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51. 서예원 (徐禮元 1547-1593.6.29)'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2.27 서예원 열전 51. 서예원 (徐禮元 1547-1593.6.29) ....
2010.12.27 04:05

 

 

 

 


열전 51. 서예원 (徐禮元 1547-1593.6.29)
서예원은 이천 서씨 시조로부터 16세 손(孫)이며 거란군을 언변으로  물리친 고려병마도원수 서희(徐熙)의 13세 손입니다 서예원 .    그의 아버지는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서형(徐형)이고  그의 형은 임진왜란 당시 춘천부사였으며 임란 후에는 원주목사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서인원(徐仁元)이죠.    그의 처는 세종대왕의 맏형이신 양령대군의 5세 손녀, 전주 이씨이고 그의 어릴적 동무 즉 불알 친구는 유성룡과 이순신이죠(첫째는 유성룡 둘째는 이순신 세째는 서예원으로 나이는 각각 다 서예원 르지만 서로 같은 동네에 살아 친구로 지냈다 서예원 고 하더군요 특히 유성룡과 서예원의 형인 서인원은 동문으로 남인의 유력한 학자로도 유명하죠).    그는 서울에서 출생하여 28세시 무과에 급제(1573) 선전관이 되었고,  나주 판관(1577), 도총부도사(都總府都事) 겸 비변랑(備邊郞),  경력(經歷)(1579), 보성군수(1581)를 거쳐 함경도 변경의 보화 첨사(僉使)(1583)가 되었죠.    이때 회령(會寧) 보하진(甫下鎭)에서 80여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적의 근거지를 정탐하러 깊숙이 들어갔다 서예원 가  적에게 포위되어 군사들을 거의 잃고,  겨우 탈출하여 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에 조정에서는 그 죄를 물어 그를 종성에 유배시켰죠( 이 사항도 나중에 왜곡된 측면이 엿보입니다 서예원 . 당시 이러한 작전은 누구나 피던 것으로 당시에 이순신과 선거이도 그러했고 당시 온성 부사 이억기도 이러한 작전을 핀 적이 있죠 서예원이 유배된 것은 당시 순절사 이일의 미움을 받아서이지 작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죠)   때마침 이탕개(尼湯介)가 국경을 넘어 경원부(慶源府)를 점령하자 서예원은 백의종군으로 그들의 소굴을 기습 승리한 공이 있어 곽산 군수(1586)로 재기용되었으며,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 김해부사로 임명되었죠.   김해 전투에서도 영웅으로 칭송받는 부산진첨사 정발이나 동래부사 송상현처럼 두시간만에 성과 성민을 모두 내 주질 않고 이틀간 김해본성이 모두 허물어 지고 성안의 포알과 활이 다 서예원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 서예원 가 초계군수 이유겸이 도망치자 평상심을 잃고 이유겸을 체포한다 서예원 는 구실을 내세워 도망을 쳤으나 바로 듯을 바꾸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조대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서예원 가 거절을 당하고   다 서예원 시 김해가 이미 무너진 사실을 모르고 상주로 가서 구원을 요청했다 서예원 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서예원이 살아서 상주로 와서 구원을 청하자 당시 욱하는 성질이 있는 당시의 경상도 관찰사 김수가 잡아 감옥에 쳐 넣으니 서예원은 이 때 죽을 목숨이었지만   김수가 진주로 갔다 서예원 가 전라도로 도망을 치
Posted by 비만 달인