그러나 이러한 네문서설은 여러 수정을 거듭하였고 급기야 양식 비평에 의하여 그 입지를 희미하게 잃어버렸다.


네 문서설의 기본 구조는 다음의 도표와 같다.


M 자료         마가복음                    Q 문서             L 자료

       ??              ??  ??                        ?? ??                 ??    

       ??              ??  ??  ?????????????????????????????????????????????? ??                 ??     

       ??????????????  ??????????????  ??????????????????????????????????????????????????  ??????????????   ??????????????????     

             ??  ??           ??                    ??        ??   ??             

                            ??                    ??

         마태복음   ??????????????????                    ??????????  누가복음



ⅲ.마가복음 우선설 (Mark Priority)의 증거들


마가복음이 세 복음서 가운데서 가장 처음 기록된 복음서라는 견해는 현대 신학에 있어서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증거들을 들 수 있다.21)

우선 마가복음 우선설의 근거로 공통적인 구절을 들 수 있다. 마가복음은 661절고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601절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발견이 된다. 마가복음에 있는 단편 이야기 중에 고작 3-4정도만이 나머지 두 복음서에 누락되어 있음뿐이다.

공통적인 순서와 개요에 있어서도 마가복음의 우선성은 확보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순서 안에 있는 평행법은 마가복음이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곳에서 끝난다. 공통적인 언어의 사용도 그 증거로 볼 수 있다. 마태복음의 51%정도가 누가복음의 50%정도가 누가복음의 언어를 사용한다. 마가복음의 생소한 어법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사용된 점이다.

로버트 스타인은 그의 책에서 마가 우선성의 특이한 근거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었다.22)

복음서의 분량을 볼 때, 마가복음이 가장 적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가복음을 기초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어서 나머지 복음서에는 첨가되었다는 주장이다.

공관복음 안에서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난해하거나 거북한 표현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는 마가복음서의 원시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마가복음을 기초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될 때, 정제되고 깨끗하게 저자들이 누락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있다.

문학적인 일치의 문제는 오직 마가우선성을 주장해야만이 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집사의 특징을 살필 경우 마가복음이 지닌 두 가지 편집상의 문체적 특징은 마가복음에 평행구가 없는 마태복음의 기사보다는 마가복음과 평행구를 이루는 마태복음의 기사 가운데서 훨씬 더 자주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마가복음 신학의 원시성을 들 수 있다. 누가복음에 나타나 있듯이 초대교회가 복음 전승에서 예수에 대한 호칭으로 주 (κυριο?)라는 용어를 점점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가정할 경우 마태복음에 이 용어가 훨씬 더 자주 등장하는 원인은 마가복음이 마태복음 보다 먼저 기록되었고 그것을 마태가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ⅳ. 공관복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들에 대한 비판


이미 우리가 논의한 대로 이 공관복음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가지 방안이 시도되었다. 확실하고 명쾌한 답변이 제시된 것은 없지만 그 난해한 문제를 해결코자 역사적을 많은 방법론이 제안되었다.

이제 우리는 공관복음 문제를 가장 복음적이며 개혁적인 신학관을 가지고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에 봉착하였다. 여기서는 이미 논의된 방법론을 재평가하고 그 평가를 기초로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18세기 비평학으로 공관복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부터 하나하나 평가를 하려고 한 다.

원복음설은 그 상상에는 큰 의미적 가치를 둘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역사적 지지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라는 것이다. 가설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원복음서 자체가 보존되어야 하지만 전혀 보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개개의 명백한 목적에 필수적인 자료가 여러 복음서 안에 생략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23)

단편설은 신약의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 단편 가설을 제사라는 공헌을 했지만 원복음설과 동일하게 초기의 기록물들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약점과 공관복음서들에 발견되는 어휘와 사건들이 진행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 등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24)

구전설이 누가복음 1장 서문의 이야기로 볼 때에 큰 증거이기도 하다. 분명히 목격자들의 간증을 토대로 이야기가 쓰여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전설 만으로 이 모든 문제를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부적당한 것이 많다. 우선 공관복음에 동일하게 들어 있는 내용에 관하여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오직 한 복음서에만 특이하게 드러나는 것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상호의존가설은 서로 유사하고 차이가 있는 것에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시기의 배열이 차이가 있고 먼저 기록된 복음서를 기초로 내용을 첨가 또는 삭제했다는 것은 극도의 합리주의 진화론적 사고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문서설에 관한 논의는 우선 그것이 나타난 배경이 극도의 이성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공관복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인위적인 방법을 적용한 것이다. Q 문서라든지  M, L 문서 따위는 하나의 가설적 문서일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문서가 아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러한 문서설의 주장은 성경의 무오함에 대한 도전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ⅴ. 그러면 마태복음 우선설 (Matthew Priority)이냐 아니면 마가복음

   우선설 (Mark Priority)이냐


현대의 많은 신약학자들은 이 Priority의 문제에 있어서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에 우선한다는 소위 마가복음 우선설을 주장한다. 거기에 대한 이유는 이미 본 소고의 한 장으로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Priority의 문제에 있어서도 소심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거기에는 불변의 원칙이 고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잘못하면 성경 무오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어느 한 복음서가 다른 복음서에 우선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대의 순서에 있어서 우선한다는 것이지 내용이 우선하다든지 우선하는 복음서를 기초로 다른 복음서들이 기록되었다는 식의 사고는 극히 위험한 사고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경륜하심과 능력이 위대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어느 부분도 확실하지 않을까봐 다른 방법으로 특별히 여러 문건들의 상호 비교로 역사적인 개연성을 추구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성경 외에 외경이나 위경이 경전이 될 수 없던 것은 성경 66권으로만 하나님의 모든 것이 설명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성경의 개별적 완전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만일 복음서 우선의 문제가 그 시기외에 어떤 것에도 우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면 그것은 이미 성경의 개별적 완전성에 대한 의심의 회의가 되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하여 마태복음이 우선할 수도 마가복음이 우선할 수도 있다. 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가 확대되어 성경의 개별적 완전성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아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정죄할 수 있는 것이다.



ⅵ. 시기적 마태복음의 우선을 주장하면서


이미 앞에서 밝힌 대로 필자는 시기적인 우선으로서의 마태복음의 우선을 주장한다. 거기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마태복음을 첫 복음서로 보는 이유는 우선 마태복음의 표현 기록이 극히 직접적인 지식을 토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자기 자신의 일차적인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마가복음의 저자나 누가복음의 저자는 직접적인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히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의지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성령의 역사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을 감안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기초로 볼 때 사도였던 마태가 훨씬 더 명확한 지식이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동안에 사도들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교훈, 죽으심, 부활 등을 가르쳤다. 그것은 사도 이후 속사도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일종의 원리 (Text)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초대교회에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 사후 근접 기간에는 그것이 큰 문제였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렇다면 사도의 권위는 더욱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고 자연히 그 기준은 사도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이 시기적으로 우선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단편 기록물들에 관한 기록으로서 누가복음 서문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필자는 누가복음 서문을 토대로 이미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나 구전이 있었던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문맥상 오히려 누가가 독자 (데모빌로)에게 쓴 이유는 그러한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잘못하면 성경이 아닌 소설 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팽배할까봐 아니면 성령의 감화 받은 저자가 확실히 하기 위하여 기록을 하였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눅 1:1-4)

그리고 그 문맥에는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 이라는 표현을 볼 때 과연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 누구였겠는가이다. 아마도 명확하게 우리는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옆에서 목격한 사람이고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화로 볼 수 있다. 이미 이야기 한 대로 성경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기록이 되었다. 다른 자료를 이용하여 성경이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다른 세속적 저작물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이는 성경 속의 인용은 오직 신약의 경우 구약의 말씀이 이룬 것을 확실하게 하려고 다시 제시되곤 하였다. 만일 누가의 고백대로 뭔가 성령의 감화로 인하여 참고 할 사항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사도로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도의 저작이나 가르침을 참고로 했을 것이다.

또한 어거스틴이나 초대 교부들과 특별히 칼빈 역시도 이 공관복음 문제에 있어서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는 것이며, 전통적으로 마가보다는 마태복음이 시기적으로 우선했다는 것에 아무런 의구심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이러한 공관복음의 문제에 있어서의 해결책이 18세기에 이르러 인본적인 성향을 흘렀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Ⅲ. 결 론


이제 필자는 상기의 논의대로 공관복음의 문제를 해결의 결론으로 시기적 마태복음 우선을 진술하였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내용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성령의 축자영감에 의한 성경의 무오성이며, 성경 개별책의 완전성이다.

