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0 11:54

 

 

 


에트루리아Etruria

에트루리아Etruria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옛 나라로 그 영토는 지금의 토스카나 주, 라치오 주, 움브리아 주에 해당한다. 로마 공화정 이전에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주요 문명이다. 라틴어 문헌에는 티레니아(Tyrrhenia)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고대 에트루리아

고대 에트루리아인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고대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최초의 에트루리아인들이 기근을 피해 서쪽으로 항해해 온 소아시아의 서해안에서 온 리디아인이었다고 한다.(역사 제1권 94) 반면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이탈리아 본토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고대 로마사 1권 25~30장) 오늘날 학계에서도 두 주장에 각각 나름의 증거가 있다.[1]

에트루리아 문명은 고대 그리스처럼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졌다. 12개의 도시들이 에트루리아 연맹을 결성했다. 처음에 이들 도시들은 왕들이 통치한 듯하다. 이 중 어떤 왕조는 과두지배체제로 대체되었다.에트루리아에서는 금속세공업과 무역이 발달했다. 이들은 엘바 섬의 철과 에트루리아의 구리를 자원으로 이용했고, 금, 은, 상아 등에도 숙련된 세공 기술이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 이집트, 레반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카르타고와 긴밀하게 무역 활동을 했다.[2]에트루리아는 기원전 650년 경 이탈리아 반도의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북쪽으로 포 강 유역, 남쪽으로 라치오 주까지 그 영토를 확장하였고, 남부 이탈리아의 고대 그리스 식민지와 만나게 되었다.(마그나 그라이키아) 시칠리아나 마실리아의 그리스 도시들과 무역 경쟁을 벌이면서 에트루리아는 자연스럽게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게 되었다.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그후 100년간 로마를 지배했다. 로마는 농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또 로마의 간선 도로인 신성로(Via Sacra)의 건설도 이때 시작되었다. 또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수입하여 로마에 자리잡게끔 했다. 또 그리스 문자에서 온 에트루리아 문자로마 문자가 만들어졌다.

생활

고대 에트루리아인은 상아로 만든 주사위로 놀았으며 체스백개먼으로 놀았으며, 레슬링, 달리기, 복싱, 승마와 같은 스포츠를 즐겨보았다.
고대 에트루리아인은 음악과 춤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수금을 이용하여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의 춤은 신에게 숭배를 하기위해 하는것이다.
고대 에트루리아인은 계급구분의 관한 의식이 강했다. 처음에는 높은 계급이 없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곡예사나 노예가 될 뿐이였다. 시간이 지나 그들은 3계급으로 나누어졌다. 가장 높은 계급은 귀족이나 땅을 소유하는자, 부자, 성직자들이 차지했다. 중간은 농부들과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했다. 가장 낮은 계급은 노예가 차지했다.

근대 에트루리아 왕국

에트루리아라는 이름은 19세기에 다시 한번 에트루리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토스카나에 세운 나라로 1801년부터 1807년까지 존재했다.

에트루리아인

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에트투리아인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북쪽은 토스카나 지방부터 남쪽은 로마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민족이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구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전 8세기경에 걸쳐서, 소아시아리디아에서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에 이주(移住)해 온 민족이라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에트루리아인은 스스로를 라스나(Rasna)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로마인은 그들을 투스키(Tusci)라 부르고, 또한 그들이 거주한 지방을 투스키아라고 부른 것이, 현재의 토스카나라는 지방 명칭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던 금석문자(金石文字)는,아직 완전히 해독되어 있지 않은데, 그 대다수는 이 토스카나 지방에서 출토되고, 그 밖의 지방에서는 라티움 지방, 캄파니아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인처럼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도 타르퀴니아·키우시·베이오·체르베테리(카에레)·아레초 등, 주요 도시는 군사상의 공통적인 이익 때문에 에트루리아 연맹을 조직하여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다.

처음 에트루리아인은, 토착(土着)의 테라마레빌라노바 문화와 섞여 다시금 페니키아·키프로스서아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기원전 7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하여 그리스 문화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되고, 기원전 6세기 이래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 사실은 에트루리아의 분묘를 비롯하여 각지의 유적에서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항아리가 출토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도 분명한 일이며, 또한 에트루리아인이 항아리에 그린 그림이나 분묘의 벽화의 주제가 그리스적 요소를 다분히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그 영향이 얼마나 뿌리깊게 침투하고 있었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일상 생활에 있어서는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더욱이 향락적인 에트루리아인이 건축·조각·회화·공예 등의 조형 분야에 있어서 특히 뛰어난 독자적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분묘 예술은 그 가장 현저한 증거이다.

