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1 08:39

 

 

 


파수꾼의 이야기판_두수동 낭만카페 제1호 손님

인터넷오일장 파수꾼은 물건 위에 인격과 양심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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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동에 이상한 낭만카페가 있다. 35번 국도변에 카페 이름을 걸고 홍보를 한 것도 아닌, 카페 건물에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 현판을 건 것도 아닌, 미사리에 즐비한 저마다 개성을 지닌 그럴듯한 멋진 건물도 아닌, 말 그대로 이상한 카페인데 잡초가 무성한 뜰에 들어서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다.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예쁜 꽃을 심은 것도 아니고, 카페 음식의 간을 내기 위해 담근 장독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곳이 카페라는 것은 많고 많은 사람 중 어렴풋이 억지로 인정하는 사람이 몇 명, 확실하게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 곧 카페지기뿐이다.

카페지기는 오늘도 장사가 되지 않아 혼자서 이 늦은 가을, 낮 동안 된바람이 몹시 불어 춥다는 생각이 든 긴 하루가 지나 초저녁 밤에 계절과 어울리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카페지기가 이 계절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음악은 순전히 그만의 생각에 의한 것으로, 북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의 음악이다. 카페지기는 먼저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을 쿠르트 잔데를링크의 지휘로 틀었다. 거칠거칠한 브람스 만의 현의 소리가 오늘 같은 스산한 늦가을 초저녁 밤에 잘 어울리고, 사색하기 좋은 음악이란 생각을 카페지기는 하며,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했다.

지금 그가 말하는 즐거운 생각이란 머릿속에 혼재한 여러 가닥의 뒤엉킨 생각들을 잠시 쓰레기통에 과감하게 처넣고, 브람스의 이야기에만 귀를 곤두세우는 것을 말한다. 나태한 의지란 놈에게 사납게 채찍질하여 잠시 동안 브람스의 음악만 생각하다가, 이내 한쪽 귀는 부지런히 근엄한 브람스의 영상 옆에 바짝 앉아 음악이야기를 들으며, 한쪽 귀에는 음성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뇌에서 직접 청각 기관에 긴급상황으로 전하는 소리를 감지했다. 이렇게 되면 음악에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을 카페지기는 누구보다 잘 안다.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의 4악장 종지부에 다다랐을 때 카페지기는 1악장이 시작할 때보다는 모처럼 듣는 브람스와 가까워졌다. 두 번째 고른 곡은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이다. 이 곡은 제3악장이 유명세를 탔는데 영화와 드라마에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3번은 4번에 비해 음악에서 느끼는 계절감, 계절과 연관지었을 때 음악의 느낌이 좀 떨어진다. 카페지기는 브람스란 사람을 늘 경외시 한다. 왜냐하면, 브람스의 음악은 이 밤과 같이 기분과 날씨, 계절이 맞아떨어져, '아, 이것이 브람스!'란 생각에서 좀 더 다가가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거리에의 파토스가 작용하여 수십 년 그의 음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늘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 카페지기는 브람스와 그의 음악에 존경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3번 교향곡이 끝나기 전에 카페지기는 이 밤은 브람스의 교향곡 순례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의 교향곡이 기껏해야 넷밖에 안 되고 4번에 이어 3번을 들었으니, 남은 두 곡만 들으면 된다. 3번에 이어 튼 것은 1번이다. 카페지기의 무작위 선곡의 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4, 3, 2, 1 역순은 숫자 배열의 흐름이 누가 보아도 하강 선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3, 1, 2 순은 수의 배열로 보아 도무지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카페지기조차 모른다.

단지, 카페지기가 아는 것은 3번의 4악장을 몇 초 남기지 않고 2가 아닌 1을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완성까지 무려 이년, 저년, 쌍년이 아닌 해년 앞에 20을 달아야 하는 이 괴짜 교향곡의 1악장 도입부는 멀리서 들리는 팀파니의 연타가 완만하게 상승할 때부터 스산한 초겨울을 연상한다. 교향곡이란 장르에  도전하면서 그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알 수 있다. 4번의 초겨울, 3번의 늦가을에 이어 다시 1번의 초겨울 분위기로 돌아갔다. 이쯤에서 카페지기는, '오늘은 브람스와 궁합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남은 2번을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틀었다.

이 곡에서는 한국의 사계절이 연상되지 않고 작곡자가 태어난 가보지 않은 북유럽의 계절이 떠오른다. 2번을 다 듣기 전에 브람스의 큰 목소리 사이에 이상한 소리가 끼어들어 카페지기는 앰프의 볼륨을 낮추었다. 고전음악을 들을 때 카페지기는 웬만해서는 볼륨을 건드리지 않는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누군가, '형님, 계신교?' 하는데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다. '절 찾습니까?'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초저녁 어둠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쭉 빼고 유심히 보는데 손님이 가슴에 뭔가 안고 계단을 올라온다.