공관복음의 문제는 축자영감의 부정으로부터 과학적 합리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공관복음의 문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계속적으로 복음서의 우선이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나 권위 심지어 한 복음서를 기본 근본자료 (basic source) 사용하였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큰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성경이 완전하듯 그 복음서 하나하나도 하나님의 영의 역사 아래서 개별적으로 완전하다. 그 의도에 따라서 성령의 감동하심 그대로 기록된 것이다.

공관복음의 문제는 그 자체의 문제이기보다는 인간 의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결코 우리의 신학이 인본주의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 사물을 보는 눈이 관(觀)이나 주의(主義)이다. 우리가 바른 눈을 가지지 않으면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확고한 성경관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보수적인 정통적인 신학을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신학이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다.


참 고 문 헌


도날드 거쓰리,      공관복음문제,     이문장 역     한국로고스연구원  1995.

 

로버트 스타인,      공관복음서 문제   김  철 역     솔로몬출판사     1995.


랄프 P. 마틴,       신약의 초석 Ⅰ    장충하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이종윤 ,            신약개론              개혁주의신행협회   1996.


Eta Linnemann,     Is There A Synoptic Problem?   Baker bookhouse    1993.


Henry C. Thiesse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Westminster 

bookhouse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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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서론
신약, 공관복음신학

2008/06/06 10:39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51938162

마가복음 서론

 

 

1. 최초로 기록된 복음서

 

마가 복음 662절 이 가운데 609절이 마태복음에(95%), 357절이 누가복음에(65%)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두 복음서중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마가복음본문은 30절 뿐이다. 복음서 전반에 걸친 사건의 일반적인 순서가 마가복음의 순서이다. 가장 짧은 복음서이다.

 

2. 기록시기

이는 구체적으로 언제 기록되었느냐하는 저작 연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본문이 어느 시기에 즉 어떤 역사적 배경 가운데서 기록되었는가를 알아내는 일이다. 유다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사움을 일으킨 유대전쟁(the Jewish War) 이후인 주후 7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가복음을 고난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70년경의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하고 적절 하다가 생각되는 교훈을 우해 예수의 수난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 중에서 일부를 골라 자료로 삼아 자기 시대 기독교인들을 위한 설교를 제시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고난당하는 교회, 고난당하는 교인들에게 주어진 설교였다.

 

3. 이적의 복음

박해와 고난의 시기에 기록되었기에 수난설교가 차지하는 위치는 막중하며, 이에 못지않게 이적 이야기가 폭넓게 이야기 되고 있다(200여절, 약 삼분지일에 해당됨). 이적 이야기는 1장에서 시작하여 11장에서 거의 연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적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1)"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예수를 기록했고,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하려 했다.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의심을 가질지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예수의 초자연적, 초인간적 능력을 수많은 이적들을 통하여 과시함으로써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던 독자들에게 소망을 갖게 한다.

 

4. 마가의 구조

전반부(1-8 장)는 주로 이적이야기로 구성 -예수: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아들
후반부(9-16장)는      수난이야기로 구성 -예수: 고난당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 마가복음의 특징 - 이방 선교적 경향 초대 기독교는 유대인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시작되어 발전하였다. 그런데 60년대 박해가 심해지면서 특히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무너지면서 초대 기독교인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방 땅에서 복음 증거하여 개종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유대교와 갈등이 일어나면서 유대인 기독교인을 얻기가 힘들게 되었다. 기독교 복음의 이방화가 시작된 것이다. 악한 포도원 농부비유-막 12:9-11/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인물-이방인 백부장 15:39  * 마가복음의 기록자와 기록 장소 저자의 정체를 알아낼만한 근거 자료가 하나도 없다. 파피아스 감독의 말에 근거해서 베드로의 통역자였던 마가가 기록자로 인정해 왔다. 이 마가는 사도행전에 언급되는 요한 마가와 동일인물로 생각된다.골 4:10/행 12:25/행 15:37/벧전 5:13등에서 언급되는 요한 마가는 베드로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며, 동시에 바울과도 밀접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에 마가복음의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 기록 장소도 로마로 언급되기도 했으나 기록장소에 관해서도 확실한 결론은 없는 상태이다. 

 

* 마가복음에 따른 예수의 생애

1)예수의 준비시대 /1;1-13
2)예수의 갈릴리 선교/1;14-6:6
3)예수의 이방 세계 선교/6:7-10:52
4)예루살렘의 일주간/11:1-15:47
5)예수의 부활/1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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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서론 - 최세창,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 글벗사
신약, 공관복음신학

2008/06/06 10:36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51938051

 

 

마가복음 서론

 

최세창,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 글벗사

 

 