2천년前 에트루리아 무덤 발견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2천여년 전 고대 에트루리아 시대의 무덤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토스카나 주(州)의 치비텔라 파가니코란 마을 언덕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기원전 1~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30여명의 유해가 매장된 납골 항아리를 포함해 유물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발굴단장인 안드레이 마르코치는 13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보존 상태가 좋은 무덤은 매우 드물다"며 "무덤 밖이 흐트러져 있어서 누군가 침입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내부를 조사한 결과 유물들이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고 말했다.
무덤 안에서 좁은 복도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2m, 폭 1.8m 크기의 현실(玄室)이 발견됐는데 이 곳에는 화분, 청동 거울, 도자기, 납골 항아리 등 80여점의 유물이 들어 있었다.
마르코치 단장은 "작은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유물이 발견된 것도 특이하다"며 "납골 항아리의 일부는 매우 작아 어린이를 매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주 지역에서 번성한 이탈리아의 첫 문명인 에트루리아 문명은 고대 로마인이 정착하기 전인 기원전 6~7세기가 전성기로 1천여년간 지속됐으며 미술품과 화분 등 유물들로 장식된 무덤이 대거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에트루리아미술 (-美術)

BC 8세기∼BC 1세기 이탈리아 중부 에트루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에트루리아인의 미술.
BC 8세기∼BC 1세기 이탈리아 중부 에트루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에트루리아인의 미술. 에트루리아인은 로마지배 이전의 이탈리아반도 여러 민족 가운데 정치·경제·문화의 여러 면에 걸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특히 로마와 서유럽 조형미술문화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들의 기원은 불분명하나 토착의 빌라노바문화를 계승하고 또 동방 및 그리스의 고도로 발전된 문화를 도입하여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그리스로부터의 영향을 빼놓고는 에트루리아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 평가에 있어서 그리스미술과의 관계는 중요한 문제이다. 에트루리아미술이 전체로 평가받게 된 18세기에는 그 독창성이 강조되어 그리스미술보다 이른 시대의 것이라고까지 생각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와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뛰어난 작품은 그리스인의 손으로 이루어졌거나 그것을 완벽하게 모방한 것으로 보여져 그리스미술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마침내 그리스미술과는 이질적인 면 즉 역동적이고 표현적인 에트루리아미술 고유의 성격이 판별, 평가받게 되었다. 이같은 평가를 받게 된 계기는 1916년 베이이에서 출토된 《베이이의 아폴론상》과 같은 걸작의 발견이나 근대 미의식의 변화였다. 오늘날의 이상적인 인체표현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미술과는 다르게, 화려하고 생명감과 현실감이 넘치며 또 신비감마저 느낄 수 있는 에트루리아미술의 특징이 널리 인정되어 있다. 그것은 에트루리아인의 기질, 특히 종교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리스미술과의 관계나 다른 이탈리아 고대민족과의 교류와 더불어 에트루리아인의 성쇠, 각 도시국가의 강한 독립성 때문에 에트루리아미술의 발전을 연속적으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보통 그리스미술과 대응된 다음과 같은 시대구분이 사용된다. ① 동방화양식기(BC 8세기∼BC 6세기 중엽) ② 아케익기(BC 6세기 중엽∼BC 5세기 중엽) ③ 클래식기(BC 5세기 중엽∼BC 4세기 말) ④ 헬레니즘기(BC 4세기말∼BC 1세기 중엽)의 네 구분이다. 이 가운데 에트루리아미술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는 아케익기인데, 정치·경제적으로 그 번영을 같이하고 있다. 고대 로마인이 사용했던 <에트루리아양식(signa tuscanica)>이라는 말도, 아케익기의 미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 클래식기는 그 성격이 불명료하기 때문에 중간기라 불릴 때도 있다. 그리스의 고전미술은 에트루리아인의 기질에 맞지 않았고 또한 정치적 쇠퇴 때문에 충분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에 비해 헬레니즘기에는 에트루리아미술의 부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헬레니즘양식이 갖는 사실성과 파토스적 표현성이 에트루리아인의 조형감각에 공명했기 때문이다. 에트루리아미술에는 일상적 용도로 쓸 수 있는 공예품이 많으며, 직인적 성격 때문에 미술가의 이름도 전해져 있지 않으나, 《베이이의 아폴론상》의 조각가 불카(Vulca)는 유일한 예외이다.