오전에 뒤 산자락을 끼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할 때 본 사람이다. 사과밭을 낀 농로를 걸을 때 사람 소리가 나기에 카페지기는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와 두세 번 얼굴을 근접거리에 둔 적 있었기에, 이름은 알고 있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사과를 따던 그가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반갑게 아는 체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얼굴만 보고 바로 그의 사과밭 자락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오늘 딴 사과를 한아름 안고 그가 찾아왔고, 뜻밖이었다. 분명, 그는 그가 아는 이 동네 사람 집에 갔다가 없어서 낭만카페에 온 것이 아닌 카페지기를 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바로 우리는 음악 이야기에 들어갔다. 카페지기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는 낭만카페에 접근하면서 내가 듣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들은 터여서 쉽게 음악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고전음악도 좋아하지만 우리의 음악에서도 국악을 매일 빠뜨리지 않고 듣는다고 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 카페지기의 머릿속에는 바로, '낭만카페 제1호 손님이다.'란 말이 떠올랐다. 그는 대구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사람인데 하루 중 11시에서 12시까지 어느 방송의 국악 프로그램은 어떤 일이 있어도 듣는다고 했다.

그 시간대에 탄 손님이 그가 듣는 국악에 대해서 반응하는 유형에 대해서 그는 말했다. 한 번은 어떤 손님이 '그런 걸 왜 들어요?'하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뭐, 이런 말이 다 있지?' 하는 좀 불쾌한 생각이 들어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낮추고, '한국 사람이 한국 음악 듣는 게 뭐 잘못됐습니까?' 했단다. 아마, 카페지기라면 더한 말로 그 손님의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을 것이다. 차분하고 유한 성격의 그인지라 그 정도 했을 것이다. 그의 인간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그와 같은 학교를 나온 두수동 친구는 사회과를 나온 것을 자랑삼아 떠벌이기를 좋아한다. 그의 사과밭에 있는 건물에 처음 들어간 날 그는 친구에게, '야, xx아! 제발 부탁인데 내가 사회복지학 전공이란 말도 심지어 대학 나왔다는 말도 하지 마라! 전공도 못 살리고 택시 운전하고, 틈나면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이 창피하다. '처음 그를 안 날 그가 한 이 말에서 카페지기는 좀 생각을 해야 했다. 불알친구였던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의 한때에 같이 있었던 다른 생각에서 나온 말의 의미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두수동 낭만카페에서 카페지기는 늘 손님을 기다려왔다. 카페지기의 카페에는 술 손님과 이야기 손님은 발길이 끓기지 않는다. 그들이 오면 카페지기의 낭만카페는 보이지 않는 문을 걸어잠근다. 그저 그들이 즐겨듣고 거부하지 않는 대중가요 한 두 곡 즘은 서비스 차원에서 들려주기도 한다. 카페지기가 기다리는 낭만카페 손님은 그런 손님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인이 한국 음악 듣는 게 뭐가 잘못됐습니까?'하고 당당하게 따질 줄 알거나, 한국음악이란 단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국음악을 이해하거나 이해하려 하고 즐겨듣는 사람이면 한국의 전통음악과 마찬가지로 뿌리깊은 서양의 고전음악도 거부하지 않고 감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는 낭만카페에 음악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한 보람이 헛되지 않았고,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게다가 이제 겨우 얼굴 익혀 아직은 형이란 소리 듣기가 서먹한 첫 손님이 찾아온 두수동 낭만카페에 음악의 열기로 인해 훈훈하다.

그가 옆에 앉은 친구에게 한 말처럼, '야 xx아!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들으려고 한 번만 노력해봐! 그러면 그 후는 쉬워!' 늘 함께하지 않은 음악을 접하면 누구든 단박에 친할 수 없다. 이런 말에, '예전에 많이 들었어, 안다! '하면, 그런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렵고 카페지기의 낭만카페는 그저 사랑방 구실만 하면 된다. 그보단, '뭘 알아야죠?' 하는 사람이면 조금만 클래식과 국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면 미래의 낭만카페 손님이 될 자격이 있다. 낭만카페 제1호 손님인 그가 자주 오기를, 또 누가 될지 모르지만 2, 3호 손님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를 카페지기는 기다리며 첫 손님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해금과 대금 음악에 이어 추천 곡으로 생황 음악과 장사익의 노래를 이었다.

두수동 낭만카페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 한 잔에 백만 원하는 상품이 있다. 카페지기는 이것을 공짜로 파는 대신 음악손님의 열린 마음과 뚫린 귀를 대가로 받는다. 카페지기가 그의 커피에 이런 가치를 부여한 것은 허풍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허풍이 아니라고 믿어도 되는 까닭은 한 잔의 커피에 그가 스스로 알아낸 건강을 지키는 비결을 담았기 때문이다.

'장사익의 음악을 들으면요. 저는 이런 생각 합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은 느낌! 그 기분 아시죠?', 적절하고 절묘한 표현에 카페지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의 택시에 탄 손님 중 어떤 사람이 국악에 접근하려고 '뭘 들어야 해요?' 할 때, 그를 국악에 푹 빠지게 한 '수제천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우리 음악의 맛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다는 그는 음악을 듣는 차원이 아닌 작곡, 연주, 감상이란 음악이 존재하게 하는 세 구성요소에서 당당하게 감상자 몫을 하는 사람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손님은 두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 살며 택시 기사, 고향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손재익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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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만 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