Ⅰ. 마가복음 우선설

주후 이, 3세기경에는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을 간략하게 베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다(C. R. Erdman, p. 125). 5세기 초 신학자인 어거스틴(Augustine)은 마태복음이 최초의 복음서이며, 다른 두 복음서는 마태복음에 의거한 것, 즉 마가복음은 그것을 발췌한 것이며, 누가복음은 그것을 보완한 것이었다고 하였다(이상근, p. 7) 특히, 어거스틴(Augustine)은 마가를 가리켜 “마태의 발자국을 따르는 노예이며, 그의 요약자이다.”라고 하였다. 이 점에 대해, 빅켈스테트(E. Bickersteth, p. 4)는 마태가 길게 연결한 내용들을 마가가 베드로에게서 받은 것을 따라 더욱 간결하게 연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무튼, 어거스틴(Augustine)의 주장은 18세기말에 이르기까지 아무에게서도 의심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오래도록 마태복음의 요약서로 간주되어 소홀히 취급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성서 비평학이 대두되면서 종래의 정설은 비평의 대상이 되었고, 1835년 라흐만(Lachmann)이 비로소 마가복음 우선설을 제창하였다. 이 가설은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유력한 지지를 얻게 되고, 현대에 와서는 신약 학자의 대다수가 이를 지지하기에 이른 것이다(이상근, p. 7).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마가복음의 우선성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메시아 의식의 발달이 추적될 수 있는 근거인 예수님의 생애에 관하여 신뢰할 만한 역사적 설명을 발견한 홀츠만(Holtzmann, 1860s)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성서 비평학의 확증된 결과 중 하나는, 마가복음이 네 복음서 중에서 제일 오래된 것이라는 점이다(J. N. Davies). 이제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보다 더 이른 작품으로 널리 믿어지고 있다(C. F. D. Moule, p. 5). 그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던 마가복음이 지금은 공관복음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E. F. Harrison).
그 중요성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 p. 1)는 “마가는 예수의 생애를 쓴 첫 번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예수의 생애를 적어 두려는 보다 이른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확실히 잔존한 것으로는 최초의 예수의 생애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윌손(R. M. Wilson, p. 799)은 “지금은 마가복음이 최초의 정경으로 인정받은 복음서로서 인식될 뿐만 아니라, 마태와 누가가 각자의 작품을 구성하는 데 사용한 근거들 중 하나로 널리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지식을 얻는 데 우선적인 권위가 있다.”라고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 우선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마가복음은 105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93항이 마태복음에 나타나고, 81항이 누가복음에 나타난다. 결국 마가복음의 4항만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포함되지 않는다. 마가복음에는 661절이 있고, 마태복음에는 1,068절이 있으며, 누가복음에는 1,149절이 있다. 마가복음의 661절 중 606절 이상이 마태복음에 재현되고, 320절이 누가복음에 재현된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재현되지 않는 마가복음의 55절 중 31절은 누가복음에서 발견된다. 결과적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마가복음의 구절은 겨우 24절뿐이다(W. Barclay, p. 2).
(2) 세 복음서에 같은 문제가 실린 것을 보면, 대체로 마가가 사용한 낱말의 51%를 마태가 재현하고, 53%를 누가가 재현하고 있다. 문제를 더욱더 확실하게 하는 것은 마태와 누가가 마가의 사건 순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W. Barclay, p. 2). 순서가 다른 경우에도 마태와 누가는 동일한데 마가만 다른 경우는 전혀 없다. 항상 둘 중 하나는 마가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W. Barclay, C. E. B. Cranfi- eld).
(3) 마태와 누가는 문법적으로나 문체적으로 마가보다 더 부드럽고 또한 더 정확하다. 이 사실은 마가의 미숙한 문장을 헬라어에 능숙했던 마태와 누가가 보충하고 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마가가 복잡하게 했거나 범한 잘못이 다른 두 복음서에는 없거나, 덜 예리한 형태로 나타난다(막 4:38 후반과 마 8:25, 눅 8:24 ; 막 6: 5과 마 13:58 ; 막 10:17-18과 마 19:16-17 등).
(5) 마태와 누가가 마가에 의거하면서 이를 보충하였다. 가령 (전자가 마가복음, 후자가 마태복음) 1:15과 4:17, 1:32과 4:24, 1:42과 8:3, 2:14과 9:9, 4:39과 8:26, 5:2과 8:28, 6:3과 13:55, 6:4과 13:57, 8:10과 15:39, 9:32과 17:23, 9:34과 18:1, 10:18과 19:17, 10:35과 20:20, 10:46과 20:30, 11:2과 21:2, 14:11과 26:15, 4:40과 26:43, 15:23과 27:34 등을 들 수 있다(이상근, p. 8).
(6) 마가복음은 보다 간략하면서도 정서적 면에서는 더 생생한 점들이 있다. 가령 7:37, 9:24, 10:18, 32, 11:18, 12:34, 14:13-34, 16:18 등에는 즐거움과 슬픔과 노여움 등의 감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생생한 감정의 묘사는 베낀 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7) 마가는 마태의 보다 더 뚜렷한 신학적 진술을 보다 더 모호한 진술로 줄였다. 또한, 마태에게 있어서 성서의 성취에 대한 보다 더 뚜렷한 지시들이, 마가에서는 보다 덜 뚜렷한 형태로 제시되었다(H. C. Kee).
(8) 두 복음서들에 있는 내용이 마가복음에는 생략되었다. 그 예로, 산상설교와 그 밖의 설교 자료들과 예수님의 탄생 및 유아기의 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H. C. Kee, p. 15).
(9) 마가에게서는 제자가 부활 이전의 예수님을 일컫는 양식인 ‘선생님’ 또는 ‘랍비’라는 호칭이 충실히 반영되는 반면에, 마태와 누가에게서는 부활 이후의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용법을 반영하는 ‘주’라는 칭호를 자주 보게 된다(C. E. B. Cranfield).
(10) 앞(8)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Q(‘근거 자료’를 의미하는 독일어 Quelle의 약자)를 들 수 있다. 이는 간략한 역사적 부분들로서 흩어져 있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모은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공통된즌 부분 중에서 마가복음에 있는 것들을 뺀 나머지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다.■■■■■■마가가 Q를 알았다고 하는 것이 그럴듯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Q에 정통했으나 고의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혹은 그가 보고하는, 예수님의 말씀들 중 일부가 Q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E. Schweizer, p. 11).
위의 근거들로 미루어 오늘날 마태 우선성의 지도적인 선수권 보유자로서, 마가가 마태와 누가의 중간기임을 인정했으며, 따라서 누가는 마가를 자신의 근거들 중 하나로 사용한 반면에, 마가는 마태로부터 자신의 자료를 끌어냈다고 하는 파머(Farmer)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Ⅱ. 저자