건축
에트루리아인은 토목·건축에 솜씨가 뛰어났으며, 또한 로마인에게 끼친 영향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로마인에게 도시건설을 가르친 것도 그들이었다. 에트루리아 도시건설의 대표적 예는 볼로냐 근처의 마르차보토로서 정연한 도시계획을 볼 수 있다. 한편, 에트루리아건축의 유구는 오늘날 매우 단편적인 형태로 밖에 남아 있지 않는데, 페루자의 마르치아문(門)이 그 보기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홍예구조(아치구조)는 동방에서 도입된 것이라 생각되며, 신전 중심의 에트루리아건축은 그리스신전과는 달리 배후면에 주랑(柱廊)이 없고, 정면이 중시되며, 또 기대(基臺) 위에 세웠다. 이러한 특징은 로마의 신전건축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 목조에 테라코타장식을 사용한 방법이 그리스에서는 일찍이 사라졌지만, 에트루리아 신전건축에서는 유지되었다. 에트루리아 건축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덤이다. 바위를 뚫고 주택을 모방한 널방[墓室(묘실)], 다듬은 돌을 쌓아올려 원형이나 네모진 방을 아치와 원형 덮개 비슷한 것으로 덮은 무덤 등은 건축기술적으로도 또 사라진 건축연구에도 중요하다.

조각
에트루리아인은 조각 소재로서 응회암이나 사암, 앨러배스터 등 그 지방의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그리스인이 최고의 소재로 생각했던 대리석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조각에서 뛰어났던 것은 석재보다 테라코타나 브론즈에서였다. 신전의 지붕에 장식되었던 《베이이의 아폴론상》이나 《부부상》, 그리고 《카피톨리노의 늑대》 《키마이라》 《알링가토레(연설자)》 등 에트루리아조각의 최고걸작은 모두 테라코타나 브론즈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에트루리아조각은 그리스와 비교하여 거침없이 자유로우며 역동적 표현, 균형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고 두부(頭部)에 중점을 둔 인물상, 야생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동물, 사실(寫實), 특히 초상(肖像)에 대한 깊은 관심 등이 특징이다. 또 조각도 무덤미술에 중점이 두어져 있다는 점, 아케익기에 에트루리아적 정신이 배어 있는 예술성 높은 걸작이 많다는 점, 그리고 《브루투스의 상》 등 헬레니즘기의 뛰어난 초상 전통이 로마인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회화