최초의 복음서이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가복음은 본래 익명으로 되어 있다. 그란트(F. C. Grant, p. 632)는 “그 책 자체에는 저자 자신의 이름을 암시하는 곳이 없다. 저자가 야외에서 도망한 청년이었다고 하는 설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p. 632)는 “마가복음의 저자를 꼭 요한 마가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 점에서는 슈바이처(E. Schweizer, p. 24)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하리슨(E. F. Harrison)은 “마가는 예수께서 잡히신 후 제자들이 도망했을 때, 예수를 따라간 청년을 말할 때에만 복음 속에 자신을 집어넣었다. 병정들이 그를 붙잡자 베 홑이불을 벗어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가서 잡히지는 않았다(막 14:51-52). 그러한 고립된 사건을 소개함으로 다른 이보다 작자를 논리적으로 지적한다.”라고 하였다. 스타우퍼(Stauffer) 역시 “마가는 그 자신의 초상화를 이 밤의 풍경의 어두운 구석으로 집어넣고자 한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또한, 같은 견해를 표명한 데이비스(J. N. Davies, 996)는, “찬(Zahn)과 바틀레트(Bartlet)는 복음서에 대한 마가의 서명은 오직 이 복음서에서만 말해진바 겟세마네 동산에서 거의 체포될 뻔했던 청년에 관한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 까닭은 그 이야기가 청년을 저자인 마가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요한 마가를 저자로 보는 버딕(D. W. Burdick, p. 987)은 “마가복음의 저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긍정적인 일치를 마련해 주는 데 유용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라고 하였고, 산너(A. E. Sanner, p. 275)는 “마가복음은 본래 익명으로 되어 있으나(사복음서의 명칭은 모두 후에 붙여졌다), 그 저자가 요한 마가였다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하였다. 이 학자들 외에도 헨리(M. Henry, p. 449), 클라케(A. Clarke, p. 835), 반즈(A. Barnes, p. 147), 모울(C. F. D. Moule, p. 4), 얼레(R. Earle, p. 131), 스테벤즈(J. D. Stevens, p. 95), 고울드(E. P. Gould, p. XVI), 빅켈스테트(E. Bickersteth, p. iv), 버딕(D. W. Burdick, p. 987), 데이비스(J. N. Davies, p. 996), 윌슨(R. McL. Wilson, p. 799), 콜(R. A. Cole, p. 28), 마샬(I. H. Marshall, p. 104), 헨드릭슨(W. Hendriksen, p. 3), 스위프트(C. E. G. Swift, p. 851), 米田豊(p. 71), 번(J. H. Burn, p. 1), 바클레이(W. Barclay, p. 3), 어드만(C. R. Erdman, p. 125), 하리슨(E. F. Harrison), 크란필드(C. E. B. Cranfield), 黑崎幸吉(p. 25), 이상근(p. 16), 마경일(p. 21), 池東植 등이 같은 견해를 표명하였다.
본서의 저자 및 정경성에 대한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2세기 초에 기록된 헐메스의 목양서(Shepherd of Hermes : 130년경)에 본서의 반영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외증은 파피아스의 증언이다”(이상근, p. 14).
본서의 저자에 관한 유일한 언급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감독이었던 파피아스(Papias : 주후 140년경)의 글에서 발견된다. 이 글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3권 39. 15(Eusebius, Church History, III. 39. 15)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장로는 또 이와 같이 말하곤 하였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으로서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들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닐지라도 기억하는 한 정확하게 썼다.’ 그는 직접 주의 말씀을 듣지도 못했고, 그의 개인적 추종자인 적도 없었지만, 이미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그 후에 베드로를 추종했던 것이다. 베드로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교훈들을 적용하곤 했으나, 주의 말씀에 대해 앞뒤가 맞는 설명을 끌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마가는 기억나는 대로 어떤 일들을 기록함에 있어서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다. 그 까닭은 그가 들은 내용들을 빠짐없이, 그리고 틀림없이 기록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 중 장로와 파피아스(Papias)의 말이 각각 어느 정도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현대 학자들은 분명하게 장로의 말은 첫 부분에 국한되고, 그 나머지 부분은 파피아스(Papias)의 주석이라고 한다. 그 장로는 아마 장로 요한인 것 같다.
슈바이처(E. Schweizer, p. 25)는 “파피아스(Papias)의 증언은 그가 순전히 전설인 다른 자료를 위해 비슷한 근거들을 언급하므로 의심스럽다(16:18을 보라). 베드로가 통역의 도움으로 선교 사업을 수행했을 리가 없으며, 그리고 ‘교훈’과 ‘기억’(회상기)이란 표현은 베드로의 설교에도 마가의 책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기본적인 반대는 마가에는 특히 베드로적 전승의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약간의 흔적이 있을 뿐이다(cf. 1:29-31). 베드로전서 5:13은 마가와 베드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베드로가 그 구절을 썼을 리가 없다). 반면에 이 언급은 파피아스(Papias)에 이른 지식의 근거일 수도 있다.”라고 하여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池東植 님은 “당시의 팔레스틴 지방에는 희랍어가 유포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대개 아람어와 희랍어의 두 국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뿐더러 베드로 자신에게도 그 형제 안드레나 마찬가지로 아람어 이름과 희랍어 이름이 있었던 것이니 베드로라는 말 자체가 게바에 대한 희랍어 번역인 것이다. 이 모든 점으로 비추어 볼 때에 베드로는 어느 정도 희랍어에 통달했을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저에게는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찬(Zahn)은 자신의 상세한 연구의 결과, 파피아스(Papias)가 말한 헤르메뉴테스(?ρμηνευτ?? : ‘통역’, ‘번역자’)는 베드로가 예수께 대해 말한 바를 알기 쉽게 말해 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말하기를, “마가를 베드로의 통역이라고 하는 까닭은 우리가 저를 통하여 베드로의 선교에 대한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가가 경우에 따라서 실제로 통역 노릇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마가와 베드로 사이가 조화되지 않거나 무관하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池東植 님은 “고대 교회의 모든 전승은 마가복음과 베드로의 선교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즉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선교를 자료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베드로의 복음서’ 또는 ‘베드로의 신학서’라고 함은 잘못일 것이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마가복음 중에는 베드로의 자태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막 1:16 이하, 3:16, 8:9).”라고 하였다. 米田豊(p. 71)도 “본서 중에 베드로에 관하여는 자세히 기록되고, 또 본서의 문체가 베드로의 성질을 실로 잘 나타낸 데가 많다는 데서도 그것이 엿보여지는 것이다. ‘곧’, ‘즉시로’ 등의 말이 많은 것은 그 일례이다.”라고 하였다. 물론, “마가복음의 자료가 베드로 한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본 것은 파피아스(Papias) 자신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F. C. Grant, p. 630).
그러나, 마가복음의 저자 및 베드로와의 관계에 대한 파피아스(Pap- ias)의 증언은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파피아스(Papias) 직후에 순교자 저스틴(Justin, Dial. Trypho 106, 150년경)은 본서를 ‘베드로의 회상의 기록’으로서 언급하였다.
타티안의 ‘4복음의 종합’(Tatian, Diatessaron, 160년경)에도 본서가 나타난다.
마가에 대한 반 말시온 서언(The Anti-Marcionite Prologue to M- ark, 160년경)에도 “마가의 손가락은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해 짧았으므로 몽당손을 가진 자라고 불렸고, 베드로의 통역자이었다. 베드로가 죽은 후, 그는 이 복음을 이탈리아 지방에서 기록하였다.”라고 하였다.
주후 180년경, 리온(Lyons)의 감독이었던 이레니우스(Irenaeus, 130? -202?)는 ‘이단에 반대하여’(Against Heresies, III. 1. 1)에서, “죽은 [베드로와 바울의] 후에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이었던 마가는 ”베드로가 선포한 것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함으로써 파피아스(Papias)와 같은 견해를 나타내었다. 이 점에 대해 후기 전승의 대부분은 두 사람 중 어떤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의 메아리임을 나타내 주었다(F. C. Grant, p. 630).
오리겐(Origen, 185?-254?)은 베드로전서 5:13을 인용하면서 “베드로가 가르친 대로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하였고, 베드로는 공동 서신에서 그 마가를 아들로 인정하였다”(Eusebius, H. E., VI. 25. 5)라고 하였다.
오리겐(Origen)의 스승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 exandria : 150?-213?)는, “마가복음을 쓴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말씀을 공공연하게 전했고, 또한 성령에 의해 복음을 전한 후에,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베드로를 따라다녀서 베드로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마가에게 베드로가 말한 바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가는 그렇게 하여 부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어 주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적극적으로 금하지도 격려하지도 않았다.”(Eusebius, H. E. VI. 14. 5f)라고 하였다.
모울(C. F. D. Moule, p. 5)은 “최근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진짜 편지인 것 같은 사본에도 베드로의 언급이 마가의 구성 부분의 자료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터틀리안(Tertullian : 160?-220?)은 자신의 논문인 ‘말시온에 반대하여’(Against Marcion, IV. 5)에서, “마가가 공표한 복음서는 마가를 통역으로 삼았던 베드로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Fragment : 180-200), 즉 미숙한 라틴어로 쓰여졌고, 밀란(Milan : 이탈리아 북부 롬바디의 한 주, 그 중심 도시)에 있는 암브로시스 도서관(Ambrosian Library)에서 그것을 발견한 무라토리(L. A. Muratori : 1672-1750) 추기경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불완전한 신약 목록은, 신약 정경사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무라토리 단편의 첫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곁에 있으면서 그것을 기록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본서의 저자가 마가임을 나타내 준다.
히폴리투스(Hippolytus : 170?-236?)는 마가복음을 가리켜, ? κολοβ-οδ?κτυλο?라고 했는데, 이 말은 원래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잘라 버린 자, 다시 말하면, 의무를 기피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폴리투스의 말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 어떤 이는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전도 여행을 하던 도중에 중퇴한 자임을 의미한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마가복음이 미완성품임을 의미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스트리터(Streeter)는 그 말에 대해서 두 가지 뜻을 인정하고 있다. 즉, 마가복음의 저자가 의무 기피자라는 것과 그 복음서가 미완성품임을 뜻한 것이라고 하였다(Streeter, The Four Gospels, 1930, pp. 336-337).
주후 320년경(?)에 가이사랴의 감독으로서 헬라어로 교회사를 쓴 유세비우스(Eusebius)도 본서의 저자를 마가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마가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첫 감독이 되었고, 마가의 권위 아래 그 곳에 교리 문답 학교가 설립되었다고 하였다.
제롬(Jerome : 347-420)도 베드로의 통역이며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첫 감독이었던 마가가 자신의 스승의 설교를 따라 본서를 썼다고 하였다(Comm. in Matthew).
위와 같이 2세기 이후 본서에 관한 외증은 한결같이 베드로의 통역인 요한 마가의 작품임을 나타내 준다.
본서 자체의 내적 증거는 베드로에게서 들은 바를 토대로 본서를 기록했다고 하는 외증과 부합한다.
앞서 말한 대로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의 자태가 뚜렷하게 드러날 정도로 그에 관하여 자세하게 기록되었다(막 1:16, 3:16, 8:9 등). 특히, 그에 대한 비난이나 불명예스런 말이 자주 나타나는데(8:32, 9:5-6, 10:28, 31 등), 이는 베드로 자신의 겸손한 고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다락방과 거기서의 성찬 준비 광경(14:12-16)은 다른 복음서(마 26:17-19, 요 13:1)보다 더 자세하다.
버딕(D. W. Burdick, p. 987)은 “마가복음의 저자는 팔레스틴과 특히 예루살렘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자세한 지리적 언급(11:1)은 그가 그 지역을 잘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의 헬라어에는 팔레스틴 언어인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증거가 있고, 또한 그는 아람어를 알고 있었다(5:41, 7:34). 그는 유대의 제도와 관습에 정통하였다(1: 21, 2:14, 16, 7:2-4). 이 모든 특성들은 저자가 팔레스틴 유대인임을 지시해 준다. 그리고 사도행전 12:12의 요한 마가의 집이 예루살렘에 있었으므로 그가 이제까지 말한 내용에 적합하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버딕(D. W. Burdick, p. 987)은 “마가복음의 윤곽과 가이사랴의 베드로의 설교(행 10:34-43)의 윤곽 사이에 놀랄 만한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 주목되어 왔다.”라고 하였다.
어드만(C. R. Erdman, p. 126)은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친구요 길동무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의 동역자’였으며, 그로부터 ‘복음을 받았다.’ 마가복음이 유달리 실감적인 것도 이러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함께 여행하는 동안에 그 모든 신나는 이야기를 베드로에게로부터 듣고 또 듣고 하는 동안에 마가는 그 모든 이야기의 장면을 자기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환히 알게 되어 마침내 본서를 기록할 때에 그대로 묘사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그가 목격자와 같이 정확하고도 힘있는 필치로 사건의 시간과 장소와 그 사건이 생기게 된 형편조차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조금도 이상히 여길 바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본서의 저자인 마가는 신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편이다. 그의 이름은 마가로도(행 15:39, 골 4:10, 딤후 4:11, 몬 24, 벧전 5:13), 요한으로도(행 13:5, 13), 또 요한 마가로도(행 12:25, 15:36) 나타난다.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다.
빅켈스테트(E. Bickersteth, p. iv)는 “마가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해머를 뜻하는 ‘Marcus’에서 파생되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마의 흔한 이름이었던 ‘Marcus’는 대개 첫아들에게 붙여 주었다. 따라서, 마가는 영적인 의미에서 베드로의 첫 열매이자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다.”라고 하였다. 흥미 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유감스럽게도 마가가 베드로의 선교의 첫 열매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인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경건한 여인인 마리아이다(행 12:12). 마리아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고, 그녀의 집은 유명한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집으로 주께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곳이고(막 14:12-17),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120명의 성도가 모여 기도한 곳이다(행 1:15). 또한, 오순절에 교회가 탄생한 장소이었다(행 2:1-4). 그 후에 제자들은 이 집에서 계속 모였으며, 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탈출해서 찾아간 곳도 바로 이 집이었다(행 12:5-17).
“전설에 의하면 이 집은 시온산 꼭대기에 있었고,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에도(70년) 이 집만은 화재를 면하여 오래도록 교회로 존재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유적에는 기념 교회가 서 있다”(이상근, p. 16).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마가는 주의 구원 사업에 따른 말씀과 행위 그리고 그 장소와 상황 등에 대해 알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는 교양 및 종교 교육뿐만 아니라, 자기 어머니를 자주 찾아오는 교회의 지도자들과도 접촉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물론, 그는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니었다. 그는 구브로 섬에서 출생한 부하고 자선심이 많은 레위 사람 바나바의 생질이었고, 또한 베드로의 제자로 베드로에 의해 아들이라고 불렸다(벧전 5:13).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베 홑이불을 벗어버리고 도망한 젊은이로 짐작되는데, 그 까닭은 그 기사가 마가복음에만 있기 때문이다.
마가의 공생애의 출발은 오순절 이후 약 15년경, 유대 지방에 큰 기근이 있었을 때에 구제 헌금을 모아 온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때부터이었다(행 12:25).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수종자가 되어 제일차 선교 여행에 동행하다가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행 13:3-13).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바울은 제이차 선교 여행을 떠날 때, 다시 마가를 동반하자고 하는 바나바를 반대하다가 결국 갈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다(행 15: 36-41).
한때 실수했던 마가는 자신에 대한 바나바의 신임을 헛되게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바울의 신임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까지 받게 되었다. 마가는 로마에서 감옥 생활을 하는 바울과 함께하면서 그를 섬기기도 하였다(골 4:10, 몬 24). 바울은 마가를 가리켜, 자신의 동역자라고 하였고(몬 24),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 4:10)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바울이 두 번째 로마의 옥에 갇혔을 때에는 디모데에게 자신의 일에 유익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였다(딤후 4:11).
여기서 우리는 마가의 위대한 점, 즉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 외에 베드로와도 밀접한 관계이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신약성경 이외의 초대 교부들의 진술은 오히려 후자에게 집중되었다.
마가의 최후에 관한 것은 분명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본서를 쓴 후에 애굽으로 건너가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설립하고, 초대 감독이 되었다가 거기서 순교했다고 한다.
마가의 인물됨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 p. 9)이 잘 평하고 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추종자였다. 그는 건축가가 아니라 조수였다. 그는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약점을 극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집에만 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단한 여행가였다. 그는 탁월한 사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묘사하기를 즐기는 행동인이었다.”
또한, 우리는 그의 복음서의 세밀한 묘사를 미루어 그가 매우 세심하고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Ⅲ. 대상