에트루리아인은 회화장식을 좋아하여 건물의 장식으로 널리 사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무덤 속의 벽화뿐이다. 그들은 대개 석벽에 밑바탕을 칠하고 프레스코화법으로 그렸다. 타르퀴니아의 벽화군은 질과 양 모두 뛰어난데, 키우시·베이이·체르베테리·오르비에토 등에서도 발견되며 연대도 BC 7세기∼BC 2세기에 걸쳐 있다. 그러나 《조점술사(鳥占術師)의 무덤》이나 《사냥과 낚시의 무덤》 《암사자의 무덤》 등에 남아 있는 타르퀴니아의 뛰어난 회화작품은 아케익기의 것이다. 벽화에는 연석(宴席)·경기·일상정경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신화를 주제로 한 것은 매우 드물다. 이러한 아케익기의 명쾌하고 거침없는 표현에 비해, 헬레니즘기의 작품은 신비적 색조가 짙으며 명부(冥府)의 신이나 귀신이 그려 있는 등 내세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에트루리아벽화는 그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라져버린 그리스 회화를 아는 실마리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공예
공예는 에트루리아인의 장기로서 특히 금은 세공, 브론즈 작품에 뛰어난 것이 많다. 꾸미개[裝身具(장신구)]가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나, 체르베테리의 레골리니 갈라시의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의 잠그개는 특히 유명하다. 또 브론즈 작품으로는 《피콜로니의 키스타》가 대표적이다. 키스타라는 부인용 화장도구, 꾸미개통이나 촛대, 거울 등 뛰어난 작품이 많다. 또 현대의 미의식에 잘 부합하는 브론즈의 작은 상도 에트루리아인의 창조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도기(陶器)에서는 부케로라는 흑도(黑陶)가 유명하다.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반도 북부에 살던 민족입니다. 그들은 매우 발달된 산업과 기술,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 설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제기한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온 리디아인들이 에트루리아를 세웠다고 합니다. 두 번째 설은 그리스 역사가 디오니시오스의 주장으로, 그에 따르면 에트루리아인들은 이탈리아 본토인이라고 합니다. 여러 역사책들은 이탈리아 북부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 높은 문명을 가진 민족이 이주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사>에서는 그 근거로 에트루리아의 남부 지역에서만 급격한 묘실문화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듭니다. 이 사실은 이질적인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의 유입을 강력하게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들이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룬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철로 제작된 의치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높은 수준의 제련기술, 의료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그들은 습지를 농지로 바꾸기 위한 배수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에트루리아에 높은 수준의 건축기술과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상업에도 뛰어났습니다. '티레니아해'는 '에트루리아인의 바다'라는 뜻인데, 이는 에트루리아인이 자국 주변의 해상무역로를 통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예술과 건축도 높은 수준을 자랑했는데 특히 초자연적인 사물을 묘사한 조각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비록 후기에는 그리스의 예술에 밀려 그 독창성이 상실되었지만 그들의 뛰어난 작품 몇 점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중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늑대상'이 가장 유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무서운 표정의 늑대와 그 젖을 먹는 아기들의 모습이 마치 로마의 미래를 늑대가 지켜주는 듯 합니다. 이 외에도 아레초의 키메라상이 그 뛰어난 사실성으로 인해 유명하다고 합니다. 건축에서는 아마도 '아치'가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성문, 하수구, 다리 등의 건설에 아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들은 종교와 정치에는 뛰어나지 못한 듯 합니다. 에트루리아의 종교는 공포스럽고 음울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사>에 '에트루리아인은 천국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그들은 지옥의 모습과 고통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벽화는 매우 낙천적인 분위기를 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근거로 <로마사>에서는 에트루리아의 종교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 <로마제국사>의 견해 - 반박합니다. 또한 에트루리아의 종교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있어 점치는 일과 징조를 해석하는 일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공포감만을 주는 종교나 미신적인 종교는 에트루리아의 번영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정치체제는 12도시의 연합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12도시가 단결해서 한 일은 단지 종교축제의 집행 뿐 이었다고 합니다. 각 도시는 서로 연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했으며 다른 도시와의 연합을 회피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에도  불구하고 에트루리아인은 밀집된 중장보병을 이용한 전술을 통해 이탈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습니다. 이 중장보병 전술은 보병 개개인에게 좋은 품질의 무기와 갑주를 지급할 수 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트루리아의 군사력은 에트루리아의 기술력에 의존한 바가 큽니다.
결국 에트루리아 가진 힘의 핵심은 기술력이 아닐까 합니다. 농업생산성은 습지의 개간을 통해 높아졌고, 그들이 만들 수 있었던 뛰어난 제품들도 그들의 기술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술은 상업을 위한 교역품을 만들 때에도 사용되었고, 그들의 군대를 강화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에트루리아인은 기술력으로 이탈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에트루리아인들과 그들이 세운 12개의 도시들은 하나씩 차례로 멸망했습니다. 켈트족은 북쪽에서 그들의 도시를 차례로 멸망시켰고, 로마는 남쪽에서 그들의 도시를 차례로 멸망시켰습니다. 당시 대다수 야만족의 힘은 인구에서 나왔습니다. 켈트족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그들 역시 수십만의 병사로 에트루리아를 뒤덮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가 가졌던 힘은 단결력 이였습니다. 로마는 자신이 정복한 지방들이 가진 힘을 하나로 모을 줄 알았고, 그 힘을 통해 에트루리아를 멸망시켰습니다.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던 에트루리아는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졌습니다. 만일 켈트족이 에트루리아를 흡수했다면 그들의 모든 것이 사라졌겠지만, 다행히도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기술을 배우고 후대에 전수했습니다. 결국 에트루리아의 기술은 로마를 강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참조"http://kr.blog.yahoo.com/yydeokk196/9736.html?p=3&pm=l&tc=70&tt=1265177493

http://blog.naver.com/koviet2/7004848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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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9 10:17

 

 

 


11번가 과장 마케팅에 고객 불만↑

SK텔레콤의 오픈마켓 SK텔레콤 11번가(www.11st.co.kr)가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고객에게 주기로 한 혜택을 슬그머니 없애거나 축소하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지난해 8월 전 회원을 대상으로 도입한 무료반품제를 올해 2월 우수회원만을 대상으로 축소한 데 이어 최근에는 아예 실시하지 않고 있다.