마가복음을 가리켜, ‘로마인의 복음’이라고 하는 전설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게서 시작되었는데, 교회의 오래고도 이의가 없는 전설이 되었다. 즉, 본서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서의 수신자가 로마인, 더 넓게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본서 자체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1) 셈어의 용어와 표현인 보아너게(3:17), 달리다굼(5:41), 고르반(7: 11), 에바다(7:34), 아바(14:3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5:34) 등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
(2) 라틴어 낱말과 관용어가 다른 복음서들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되었다(4:21, 6:27, 12:14, 15:39, 44-45).
(3) 유대의 풍습과 습관적인 행위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7:34, 13:3, 15:42).
(4) 유대인에게 주된 관심사인 계보와 모세의 율법에 대한 언급과 구약성경을 인용한 것이 거의 없다.
(5) 마가복음 15:21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의 아들들, 즉 알렉산더와 루포가 등장하는데, 후자는 로마에 거주하는 루포이었다(롬 16:13).
(6) 주의 끊임없는 행동, 그리고 귀신들과 질병들, 심지어 죽음까지 제압하는 권능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논조는 말보다 행동에 더 관심이 있는 로마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Ⅳ. 자료

마가복음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자료가 베드로의 고백 및 설교라는 사실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Ⅰ. 마가복음 우선설. Ⅱ. 저자).
그 밖에 구전이나 기록들을 자료로 사용한 것 같다. 그러한 구절들 중에는 마가 자신이 직접 들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마가의 집이 최후의 만찬의 장소이자 교회로 이용되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
山口 昇(p. 46)은 구전에 기초한다고 생각되는 자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부류에 속하는 것은 대체로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말해진 결과 표현이 부드럽고 생생한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기사들은 최후에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나타나 맺어지고 있다(예 : 2: 18-20, 2:23-26, 3:31-35).” 이어서 그(pp. 46-47)는 서술이 상당히 대범하고,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전승에 기초한 마가의 정리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3:13-19(열 두 제자의 임명), 6:6 후반-13(열 두 제자 파송), 6:30-39(사도들의 전도 후의 휴식), 6:53-56(게네사렛에서의 치유) 등을 들고 있다.
마가도 Q(말로 된 자료를 뜻하는 것으로, 자료를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약자.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모은 것이나 지금은 잃어버린 자료)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 점에 대해 슈바이처(E. Schweizer, p. 11)는 “마가가 Q를 알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가 Q를 알면서도 고의로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혹은 그가 기록한 예수의 말씀들 중 일부가 Q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마경일(p. 24) 님은 “근대 비평학의 연구에 의하면, 본서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공통 자료인 Q와 일치된 전설을 채용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하였다.
현재 Q의 사용 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마가가 당시에 있던 어떤 문서를 참작했을 가능성은 있다. 브란스콤(B. H. Bransco- mb)은 2:1-3:6, 12-13장의 논쟁 기사와 4장의 비유, 14-15장의 고난에 대한 기사 등은 성문된 자료일 것이라고 하였다. 또, 1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에 관한 기사와 6-8장의 갈릴리 바다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기사 및 3장의 열 두 사도의 명단 등은 마가복음이 성립되기 전에 이미 성문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미미하기는 하나 구약성경도 자료로 사용되었다(1장의 구약 인용). 또한, 바울과 바나바 등과도 함께 지내거나 선교 여행을 한 점으로 미루어 그들의 복음적 설교와 교훈도 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부인되고 있는 원마가복음설(Ur-Markus Theo- ry)도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설은 현재의 복음서 이전에 원복음이 있었고, 거기에 현재의 공관복음 3서가 근거했다는 것이다”(Schleiermacher, Reuss). 또, “마가복음 3판설도 있다. 즉, 초판 마가복음(Proto-Mark)은 가이사랴에서 기록되어 누가복음의 근거가 되었고, 재판(Deuto-Mark)은 애굽에서 유대인을 위해 기록되어 마태복음의 근거가 되고, 마지막으로 3판(Trito-Mark)이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Cadoux, Holdsworth). 이 견해 역시 보수와 진보 양편에 의해 배격되고 있다(이상근, p. 20. 山口 昇, pp. 47-48). 

Ⅴ. 기록 동기와 목적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몇 해 동안은 예수님의 생애와 행적에 관한 사실을 기록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실상 그 중심 회원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직접 보거나 들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임박한 재림에 대한 소망 속에 살았으므로 문서화의 필요성을 더더욱 느낄 수 없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기는 말에 의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기억력에 의해 전달되기는 했지만, 역시 기억력이란 절대적일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전해지는 내용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혹은 덧붙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게다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많은 제자들이 순교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생각과는 달리 지연되고 있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을 정확하게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문서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한 시기에, 마가는 로마에서 활동하건 베드로를 도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위와 같은 동기와 특히 핍박을 받고 있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의 요청에 의해 본서를 쓰게 된 것이다.
본서는 후에 나온 누가복음과는 달리, 저자의 집필 목적을 제시해 주는 머리말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말한 동기와 내용 이해를 통해 마가의 집필 목적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가는 불신자가 아닌 로마 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초대 교회의 선전 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다”(F. C. Grant, p. 633). 마가의 의중에 있는 로마 교인들은 모진 핍박을 받고 있었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많은 제자들이 화형을 당하거나 굶주린 야수들의 밥이 되거나 창에 찔려 죽는 등의 순교를 하였다. 그래서, 마가는 형제들을 격려하고 후원하고 지도하고 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본서를 쓴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마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가르치고 싶어하였다. 특히, 그는 예수께서 인간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신 메시아이시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로마 교인들에게 핍박과 죽음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요한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는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셨기 때문에 메시아이시라고 하였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나 전기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교적이며 변증적이며 복음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A. E. Sanner, p. 279).

Ⅵ. 특징

마가복음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리이스바하(Griesbach : 1745- 1812) 이래 ‘공관복음서’(Synoptiker, συν?πτικο?)로 일컬어졌다(이상근, p. 3). 이 말은 ‘같이 보는 것’을 뜻하는 헬라어에서 따온 것이다. 세 복음서는 병행 기사와 같은 관점에서 본 공통적인 일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참조 : I. 마가복음 우선설).
그 중 마가복음은 일반적으로 최초의 복음서로 알려졌고, 따라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첫 번째의 보고서가 되므로 가장 중요하다. 바클레이(W. Barclay, p. 1)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제시해 주는 보다 이른 단순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확실히 남아 있는 것으로는 최초의 예수님의 전기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견해이다.
케에(H. C. Kee, p. 5)는 마가의 문학적 특성에 대한 가장 뚜렷한 평가로, 복음서 기자들의 문학적 특성, 특히 마태와 마가의 문학적 특성에 대한 디벨리우스(Dibelius)의 설명을 인용하였다. “의심할 것 없이 복음서들은 비문학적 문서들이다. 그 책들은 문학 작품들과 비교되어서는 안 되고, 또한 비교할 수도 없다.■■■■■■그 책들은 자료의 편집이다. 그 구성자들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저자들이다. 그들은 주로 전승을 수집한 자들 곧 편집자들이다.”
본서의 문체는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마가는 요한에게서 현저한 사건에 대한 주해 없이 간단 명료하게 사건을 전한다. 따라서,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그 분량이 적다.
간접 화법보다 직접 화법을 많이 사용하였다(4:39, 5:8, 9, 12, 6:23, 31, 9:25, 12:16 등).
다른 복음서들의 지배적인 과거형 대신에 역사적 현재형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런 예가 무려 151회 가량 발견된다(1:40, 44, 2:3, 10, 17, 11:1, 14:43 등).
이야기가 이상할 정도로 급박하게 전개된다(C. F. D. Moule, p. 3). 이와 관련되는 것으로 ‘곧 또는 즉시’(ε?θ??)라는 부사가 무려 41회나 사용된다(1:10, 12, 18, 20, 21, 23, 28, 29, 30, 42, 43 등). 이에 비해 마태복음에는 7회, 누가복음에는 1회만 나타난다.
마가가 사용한 헬라어는 팔레스틴의 용어인 아람어를 직역해 놓은 것 같은 흔적이 있고, 때로는 아람어를 그대로 인용하여 이를 번역해 놓은 구절이 많다(5:41, 7:34, 14:36, 15:34).
본서에는 로마에서 흔히 사용되는 라틴어가 다른 복음서보다 많이 나타난다. 특히, ‘렙돈’(12:42)이나 ‘뜰 안’(15:16)이라는 일반 용어인 헬라어를,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는 라틴어인 ‘고드란트’나 ‘브라이도리온’(praetorium) 등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본서에는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이방인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점은 성전 숙청 사건(11:17)과 미래의 복음 선교(13:10, 14: 9)와 관련해서 알 수 있으며, 또한 본서가 이방인, 특히 로마인을 위한 복음서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참조 : 제 1부 Ⅲ. 대상).
본서는 행위의 복음이라 할 수 있다. 즉, 설교는 간략하게 언급된 반면에 이적담은 풍부하다. 복음서들에는 36가지의 이적이 실려 있는데, 그 중 네 복음 공통의 것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사뿐이고, 세 복음서에 공통되는 것이 11가지, 두 복음서에 공통되는 것이 7가지, 그리고 한 복음서에만 실린 것이 17가지이다. 본서에는 19가지의 이적이 실려 있는데, 그 중 2가지는 본서의 독특한 이적이다. 즉, 본서에는 전체 이적담 중 과반수가 실려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자주 사용하신 비유만 해도 본서에는 5가지뿐이다(그 중 2가지는 본서의 독특한 것). 이러한 사실은 ‘강론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마태복음과 대조된다.
본서에는 인명(1:29, 36, 2:25-26, 3:6, 11:11, 21, 13:3, 15:21 등)과 때(1:32, 35, 2:1, 4:35, 6:2, 11:11, 19, 15:25, 42, 16:2)와 장소(2:1, 13, 3:7, 20, 4:1, 5:20, 7:31, 12:41, 13:3, 14:68, 15:39, 16:5), 그리고 숫자(5:13, 6: 7, 14:30)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본서의 기사, 특히 예수님에 관한 기사는 매우 생생하며 사실적이다(1:22, 27, 41, 3:5, 4:21, 6:30, 34, 8:2, 12, 10:14, 21, 32, 14:33-34). 이 점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마가는 본서의 중심 인물인 예수님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그의 사적과 그 경험을 기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에 대해서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일절 기록하지 않았다.
산너(A. E. Sanner, p. 276)는 “마가가 예수님의 위대한 사업을 목격한 사람들을 포함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학적 신앙과 확신을 반영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마가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하나님의 종’(cf. 사 52:13-53:12)으로 묘사하고, 그분을 가리켜 ‘인자’라고 일컫는다(8:31, 9:9, 12, 31, 10:33, 45, 14:21, 41 등. 모두 14회 나타난다).
본서는 ‘종의 복음’, 또는 ‘수난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수난 기사가 그 중심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또, 분량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공생애 중 마지막 수난 주간의 기사가 전체의 삼분의 일을 넘는다.
예수님의 수난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서의 수난이며 ’언약의 피‘로서의 수난이다.
번(J. H. Burn, p. 4)은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메시아를 지시해 주고, 마가는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인류의 왕을 묘사해 주고, 누가는 죄인들의 신성한 치료자요 구세주를 그려 주고, 요한은 육체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재와 신성을 선포한다.”라고 하였다.
본서의 자료 중 대부분은 베드로에 의거하고, 그 구조는 베드로의 가이사랴 설교(행 10:37-43)와 상통한다(참조 : Ⅱ. 저자). 그러므로 본서는 영광스럽게도 ‘베드로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어드만(C. R. Erdman, p. 125)은 “마가복음은 청년의 복음이다. 그 내용이 어찌 간단하고 선명하며 활발하고 힘있는지, 현대의 활동적이고 분주하고 활발한 정신에 꼭 맞는다.”라고 하였고, 이어서 “주님을 능력 있고 이상한 일을 많이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냈으며,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요구되는 세대에 특별한 교훈과 그리스도의 무한한 구속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다.”라고 평하였다.