11번가는 지난해 구매 중 일어나는 반품 및 교환에 대한 배송비를 매달 최대 4번까지 지원하는 무료 반품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무료반품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시행 초기 회원이 반품 사유서를 보내야 반품비를 돌려준 데 이어 올해 들어 슬그머니 대상을 축소하다가 아예 시행을 중단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11번가를 이용한 한 고객은 "무료반품이 가능하다고 해서 11번가를 이용했는데 대대적인 광고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 혜택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11번가의 과장 마케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실시한 '하나사면 하나 반값' 역시 소비자를 우롱한 과장 마케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사면 하나 반값' 행사는 패션상품 전 품목을 대상으로 2개 이상 구입 시 1개는 반값에 살 수 있는 행사다. 상품을 배송받은 뒤 구매확정 버튼을 클릭하면 가격이 낮은 1개 제품에 대해 구입금액의 50%를 적립포인트로 되돌려준다.

문제는 판매자의 재고가 부족할 경우 포인트 적립이 불가능한데다 11번가 바로가기로 구입하지 않거나 장바구니에서 한꺼번에 결제하지 않으면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는 등 제약조건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11번가에서 의류를 구입했다는 한 고객은 "2개를 사면 1개는 반값 할인해줄 것처럼 광고해 놓고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다른 조건을 달아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약관 사기와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에 이벤트 형식으로 실시한 최저가보상제 역시 보상을 받기 위한 상품군에 제한이 너무 많고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물건 구매 시 포인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포인트 사용기간이 2개월로 너무 짧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과장 마케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광고를 통해 선전했던 24시간 고객콜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11번가는 고객 편의를 위해 업계 최초로 24시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콜센터 운영만 24시간 가능하고 고객 불만사항은 다음날 이후 처리되면서 보여주기 위한 서비스라는 지적이 나왔다.

판매자와 구매자 중간 입장인 오픈마켓 콜센터에서는 판매자가 자는 시간에 협의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24시간 문제 해결이 가능한 것처럼 선전한 것이다.

11번가의 한 고객은 "판매자 대부분이 오후 6시에 퇴근을 하거나 자리에 없어 저녁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콜센터를 전화를 걸어도 일이 해결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면서 "24시간 상담 서비스는 일은 해결 안되고 시간만 날리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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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7 10:12

 

 

 


박지성·박주영·기성용, 합동 골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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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5 14:45

 

 

 


이소라 - <바람이 분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가수인 이소라 씨.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에 이소라 씨가 나왔다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인데, 여기에서 <바람이 분다>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기쁨이랄까.

가슴에서 가슴으로, 온몸으로 말을 걸어오는 듯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부르는 그녀의 <바람이 분다>는 아마 다른 누구도 감히 부르지 못할 듯한 이소라 씨만의 노래가 아닐까 싶다.

'바람이 분다...'라고 첫부분을 시작할 땐 정말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스치우는 듯한 느낌이 들고,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한 사람의 이별 이야기에 푹 빠져서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어 버리는, 이번 이소라 씨의 라이브는 그런 깊은 감성이 충만한 무대였다.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14 15:29
2011.03.13 22:54

 

 

 


30회차(nba)!

샬럿 vs 시카고 09:00 (패)
미네소타 vs 디트로이트 09:00(승)
보스톤 vs 밀워키 09:00(승)
오클라호마 시티 vs 멤피스 09:00 (패)
애틀랜타 vs 클리블랜드 09:00 (패)
마이애미 vs 뉴저지 09:00(승)
워싱턴 vs 인디애나 09:00 (승)
올랜도 vs 필라델피아 09:00 (패)
토론토 vs 뉴욕 09:00 (승)
댈러스 vs 샌안토니오 09:00 (승)
휴스턴 vs 뉴올리언즈 09:00(패)
포틀랜드 vs 골든스테이트 11:30 (승)
유타 vs 피닉스 11:30 (패)
LA클리퍼스 vs LA레이커스 11:30 (패)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8 11:39

 

 

 


오늘밤 핑크빛 주문을 걸어 볼까?

[와인의습격] 오늘밤 핑크빛 주문을 걸어 볼까?
[일간스포츠 2007-03-16 16:55]    


[일간스포츠 박명기.김진경] 청춘 남녀의 사랑은 어느 순간에 필이 꽂힌다. 와인으로 치면 달콤한 맛을 자랑하는 아이스 와인이나 감미로운 이탈리아 와인이 필이 꽂히는 데 딱 맞다.

증권가의 이름 있는 김 모(34)씨 부부도 2년 전 롯데호텔 럭셔리 와인바 바인(vine)을 찾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필이 꽂혔다. 왜? 우연히 합석한 자리에서 ‘꾼’들이 최고의 작업용 와인이라고 손꼽는 빌라엠(Villa M)의 유혹에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와인 전문가 고재성씨는 “빌라엠은 ‘작업의 왕국’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판매액을 보이며 최고의 작업용 와인으로 인정받은 제품”이라고 강력 추천했다.

고씨에 따르면 빌라엠의 달콤함은 사람의 의식과 육체를 완전히 잠식한다. 몸과 마음을 휘감는 달콤함이 술로부터 오는 것인지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잊게 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첫 맛은 과일향이 강하고 뒷맛은 알코올 향이 배어 나와 술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도 좋다.

와인 컨설턴트 박인혜씨는 프랑스산 화이트 와인으로 천연 감미 와인인 뱅 두 나튀렐(Vins doux Naturels·VDN)을 강력 추천한다. 호박색을 띠고 단맛이 있어 여자들이 좋아한다. 함정은 18도나 되는 높은 도수에 있다. 일반 와인이 12~13도인데 비해 18도나 되다 보니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뱅 두 나튀렐는 그르나슈·마카붸·말브와지·뮈스카 품종에서 생산된다. 그르나슈 누아르 품종에서 생산된 바뉠스와 리브잘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산 일 바치알레는 ‘중매쟁이’라는 뜻을 가진 와인이다. 9년간의 기다림과 네 번의 프러포즈 끝에 결국 결혼에 성공한 것을 기념해 만든 와인이어서 일 바치알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술이다.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겨 다시 바인을 찾은 김씨는 “와인을 여자로 치면 까다로운 멋쟁이다. 하지만 붉은 색깔처럼 정열적이고. 황홀한 맛과 향이 배인 세련되고 까다로운 여인”이라고 말했다.

와인 전문가들은 “좋은 와인일수록 천천히 음미하면서 온몸 가득 그 향과 맛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와인을 마실 때 작업의 정석은 무엇보다 향과 맛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 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와인 병에 <음란서생> 영화 포스터 ‘딱’

- 한석규식 와인 선물법

1996년부터 국내에 소개된 빌라엠은 병 라벨이 없어 ‘누드 와인’으로도 불린다. 영화 배우 한석규는 이 빌라엠을 독특한 방법으로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라벨이 없는 와인이라는 점을 착안. 이 와인에 자신의 얼굴이나 출연 영화 포스터 또는 감사의 말 등을 붙여 지인과 친지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한석규는 지난해 2월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음란서생> 개봉 기념으로 영화 포스터를 라벨로 제작해 빌라엠을 지인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역시 부인에게 러브 레터를 써서 라벨로 붙인 뒤 선물로 보낸 것이었다.

이 밖에 탤런트 조민수도 결혼식 때 빌라엠을 하객들에게 돌렸고. 병 라벨이 없는 이점을 살려 기업체에서도 별도의 라벨을 제작해 직원·고객용 선물로 활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글=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사진=김진경 기자 [jink@ilan.co.kr]

장소협조=롯데호텔 와인바 바인(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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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7 22:02

 

 

 


[스크랩] ‘나는 가수다’, 이보다 더 모욕적일 순 없다



뉴스 : MBC ‘우리들의 일밤’ 새 코너 ‘나는 가수다’가 국내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을 안겼다.6일 방송..

 

 

 

Posted by 비만 달인
2011.03.07 16:42
2011.03.04 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