Ⅶ. 기록 연대와 장소

본서의 기록 연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교부들의 증언과 본서의 내적 증거의 양면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다.
‘마가에 대한 반 말시온 서언’(The Anti-Marcionite Prologue to Mark)에 의하면, “베드로가 죽은 후에 그는 이 복음을 이탈리아 지방에서 썼다.”라고 하였다(참조 : 제 1부 Ⅱ. 저자). 그리고 주후 180년경에 리온(Lyons)의 감독이었던 이레니우스(Irenaeus : 130?-202?)는 ‘이단에 반대하여’(Against Heresies, Ⅲ. 1. 1)에서 “죽은 [베드로와 바울] 후에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이었던 마가는, 베드로가 선포한 것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하였다(참조 : 제 1부 Ⅱ. 저자).
결국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죽은(64년경) 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즉, “이 경우 베드로와 바울의 ‘사’후라고 번역하였으나 ‘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엑소도스(?ξ?δο?)는 ‘출발’이라든가 ‘탈출’(히 11: 22)”로 번역되는 말이다■■■■■■따라서, 이곳은 베드로와 바울이 어딘가에 출발한 후에 마가가 베드로의 말한 것을 복음서로서 기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누가복음 9:31(일 개역 : ‘별세’), 베드로후서 1:15(일 개역 : ‘떠난’)에서는 ‘죽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는 베드로의 사후에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하였다고 해석되고 있다“(山口 昇, pp. 27-28).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 150?-213 ?)는 “마가복음을 쓴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말씀을 공공연하게 전했고, 또한 성령에 의해 복음을 전한 후에,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베드로를 따라다녀서 베드로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마가에게 베드로가 말한 바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가는 그렇게 해서 부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어주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적극적으로 금하지도 격려하지도 않았다(Eusebius, H. E. IV. 14. 5f).”라고 하여(참조 : 제 1부 II. 저자), 본서가 베드로의 생전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롬(Jerome)과 오리겐(Origen)도 같은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다수는 베드로의 순교 후로 보고 있다.
본서의 저작 연대를 추정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70년)이다. 대체로 ‘소계시록’이라고 일컬어지는 본서 13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본서의 기록 연대는 베드로가 순교한(64년경? 65년경?) 이후와 예루살렘의 멸망 이전의 어느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연대는 매우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 차프만(Chapman)과 하르낙(Harnack)은 40년대 초, 비칼록(Bychalog)은 55-57년의 어느 시기, 얼레(R. Earle, p. 132)는 50-70년의 어느 시기, 스위프트(C. E. G. Swift, p. 851)는 55-60년 사이의 어느 시기, 만손(T. W. Manson)은 58-65년 사이의 어느 시기, 유세비우스(Eu- sebius)는 63년, 池東植 님은 64년경-70년경 사이의 어느 시기, 스테벤즈(J. D. Stevens)와 윌손(R. M. Wilson)은 65-70년 직전 사이의 어느 시기, 하리슨(E. F. Harrison)은 65-70년 직후 사이의 어느 시기, 바이쓰(Weiss)와 티쎈(Thiessen)과 테일러(Taylor) 등은 67-68년 사이의 어느 시기, 버딕(D. W. Burdick, p. 988)은 67-70년 사이의 어느 시기, 조덴(Soden)과 모파트(Moffatt)는 70-80년 사이의 어느 시기, 카임(Kaim)은 105-120년 사이의 어느 시기, 다빗손(Davidson)은 120년 이후, 그리고 튀뱅겐 학파에서는 본서를 베드로와 바울의 조화를 위한 책이라고 하면서 연대도 130-170년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한다.
결국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본서의 저작 연대를 베드로가 순교한 64년, 또는 65년 이후와 예루살렘이 멸망한 70년 직전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
마가복음서가 기록된 장소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고래로 일관되어 온 견해는 로마이다. 기록 연대를 논할 때에 언급된 대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 150?-213?)는 본서가 로마에서 집필되었다고 하였다. “그 후 고대의 증언들은 로마설에 거의 일치하고 있다(Hermes, Hipolytus, Epiphanaeus, Eusebius Tatian, 등).”
또한, 신약성경 자체에서도 유력한 외증을 찾을 수 있다. 디모데후서 4:11에는, 바울이 마가를 로마로 초청한 사실이 있고, 베드로전서 5: 13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와 같이 로마에 있었다. 이 외증 외에 내증도 로마설에 유리하다. 앞(제 1부 III. 대상)에서 우리는 본서의 수신자가 이방인, 특히 로마 교인들인 점을 밝혔다. 그 내증들은 그대로 본서의 집필 환경, 즉 집필 장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도 로마설을 따르고 있다.
그 밖에 알렉산드리아설과 안디옥설과 갈릴리설 등이 있다.
안디옥설은 4세기 후반의 교부인 크리소스톰(Chrysostom)이 “마가는 그 기록한 복음을 애굽에 전하였다”(Eus., H. E. ii. 16)라고 한 유세비우스의 말을 오해하고, 또 마가가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였다는 전설에 의거하여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지지하는 학자들이 없다.
안디옥설은 스토(Storr)와 바트레트(Bartlet)와 플러(R. H. Full- er)의 견해이다. 山口 昇은 플러(R. H. Fuller)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는 로마설은 현대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라틴어적 어법은 로마와 동시에 로마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던 팔레스틴에 있어서도 마가복음이 쓰여진 것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 마가와 베드로와 로마라고 하는 관계는 베드로전서 5: 13에 기초하여 2세기에 추측으로 [에 의해] 산출된 것은 [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가복음이 헬라어로 기록되고 바울에 가까운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그리스도론은 헬레니즘이었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마가복음의 전승은 팔레스틴의 전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이런 점으로 안디옥이 성립의 장소로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신약성서의 비평적 서론’).”
이어서 山口 昇은 “그러나 안디옥설도 단지 이방인 교회 중에서 팔레스틴에도 가까운 곳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결과되는 추측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그것 이상의 적극적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이 설에도 한계가 있다.”라고 비판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러나 마가는 바나바 및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 있었고,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제 1차 전도 여행을 보냄 받아 떠났다고 하는 사도행전의 기사(13:1-3 )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점과 함께 생각한다면 이 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마가는 바울 및 바나바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 예수의 복음을 말하는 일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위에 그것을 구두로 전달할 뿐 아니라 문서식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필요성에 눈뜬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그는 안디옥에서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하는 추측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마가가 위의 두 사람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는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간 사실(행 15:37-38)로 미루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갈릴리설은 마르크센(W. Marxen)이 주장하는 설이다. 그는 마가복음에 있는 라틴어 어법은 마가가 채용한 전승에 포함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로마설을 부정한다. 그리하여 마가가 갈릴리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갈릴리, 혹은 그 근처에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마가복음을 ‘갈릴리 복음’(the Galilean Gospel)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마태복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아마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형성되거나 수집된 예수 전승에 의존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주로 갈릴리 지역에 거주하던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보전되고 발전되어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김득중).
위의 주장에 대해, 山口 昇(p. 37)은 “그러나 마가복음이 갈릴리를 지향하여 맺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마가의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각 복음서의 특색을 찾아내어 이것을 모두 복음서 기자의 신학적 의도였다고 설명하려고 하는 편집사적 방법이 갖는 약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또, 그(p. 37)는 “같은 편집사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다가와도 마르크센(W. Marxen)의 입장을, 자칫하면 모든 것을 이념에 환원해 버리고 마는 독일 학문의 나쁜 경향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라고 소개하였다.
거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Eic- hhorn), 예루살렘과 안디옥(Allen) 등 두 장소에서 기록되었다는 절충설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위의 설들은 전통적인 견해인 로마설을 뒤집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며, 또한 내세우는 논지 역시 로마설에 비해 훨씬 빈약하다. 결국 우리는 마가복음의 집필 장소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견해로 로마설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Ⅷ. 마가복음의 끝 부분

본서의 끝 부분(16:9-20)은 신약성경의 본문 비평학에서도 매우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우선 사본들부터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초기의 것으로 중대한 사본인”(W. Barclay, p. 5) ?, B, 2386 등에는 없는데, “후기의 것으로 저급한 사본인”(W. Barclay, p. 5) A, C, D, K, Δ, Θ, Π, ?13, 28, 33 등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K 사본에는 ‘짧은 결말’(그리고 그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명령받은 모든 것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 자신도 그들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에 관한 신성 불멸의 메시지를 동쪽으로부터 서쪽에까지 선포하셨다.)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바로 나머지 사본들의 내용을 ‘긴 결말’이라고 일컫는다. 그 밖에 L, Ψ 사본 등에는 ‘짧은 결말’과 ‘긴 결말’(9-20절)이, 그리고 W 사본에는 9-14절과 ‘긴 결말’(9-20절)이 다 기록되어 있다.
9-20절이 마가가 쓰지 않았다는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위대한 교회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와 벌게이트(Vulgate : 라틴어로 번역된 카톨릭 교회의 성경)의 번역자인 제롬(Jerome)을 포함한 초대 교회의 몇몇 교부들은 9-20절이 생략된 사본들의 입장을 따랐다. 헨드릭슨( W. Hendriksen, p. 683)은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맨트(Clement of Alexandria)와 오리겐(Origen) 같은 초대 교부들은 그 구절들을 알았던 것 같지 않다. 주후 260년경에 출생하여 340년경에 죽은, 유명한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를 따르면, 마가복음의 가장 정확한 사본들과 거의 모든 사본들은 16:8로 끝맺고 있다. 아마도 유세비우스(Eusebius)가 죽은 해에 출생한 것 같고, 그 사람처럼 거의 80세에 죽은 제롬(Jerome)도 거의 모든 헬라어 사본들에는 9-20절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썼다.
많은 헬라어 필사본들이 9-20절을 포함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단순히 수의 많음이 아니라 적절하게 평가할 때, 그 균형은 생략 쪽으로 무겁게 흔들리게 된다.”
또한, 9-20절이 마가가 쓴 것이 아니라는 내적 증거가 있다.
첫째, 어법이 다르다. 마가복음 16:1-8에는 그 나머지 부분(1:1-15:47 )에 사용되지 않은 낱말이 겨우 네 개뿐이지만, 16:9-20에는 적어도 14개의 낱말이 사용되었다. 또한, 마가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다른 양식으로 사용된 낱말들이 있다(10, 11, 13절의 ?κε?νο?와 9절의 φα?νω).
고울드(E. P. Gould, pp. 302-303)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9-20절에 ?κε?νο?는 5회 사용되었는데, 공관복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요한복음에 자주 사용되었다. πορε?ομαι[가다]는 3회 사용되었는데, 복음서의 어느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το?? μετ’ ?υτο? γενομ?νοι?[그와 함께 있었던 자들, 즉 제자들]는 또 하나의 낯선 표현이다. θε?ομαι[보다]는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고, 그 밖의 곳에는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문장(9-20절)에는 2회 사용되었다. ?πιστ?ω[‘믿지 않다’, ‘불신하다’]도 이 문장에서 2회 나타나지만,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Μετ? (δ?) τα?τα[‘후에’, 또는 ‘이 일 후에’]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절이다. 그 절은 누가복음[5:27, 10:1 등]과 요한복음[3:22, 5:1, 6:1, 7:1 등]에 몇 번 나타난다. 사건의 계승을 지시하는 데 사용된 ?στερον[‘그 후에’, ‘나중에’]은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θαν?σιμον[치명적인]은 신약성경의 이곳에만 나타난다. βλ?πτω[‘ 상처를 내다’, ‘피해를 주다’]는 이곳 외에 누가복음 4:35에만 나타난다. συνεργο?ντο?[함께 일하는]는 바울의 애용어이며, 또한 야고보서에서 한 번 발견되지만, 복음서 중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난다. βεβαιο?ν[확증하다]은 바울 서신과 히브리서에서 발견되지만, 복음서 중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난다. ?πακολουθε?ν[‘따르다’, ‘참가하다’]은 디모데전서에 한 번, 베드로전서에 한 번 나타나지만, 복음서 중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난다.
클로스테르만(Klostermann)도 9-20절에 있는 마가의 어법이 아닌 낱말의 목록을 제시해 주고, 또한 그 문장에 마가의 애용어인 ‘즉시로’, ‘또. 혹은 다시’ 등과 같은 마가의 특색 있는 관용어가 없음을 언급하였다.
앞서 언급한 학자들이 제시한 용어에 대한 논의는 사본들이나 번역 성경에 따라 약간의 차이(어떤 사본들이나 번역 성경들에는 있으나, 다른 사본들이나 번역 성경들에는 없을 수 있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9-20절이 마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기에는 충분하다.
둘째, 문체 및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다. 고울드(E. P. Gould, p. 303)는 “이 부분은 우리 주의 현현에 관한 단순한 요약인데, 이는 마가복음에서는 전혀 낯선 설화 양식이다. 마가는 복음서 기자 중에서 가장 생생하고 생기 있는 문체를 나타내는데, 이 부분은 단순한 열거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p. 303)는 믿는 자들에게 따른다고 약속된 σημε?α[표적]의 성격을 들어 9-20절이 마가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그는 예수님에 의해 행해진, 남을 위한 표적이 아닌 표적들을 지적한 것이다. 웨셀(W. W. Wessel, p. 792)은 “8절과 9-20절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거북하다. 9절은 남성 주격 분사인 ?ναστασ[살아나신]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 선행사로 ‘그’ 곧 예수님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8절의 끝 문장의 주격은 예수님이 아니라 여인들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언급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언급되지만, 실은 십자가와 장례식 그리고 바로 앞의 부활 이야기에서 세 번 나타난다. 또한, 가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도록 명령받은 여인들(7절)이, 9- 20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무덤에 있던 천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의 현현은 예루살렘과 가까운 부근에 한정되었다. 이 모든 요인은 긴 결말에 대한 반대를 더욱 무게 있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웨셀(W. W. Wessel)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도록 명령받은 여인들(7절) 이하의 논의는, 같은 이유로 고울드(E. P. Gould, p. 304)와 헨드릭슨(W. Hendriksen, pp. 685-686)에게서도 논의되었다.
山口 昇(p. 40)은 “마태와 누가는 여기[1:1-16:8]까지는 서로 비슷하나, 이후가 되면 서로 다르다. 필경 여기까지는 마가를 자료로 하여 왔으나, 여기서 마가가 끝나 버렸으므로 이후는 마태나 누가가 독자의 자료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미루어 마가복음은 원래 16:8에서 끝난 것이고, 16:9-10, 16:9-14, 16:9-20 등은 후에 보충된 내용으로 보는 것이 권위 있는 현재 학자들 중 대다수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만장일치는 아니다. 버곤(J. W. Burgon), 렌스키(R. C. H. Lenski), 힐즈(E. F. Hi- lls) 등은 16:9-20이 마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수의 주장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된다. 즉, 마가가 실제로 복음서를 16:8로 끝내려고 의도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
전자를 주장하는 고울드(E. P. Gould, p. 304)는 “16:8로 마가복음이 끝나는 것은 모호하다. 그러나, 만일 이 모호성이 마가의 양식에 낯선 것이라면, 그것은 이 끝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없고, 다만 베낀 이들 중 어떤 이는 이 끝을, 다른 이는 ‘짧은 결말’을 제공하며 느꼈던 어려움만을 보여 줄 뿐일 것이다. 이 두 가지 결말이 있다는 것은 원래부터 9-20절이 없었다는 추정 증거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끝의 간결함은 복음서의 시작과 아주 병행하는 것이다. 그 시작과 끝은 둘 다 똑같이 복음서 기자의 주목적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가의 양식과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웨셀(W. W. Wessel, p. 793)은 16:8로 끝낸 것은 마가의 의도였다고 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적절하지 않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1) 초대 교회 자체가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강렬하게 느껴서 ‘짧은 결말’과 ‘긴 결말’을 삽입하여 증거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의미하는 책이 여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끝났다(마가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를 강조하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3)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리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록이 없다(참조 : 16:7).
헨드릭슨(W. Hendriksen, p. 687)도 마가가 복음서를 16:8로 끝낼 의도였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1) 일찍이 그와 같이 모호하게(?φοβουντο γ?ρ) 끝내는 책의 예가 없었다.
(2) 끝이 매우 모호할 뿐 아니라 매우 비극적이다. 마태복음 28:8을 따르면,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났다고 하였다. 반면에, 마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침울한 어조로 끝낼 의도였을까?
결국 우리는 마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16:8로 끝내려고 한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16:8에서 갑자기 끝난 것은 옛날 두루마리의 끝 부분이 손상되어 없어졌거나, 그 부분을 잃어버렸거나, 마가가 중병이 들었거나, 순교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모든 견해가 추측에 불과하므로 자세하게 논의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대체로 마가복음 16:9-20의 내용 자체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 내용인 부활하신 주의 현현과 그 결과로서의 승천과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 등은 초대 교회의 견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6:9-20은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나, 성령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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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4 06:50

 

 

 


김태희 원빈 - CF

김태희 원빈 - CF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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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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